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존 오브 인터레스트
일상이라는 이름의 침묵, 그 반복 속에 숨은 악의 잔상. 2026년 2월, 국내 스크린에서 만나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는 영국 출신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제76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미리부터 각광을 받은 문제작이다. 평범함의 외피를 쓴 채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장을, 말없이, 건조하게, 서늘하게 관조한다.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장과 그 가족의 일상을 기록한 ‘사운드의 영화’, 그 충격은,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욱 선명하다. 본 기사에서 다룬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한 편의 윤리적 충격파를 던지면서, 관객에게 불편함과 각성을 강권한다.
영화의 배경은 1940년대. 주인공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드위그,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이들은 아우슈비츠 담장 옆에 세운 근사한 단독주택에서 살며 정원 손질과 가족 피크닉, 일상적 소일거리를 즐긴다. 정원 너머로는 불길이 치솟고, 아이들의 뒤편엔 자욱한 재가 떨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철저히 집 안의 평화로운 가족 일상에만 초점을 맞춘다. 학살과 고문의 참상은 화면 밖에 있다. 관객은 수용소에서 울려오는 함성, 총성, 고통의 비명과, 공기 중에 번지는 묘한 소리로만 그 현실을 알아챈다. 글레이저 감독은 직접적 묘사보다 “지독한 생략이 불러오는 상상력의 충격”을 선택했다.
이 방식은 관객을 괴롭힌다. 익숙한 가족의 웃음 뒤에 도사린, 말 없는 폭력의 기운. 특히 헤드위그 역을 맡은 산드라 휠러의 섬세한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인간적 따뜻함이 전혀 없는 응고된 우월감, 차갑게 굳어버린 도덕적 마비를 한 컷 한 컷에 녹여낸다. 반면, 크리스티안 프리델이 연기한 루돌프 회스는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로서의 무심함과 동시에, 체제에 충실한 가해자의 이중성을 용인한다. 둘의 절묘한 앙상블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구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글레이저 감독은 전체 프레임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고정된 카메라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구도의 미장센이 주는 매혹도 있지만, 사실 진짜 괴로움은 오디오에 있다. 미카 레비 음악감독의 극도로 금욕적이며 불협화음에 가까운 사운드트랙, 무작위로 터지는 경적음, 반복되는 비명 소리 등이 영화 내내 일상 그 자체를 불편하게 만든다. 관객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으로 학살과 공포를 내면화하게 된다. 적어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통상적 영화적 쾌감을 포기하며, 대신 “관조 속의 불안감”을 주입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방식에서 드러나는, 글레이저 감독의 윤리적 집념이다. 그는 홀로코스트라는 인간사 최대의 비극을 영화적 클리셰로 소비하는 걸 철저히 거부하며, 피해자 대신 가해자의 시점, 즉 “비루하면서도 건조한 자기합리화”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이렇듯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유사한 주제를 다룬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등의 명작과 달리, 오히려 탈색된 서술과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현실의 상처를 비껴가지만, 상상 속 참상은 결국 관객의 몫이 된다. 이 작품은 ‘무관심과 방관’이야말로 또 다른 폭력임을 조명한다.
이 영화는 국내 OTT 및 전문극장에서 개봉과 동시에 강한 논쟁거리를 낳고 있다. 일부 관람객들은 “과연 이런 방식의 서술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혹은 무감각함 혹은 예술의 가장자리에서 윤리와 예술의 소진을 동시에 목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에 대해 글레이저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리가 지켜보는 그 일상, 혹은 무심한 이웃과의 거리. 그것이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비인간화의 시작”이라고 고백한다. 진정한 교훈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한 편의 예술작품이 어떻게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예술이 윤리적 질문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국내외 평단에선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라거나, “늘 곁에 있지만 결코 들여다보지 않았던 진실에 대한 응시”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반면, 지나치게 차가운 감정 처리와 부족한 맥락 설명, 지나치게 스타일리시한 연출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 이 논쟁은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평소 OTT 산업 트렌드를 지켜본 시각에서 보더라도, 이런 문제작의 등장은 한국 영화시장과 관람객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최근 유사한 교훈적 작품들이 늘고 있으나, 대부분 참혹함 재현에 매달리거나 시각적 충격에 의존했다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모두의 눈길을 피해온 “소리의 공포와 무심함의 폭력성”을 건드린다. 그 미니멀리즘적 연출은 오히려 방대한 울림을 남긴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불편한 동시에 오래 잊히지 않는 이유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관객은 어쩌면 낯선 공포, 그리고 죄책감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이 불편함이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영화 밖에서, 그리고 현실의 일상 속에서 다시 곱씹게 된다. 잊혀지지 않는 영화,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 바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아니 무슨 영화가 이렇게 불편할 수 있지? 그냥 보고 나니까 멍함. 스포츠 영화랑은 차원이 다르네 진짜.
음…이런 리얼이야기 넘찐함 ㅠㅠ 영화 추천 고마워요!! 🧐
🤔이렇게 사운드 중요한 영화 오랜만! 근데 너무 무거워서 좀 힘들었음…
ㅋㅋ 인류의 악, 평범함의 폭력…철학과 영화가 진짜 이렇게 가까이 붙을 수 있냐;; 엔딩만큼은 잊을 수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