국민건강영양조사, 열 명의 얼굴로 읽는 대한민국 건강의 온도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1월 어느 날, 서울 은평구의 한 보건소에서 마주친 김정수(69) 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나왔다. 모아둔 진료 안내서를 소중히 챙긴 그는 “이렇게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라며 미소를 보인다. 질병관리청이 마련한 전국 1만명 대상의 국민건강영양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20여 년간 이어져온 이 조사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우리 사회 건강 불평등, 식생활 변화, 만성질환의 위험 신호를 현장에서 가장 먼저 포착해왔다.

그 현장엔 개개인의 생생한 사연이 스며 있다. 결혼 10년차 워킹맘 박진아(38) 씨는 올해 설문 참여를 놓고 고민했다. “아이 돌보면서 시간 내는 게 쉽지 않지만, 엄마들이 무슨 음식을 먹고, 하루 얼마나 쉬는지 나라에서 진짜 모르는 게 많잖아요.” 그녀는 내 얘기가 다음 세대 복지정책에 작은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참여를 결심했다.

이번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선 우리 사회 곳곳의 실제 생활 변화가 담긴다. 작년부터 점점 늘어난 1인 가구, 온라인 장보기, 급속도로 커진 배달 음식 시장이 어떻게 건강지표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팀은 예리하게 들여다본다. 취합된 조사 결과는 정책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지난 2024년, 조사를 근거로 남성 20~30대의 비만 증가와 식습관 개선 사업이 시행됐다. 국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데이터를 만들고, 데이터가 복지라는 옷을 입고 다시 우리 삶에 돌아온다. 여기에 조사 참여 인원은 1만 명에 달한다. 지리적, 경제적, 연령별로 계층을 고루 반영하며 균형 있게 표본을 선정했다. 도시와 농촌, 섬마을까지 직접 조사원들이 현장을 누빈다. 휠체어를 탄 박종명 씨(56, 전남 고흥)는 조사원이 직접 집으로 방문해 어렵게 떠올린 식사 메뉴를 하나하나 적고 혈압도 재며 하루를 보냈다.

이 조사의 핵심은 우리가 상상하는 ‘평균적 건강’ 너머의 삶에 각자의 결이 있다는 데 있다. 제 각각의 병력, 체형, 밥상 풍경, 스트레스, 운동 습관에는 이유가 있다. 질병청 조사팀은 올해 신경심리평가 및 고령자 정신건강 모듈 확충, 청소년 비대면 건강조사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노인과 청소년, 일하는 여성, 외국인 근로자 등 다양한 집단의 건강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내는 시도다. 이는 단순히 통계를 위한 숫자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를 국가적 과제로 올리는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목소리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조사에 대한 피로감,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 장연수 씨(47)는 “솔직히 계속 비슷한 질문에 답하는 게 번거롭다”면서도 “우리 지역에 꼭 맞는 정책이 만들어지려면 다수가 참여하는 볼륨이 필요하니까”라며 이중적인 속내를 내비쳤다. 질병청은 올해부터 온라인·비대면 조사 항목을 확대해, 조사원의 부담과 국민 참여 장벽을 낮추려 애쓴다. 또한, 조사 데이터가 상업적 용도나 보험시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조사 결과는 보건정책수립 · 학술연구로만 제한 사용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역 주민설명회, SNS 등으로 진행되는 투명한 정보공개도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몫을 한다.

사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숫자와 그래프 이면에 깃든 소소한 이야기의 기록이다. 인천 한강변에서 매일 5km씩 걷는 정영철 할아버지의 성실함, 혼밥에 익숙해진 20대 이수연 씨가 고민하는 배달 음식 건강, 육아와 직장 사이 머뭇거리는 30대 부부의 늦은 밤 대화가 조사표 한 줄 한 줄에 흘러든다. 이 모든 경험이 ‘대한민국 건강지도’라는 커다란 그림을 채운다.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위기와 희망 모두를 본다. 당뇨, 고혈압, 우울, 체력 저하—매번 위기의 숫자가 오른다. 하지만, 이 위기마저도 우리가 스스로를 점검하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결코 ‘관찰’의 눈으로만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모든 이웃의 선택과 경험이 모여, 더 튼튼한 건강복지의 밑그림이 만들어진다는 신뢰와 연대의 촘촘한 조직력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장 든든한 백신이 아닐까.

— 김민재 ([email protected])

국민건강영양조사, 열 명의 얼굴로 읽는 대한민국 건강의 온도”에 대한 3개의 생각

  • 사실 이런 대규모 조사가 효용성에서 논란도 있지만!! 지금처럼 일상과 가까운 문제, 즉 먹고 사는 이야기로 접근하면 전 국민이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되죠!! 건강 정책도 결국 일상에서 출발할 때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담엔 전국민이 샘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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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tter_voluptatibus

    그동안 조사 참여해보신 분 계신가요? 저는 3년 전에 한번 했었는데 꽤 꼼꼼하게 물어보더라구요😊 이런 데이터가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는 걸 직접 겪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사생활 보호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족 모두 맞춤형 건강 정보 받을 날도 곧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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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데이터만 쌓이고 체감은 없음;; 증거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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