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닌 ‘경험’에 빠진 외국인들의 한국: 그들은 무엇을 소비하고 있을까?

차가운 겨울 바람에도 명동의 이른 저녁 골목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각기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커피 향이 번지는 작은 카페 한편, 아늑한 전통 찻집 앞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리는 이들. 서울 곳곳을 누비는 방한 외국인 여행자들이 ‘한국’을 느끼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전형적인 풍경, 즉 유명 관광 명소 인증샷이나, 빠듯한 일정의 투어 위주만은 아니다. 2026년 초,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트렌드는 ‘관광지 체크리스트 채우기’에서 벗어나 한국인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경험’ 중심의 패턴으로 변모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방한 외국인 관광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은 ‘한국인의 삶을 직접 체험하는 경험’이었다. 단순한 음식 투어나 전통문화 관람을 넘어, 동네 마트에서의 장보기, 현지인의 추천으로 가게 되는 동네 식당, 아침 조깅이 이뤄지는 시민공원 등 일상의 공간과 행위가 그들의 새로운 목적지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K-푸드와 트렌디한 카페 문화, 젊은 층이 즐기는 플리마켓,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미식 골목 등은 예약제로 운영되거나 대기 줄이 길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외국인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경험 방식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동남아, 미주, 유럽 등지에서 온 방문객들이 ‘소비’를 넘어 ‘참여’를 원한다. 소박한 김밥집에서 주민들과 어울리며 직접 김밥을 말아보고, SNS로 알게 된 레트로 감성의 LP바에서 사장님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등 각자의 추억을 직접 쌓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에는 ‘나만 아는 한국’, ‘로컬의 시간’이라는 특별한 가치가 부여된다. 온라인상 글로벌 리뷰와 현지 인플루언서 추천의 힘도 절대적이다. 팝업 스토어, 지역 주민이 기획자의 일부가 되어 운영하는 마을 프로그램 등이 유독 호응을 얻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돈을 쓰는 곳’이 바뀌었다는 단순 통계를 넘어, 한국이 가진 문화적 자산의 새로운 연출 방식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전통 여행지인 경복궁, 남산타워도 여전히 인기지만, 각각의 장소는 해당 공간과 엮인 삶의 풍경과 경험이 녹아들 때 비로소 차별적 매력을 뽐낸다. ‘명동에서 쇼핑’, ‘홍대에서 놀기’가 아닌, 이태원 작은 뒷골목 카페에서 사장님이 직접 로스팅한 원두향을 머금는 오후, 을지로 노포의 인심을 씹으며 정겨운 분위기를 만나는 시간, 북촌 한옥에서 열린 소규모 손글씨 클래스 등, 작지만 진정성 있는 ‘경험’이 최근 트립어드바이저 등 국제 여행 사이트의 추천 키워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로컬 경험’을 위해 요즘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의외로 문을 닫기 전 이른 저녁부터 북적이는 골목 술집, 그리고 언제라도 이야기가 꽃피는 소규모 예술 전시회와 공방 체험이다. 소비의 형태 역시, 명품쇼핑보다 소상공인의 수공예품, 동네 브랜드 굿즈, 지역 제철 음식으로 옮겨갔다. 길거리 푸드트럭에서 맛본 떡볶이 한 입, 현지 카페의 시즌 한정 디저트, 디자인 편집숍에서의 일상 소품 등이 외국인 소비 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는 미식, 취향, 그리고 ‘친근함’이 큰 축을 이룬다. 맛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외국인들도 고추장이나 청국장 같은 전통적 맛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래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1+1’ 마트 행사, 도시 재생 공간 투어, 심야 야식 투어 등 한국인들이 평소 즐기던 삶의 리듬을 함께 누리며 ‘내가 여기에 있었구나’라는 생생한 흔적을 남긴다.

반면 이와 같은 추세는 관광 산업에도 바람직한 고민을 던진다. 지나치게 ‘트렌드만 쫓는’ 마케팅, 일회용 경험 상품의 남발, 과잉 노출로 인한 로컬다움의 소멸 우려가 함께 제기된다. 일부 핫플레이스는 오히려 현지인들이 피해 다니기도 하며, 본연의 생활 리듬이 깨졌다는 토로도 들린다. 하지만 많은 골목 카페, 동네 서점, 작은 음악회 등은 새로운 손님들과의 만남 덕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키면서도 신선한 바람을 맞고 있다.

이제 한국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닫힌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공간에서, 숨겨진 취향과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한국’을 발견한다. 한 끼 식사, 한 번의 클라스, 스치듯 오가는 대화에서 피어나는 온기가 이제 가장 한국다운 순간을 완성한다. 이러한 변화는 타국에서 온 누군가와 마주치는 때 우리가 ‘우리의 거리, 우리의 맛,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더욱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여행’ 아닌 ‘경험’에 빠진 외국인들의 한국: 그들은 무엇을 소비하고 있을까?”에 대한 6개의 생각

  • 드디어 외국인도 현지 맛 알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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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컬맛집은 이제 외국인들도 점령…ㅋㅋ 핫플은 점점 포화상태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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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모든 골목까지 다 노출되는거 아니에요? 조용히 살던 동네마저 여행지되는 흐름은 고민이 필요함. 분명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골목상권을 위해서라도 정체성 지킴이 중요하다는 생각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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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히 너무 관광객 몰려서 동네 분위기 달라지는 건 별로에요. 다만, 자신들만의 경험을 찾으려 하는 그 태도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유명 관광지에서 나오는 인파가 전부였는데, 요즘엔 동네서점, 플리마켓,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손님 만나는 게 일상이 됐네요. 이렇게 되면 지역 상권이 살아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동네만의 고유한 생태가 사라지는 것도 걱정입니다. 서로 배려하면서 공존하는 방식, 한국만의 색이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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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lf_Congress

    현지인도 못 가는 핫플…ㅋㅋ 너무 인기 많으면 결국 피곤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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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쯤은 우리 동네 작은 빵집이나 시장도 외국인이 북적북적할까 상상해봤는데, 진짜 그런 트렌드가 시작되는 것 같아. 이전엔 그냥 번화가만 다니던 친구들도, 지금은 골목길 사진 찍느라 시간 다 보내고, 직접 무언가 체험하려는 게 눈에 보이니까. 이런 변화가 한국인의 일상을 더 멋지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 물론 지나친 상업화는 조심해야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맛을 즐기는지 외국인들과 공유하는 경험, 그 자체가 세계적으로도 멋진 의미가 아닐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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