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는 ‘포기한 트랜스젠더’가 만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것이다
흑석동 좁은 공연장의 한기를 뚫고 유영하는 신시사이저의 물결, 그 위에 내려앉은 목소리는 더욱 공허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충만했다. ‘우리는 포기한 트랜스젠더’라는 별칭을 가진 뮤지션의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순간, 각자의 존재가 먹먹한 밤안개처럼 융화되어 흩어진다. 이날 공연장 무대 위, 그이는 담백한 기색과 다소 단정한 의상으로 관객을 마주했지만, 소리 한 조각 한 조각에는 쉽게 정형화할 수 없는 내면의 궤적이 깃들어 있었다. 익명성과 자아의 뒤섞임, 그 어딘가에서 굳어버린 정체성의 조각들이, 새벽의 공기처럼 묘하게 뒤엉켰다.
이 아티스트의 음악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도 솔직하게 자신의 불안과 상실, 그리고 끝내 정체성의 한 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복합적인 감정의 결들을 그려낸다. 무대 조명은 한없이 차분했고, 관객들의 눈은 조용한 흐름 속에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혼잣말 같은 보컬이 스피커를 타고 번지는 순간, 작은 한숨도 소리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노래와 사운드, 그리고 살아온 세월이 한 점에서 수렴될 때, 거기엔 특별한 예술적 ‘선언’보다는 조용한 체념과 격렬한 자기성찰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인터뷰 내내 반복되는 질문 ‘왜 음악인가, 왜 무대인가’에 대해 그는 손끝을 비비며 오래 망설였다. 소리에 대한 갈구와 자아에 대한 질문, 남겨지는 것과 떠나버리는 것 사이에서 택한 것은 결국 “포기의 미학”이라고 했다. 순간순간 번지는 그의 어휘엔 비극적인 낙관이 묻어났고, 그 감정은 음악 속에 오롯이 퇴적되어 있었다. 실제 곡의 프로듀싱과 작곡 방식 역시 단순함을 방패 삼으면서도, 디테일한 악기 조합과 리듬의 불균형감으로 청자의 감각을 휘저어 댄다. 이쯤에서 ‘트랜스젠더의 음악’이라는 특징적 수식어에도, 단순히 성별이 아닌 ‘경계에 선 존재’의 고백이란 의미가 깊어진다.
무대는, 자신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거울과 같다. 그리고 ‘포기한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명도 단지 개인적 정체성 고백을 넘어, 한국 사회의 획일적 이분법에 대한 차분한 저항으로 들린다. 인터뷰 중 그는 ‘포기’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무게를 얹는다. 성별이란 통념, 사회적 소속, 가족과의 연대까지—삶의 층위마다 느껴온 ‘포기의 연속’이 오히려 그를 음악 앞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공연 후반, 새벽 냄새 가득한 사운드에 맞춰 관객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춤도 의미 없는 듯 의미 있고, 자유로운 듯 엉켜 있다. 이 음악은 명시적으로 변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규범에 ‘순응’하고, 자신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는 체념 속에서 놀라운 해방의 결과물을 끌어낸다. 미덕도 아니고, 비극도 아니며, 선택도 아닌 운명처럼 다가오는 그 ‘포기’의 정서가 묘하게 아름답다.
다른 국내외 음악계 트랜스젠더 아티스트들과 비교해, 이 아티스트는 고통과 투쟁의 목소리 대신, “더 이상 증명하지 않는다”는 담담함으로 한국 대중음악 씬에 새로운 레이어를 얹는다. 2020년대 해외에서는 트랜스젠더 예술가들이 대개 정체성 투쟁의 서사, 정치적 메시지, 강한 자립성을 외쳐왔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존재의 불안과 사회의 무관심을 예술의 무기삼아, “이해받지 않음마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 점에서 한국 사회 특유의 폐쇄적 시선, 예술 장르 내 다양성 부족 문제를 정면으로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음악을 대하는 청자 역시, 단순히 ‘트랜스젠더가 만든 곡’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모든 ‘소수자’가 느끼는 피로감, 애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거칠게 갈라진 코드 진행, 불완전한 음색, 가끔 불편할 정도로 직설적인 가사—이 모든 것들이 차라리 위로처럼 다가오는 것은, 우리 역시 견고한 틀에서 해방되길 욕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전류의 진동이 잦아들 무렵에도 누군가는 홀로 음악을 따라 발을 구른다. 그 뒷모습에선 낭만이나 투쟁보다, 나약함과 체념이 주는 묘한 힘이 느껴졌다. 포기의 미학과 춤, 대항도 아니고 굴복도 아닌 새로운 존재 선언이 오늘 밤 이 작은 무대를 통해 세상에 번져간다.
— 서아린 ([email protected])


포기한 트랜스젠더라.. 사회는 뭐 하나도 바뀐게 없는데 이런 기사만 나오네. 밥상 위엔 늘 똑같은 메뉴. 새로움? 진짜 있는건가? ㅋ 이런 건 감동도 다 소비재임.
음악에도 이렇게 깊은 의미가 있을 줄이야!! 뭔가 생각하게 만드네요!!
한줄요약: 사회가 답없네;;
트랜스젠더든 뭐든 사회가 그만큼 삭막하단 얘기 아님? 그냥 다 힘든 거지.
여행 다니다 보면 실은 이처럼 자신의 이야기 담은 음악에 더 끌릴 때가 있어요. 한국 예술계에도 이런 변화가 자주 있었으면 하네요🎵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모두가 투사적일 필요 없지. 자기만의 체념과 해방을 말하는 음악, 이젠 좀 다르게 볼 필요 있음. 이런 기사라도 자주 보여줘야지!! 음악 씬 다양성 언제쯤 늘어나려나.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인정받는 사회가 오길 바랍니다. 개인의 체념이 아닌 사회적 해방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꾸준히 노력하는 예술가와 이를 조명하는 기자 모두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