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시라트
촬영장의 공기는 숨이 찬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터져 나올 듯한 순간. 조명이 스치고, 카메라의 렌즈에 잡히는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과 땀이 화면 가득 쏟아진다. 영화 ‘시라트’의 첫 장면, 한밤중 도시 골목길, 급하게 내리는 빗줄기 속 인물 하나가 조심스레 그림자를 끌며 지나간다. 그의 발끝은 서늘하고, 두 손은 불안하게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다. 화면 너머 촬영팀의 숨소리까지 실려온다.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이 단서에서 영화는 이미 시작부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2026년 2월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번졌던 ‘시라트’는 현장에서 취재한 것처럼 날것의 질감이 더해진다. 관객의 뒷목을 붙잡는 현장감. 현란한 액션이나 과장된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의 순간에 피어나는 작은 파문. 감독 이재혁은 이번 작품에서 카메라를 관습적으로 쓰지 않는다. 화면 밖 소음까지 인물의 내면과 연동해서 잡아낸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푸석한 아침, 장대비가 진 창고에서 급히 뛰어나가는 배우를 따라 카메라가 노출 값을 바꾼다. 렌즈는 삶과 죽음,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시라트는 평범한 인물의, 작고 조용한 결정들이 결국 예상치 못한 소영웅담으로 엮인다.
올해 영화제에서 언론 시사 직후부터 호평과 논란이 동시에 쏟아졌다. 앵글 중앙에 배치된 ‘시라트’는 기존 영화적 문법을 자주 비튼다. 흔한 단선적 구조, 결말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현재의 쌓여가는 순간 자체에 카메라를 멈춘다. 이는 배우의 순간적 몰입을 잡아내는 영상기자의 시선과 흡사하다. 인물들은 대사를 주고받으면서도, 눈빛 한 줄기, 주먹 쥐는 손끝 하나에 인생의 고단함을 실어낸다. 실제 현장에서는 감독이 배우를 잠시 멈춰 세우고, 사소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를 반복해서 촬영했다. 그 시간 속의 정적이 스크린에 옮겨진 셈이다. 영화는 이런 리듬을 통해 화려한 이벤트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뒷골목, 일터, 고요한 집으로 전환하는 장면들마다 관객 속을 천천히 파고드는 힘을 선택한다. 이 가운데 음악 감독의 과감한 무음 처리, 갑작스럽게 끊기는 장면, 숨 고르듯 이어지는 롱테이크가 화면을 차갑게 만든다. 본질은 내러티브보다 현장의 온도가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되는가에 집중한다.
정확히 이 지점에서 ‘시라트’는 최근 영화계 트렌드에도 화두를 던진다. 202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영화는 기존 서사 구조의 경직성, 감정 과잉 연기 등 장점이자 약점이던 부분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베를린, 부산 등 각종 해외 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팀들이 공통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생활의 질감’과 ‘현장성’이었다. ‘시라트’는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다. 본질적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촬영 방식. 배우와 인물, 카메라와 공간이 상호 침투하면서 새로운 리얼리티를 구현한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제작진은 6개월 동안 각종 실제 골목, 작업장, 주거 형태의 다양한 장소에서 즉흥 촬영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최근 수년간 화려한 CG, 대규모 세트, 영상효과에 의존했던 상업영화와 대조적이다. 스타덤에서 출발하지 않은 신인 배우들의 자연스러움, 감독 특유의 거칠고 즉흥적인 촬영 스타일, 화면의 소음까지도 편집에서 살려냈다. 일부 관객은 이러한 거친 현장감에 오히려 피로감을 호소하지만, 한국영화의 변곡점이라는 전문가 평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현장 장면 중 하나, 빛바랜 교실에서 주인공이 어린 시절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삼각대에 올려진 카메라가 떨고, 보조 마이크가 살짝 엇나간 그 어설픈 셈조차, ‘완결된’ 영화라는 포장 대신 불완전한 삶의 한 조각으로 전달된다. 같은 시간, 다른 취재진들 역시 현장에서 고민을 나누며, 이 영화의 생생한 호흡에 주목했다. “‘시라트’는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감독은 시사회 질의응답에서 ‘정해진 감동’이나 ‘계획된 반전’ 없이,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단면을 남길 뿐이라고 답했다. 이는 올해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된 ‘디 오더너리 라이프’, CINE21과의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이 강조한 ‘피로도-두께감의 미학’과도 맞닿는다. 세련된 내러티브는 잠시 내려놓고, 고단한 삶의 농도만을 내보이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해외 유력지 ‘버라이어티’는 “아시아 신진 감독이 시도한 가장 용감한 인생의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영화평론가 김성훈은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관객 모두가 자신의 현장, 자신의 날것에 내던져진 듯한 긴장감을 느낄 것”이라고 짚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생생한 현장성 연출은 논쟁의 지점이기도 하다.
관객 반응도 갈린다. 미리 시사회를 찾은 관람객들은 “한 편의 뉴스 리포팅을 연상케 한다” “시작부터 생생한 감각에 휩싸인다”라는 리뷰를 남겼다. 반면 안정적 스토리와 감동을 선호하는 관객들에겐 허무함, 서늘함을 느꼈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간격, 현장 중심 리얼리티와 짜임새 있는 서사의 충돌이 앞으로 ‘시라트’ 이후 한국영화계에 남길 파장에 귀추가 주목된다.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 “영화가 실제 삶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나?”라는 물음은 촬영 기자의 눈에 각별하게 맺힌다. 삶의 무게가 가장 두껍게 느껴지는 순간, 그곳에서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진짜 다큐야?ㅋㅋ 궁금해서 나도 봐야지
이것도 결국 예술 한다는 핑계지ㅋㅋ 줄거리 좀 만들어라…
리얼 하다니까 기대했는데 맨날 예술영화 드립;; 결국 관객 보고 판단하겠지 뭐. 평론가랑 관심사가 다르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