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미 서평] 다시 담장 위에 오른다는 것

담장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겐 경계 선이고, 누군가에겐 안식처의 벽이다. 박세미가 고른 ‘담장’은 기억과 상실, 그리고 관계의 어딘가 절묘한 경계에 자리한다. 『다시 담장 위에 오른다는 것』은 한때 익숙했던 공간이 이제는 멀게만 느껴지는, 그래서 되짚고 싶은 지난 삶의 단면을 그린다. 책 속 인물들이 담장 위에 ‘올라서야만’ 하는 까닭은 주체의 욕망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낸 유연하고도 단단한 허들, 그리고 각자의 고독과 화해의 방식 탓이다.

박세미의 문장은 섬세함으로 가득하다. 독자는 인물들이 담장에 올라 그 선을 넘지 못할 때마다 자신이 속한 현실의 담장 하나를 떠올린다. 저자의 관찰은 아주 조용하면서도 예리하게 우리 시대 가족·우정·이웃과 같은 당연함을 해체한다. 그 해체는 고통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으로, 결국 ‘다시 올라선다’는 행위의 반복성과 집요함, 소설이 남기는 묵직함을 일깨운다. 최근 국내외에서 출간되는 가족소설과 비교하자면, 박솔메의 『서른스타그램』, 이장욱의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밤』처럼 과장되거나 기성세대를 정면 돌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울타리 안에서 담담한 서사와 심리적 깊이를 쌓는다. 독자로 하여금 그 ‘사이’의 자리를 스스로 탐색하게 만드는 힘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다.

작가는 공간을 움직이는 방식에서도 특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집, 골목, 학교라는 일상의 공간을 단순한 풍경으로 두지 않고, 각각 서사의 변곡점이 된다. 이는 다소 낡아 보일 수 있는 설정이지만, 현실감 넘치는 디테일과 감정 묘사로 낯선 울림을 자아냈다. 특히 중후반부로 갈수록 ‘담장 위’가 개인 내면의 흔들림과 아주 촘촘하게 맞닿는다. 누군가는 담장에 끝내 오르지 못하고, 누군가는 그 위에서 한참을 머문 끝에 뛰어내린다. 박세미는 여기서 냉철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품는다. 바로 그 양면성에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내어주게 된다.

산문과 소설, 그리고 자기 고백이 교차되는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겪는 일상의 불안, 그리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인간관계의 환멸. 박세미는 소리내어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이 언제라도 다시 담장 위에 오를 수 있다는, 혹은 필요할 때마다 내려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아주 조심스레 얹는다. 서정적이면서도 분석적인 묘사는, 그간 영화와 드라마 기반의 관계서사에서 점차 책이라는 매체로 확장되고 있는 국내 트렌드와 맞닿는다. 알랭 드 보통의 관계론, 최은영의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다’ 류의 서정성 역시 중첩된다. 하지만 박세미는 위로 혹은 훈계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자기-경계’의 상태를 직면하게끔 만든다. 담장 위 인물들이 결국 추락이 아닌 성찰을 길어 올리는 순간, 독자 역시 언젠가 자신의 경계선을 긋고 넘었던 과거를 떠올린다.

‘담장’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심리적·사회적 메타포는, 코로나19 이후 그 의미가 더욱 견고해졌다. 비대면 시대가 가져온 소외감, 그리고 다시금 일상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우리는 저마다의 ‘담장 위 작업’으로 치환하곤 한다. 박세미의 문장은 그런 우리 현실에 조용한 공명음을 남긴다. 선택하지 않아도, 혹은 선택하지 못해도, 담장 위에서 잠시 스스로를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일이 아닐까. 이 책이 내밀히 던지는 물음은,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스크린과 OTT가 포착하는 일상과는 또 다른 결의 쓰기에, 다시 한 번 현재 책 시장에서 ‘관계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서적의 소구력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 작품은 단지 한 가족의, 한 개인의 동선을 트레이싱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세대와 정체성, 이방성과 귀속감까지 확장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내가 오른 담장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을 숙제로 남긴 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딘가 익숙하고도 낯선, 담장 위의 시선. 박세미의 서사를 통해 경계 짓기의 피로와 위무, 그 복합적인 심리를 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박세미 서평] 다시 담장 위에 오른다는 것”에 대한 9개의 생각

  • 담장 얘기 오랜만ㅋㅋ 뭔가 감성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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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누가 담장 위에서 떨어진 적 있다 하면 진짜 책 속 얘기만은 아닐 듯요. 이 서평 보니 갑자기 골목길 산책각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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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이렇게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 또 오랜만이네🤔 담장이라는 은유 진짜 강렬함. 작가님 글 덕분에 오늘 자존감+1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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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사회가 점점 개인화 되고 있다 하는데, 이런 소설이 우리의 일상과 심리 구석구석을 다시 돌아보게 하네. 박세미 작가가 집, 골목, 학교 같은 하루하루의 공간으로 관계와 자아 경계를 탐색한다는 점이 진짜 인상 깊음. 담장 소재가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데 이걸 다시 해석해내는 디테일이 생각보다 깊네요. 결국 우리도 담장 위에 스스로 올랐다가 내려오는 반복적 일상 안에서, 관계의 본질을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싶어요. 이 서평 덕분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골똘한 생각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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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장 위라… 결국 다 자기 경계만 신경쓰다 끝나지 뭐. 사회라는 것도 결국 개인고립의 연속인 듯. 작가만의 메시지는 괜찮은데 현실 적용은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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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장 소재 또나오네🤔 신선하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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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에 소설 서평 보는데 담장이라는 공간적 상징성을 이렇게 깊이 파고드는 소설은 흔치 않은데, 박세미 작가가 심리적 경계와 사회적 메타포를 묘사하는 방식이 꽤 신선하네요. 한국 문단에서 관계의 본질을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집요하게 해체해버리는 작가 많지 않은데, 이건 확실히 주목받을 작품인 듯. 코로나 이후로 인간관계가 더 복잡해졌다는 말이 실감나서 공감도 되고, 스크린 매체에서 느끼기 힘든 잔잔한 현실감을 이 서평에서 잘 담아준 것 같아요. 이런 책이 자주 소개되었으면 좋겠네요. 스스로의 경계와 거리를 재정립하는 과정, 우리 모두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할 문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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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담장 얘기라니ㅋㅋ 현실은 피곤 그자체임! 가끔 저런 문학 감성 부럽다, 근데 매번 쉽지는 않은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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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tter_impedit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어 독서 욕구가 생기네요. 앞으로도 이런 감성적인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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