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신유담의 ‘현무암의 폐활량’이 남긴 겹겹의 울림

쌀쌀한 3월, 올해로 14회를 맞은 제주4·3평화문학상의 수상작 ‘현무암의 폐활량’(신유담)은 평화, 기억, 그리고 이어지는 역사적 질문을 근대문학의 감각으로 조율해냈다. 흔히 ‘문학상’이라는 이름의 무게 뒤엔 시류를 따르는 흐름 혹은 의례적인 재현이 공존하기 마련인데, 이번 수상작은 그 문턱을 단호히 뛰어넘는다. 4·3이라는 키워드는 제주라는 지역이 품은 아픔과 전국적 역사 이면의 그림자를 상징한다. 그 키워드 속 신유담은 ‘현무암’이라는 우직하지만 깊은, 제주를 대표하는 돌의 질감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의 언어는 현무암의 공기가 폐에 스며들 듯 반복과 응시의 구조를 취해, 살아남은 이들과 기억하는 이들 사이의 ‘숨’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올해 평화문학상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4·3을 말할 수밖에 없는가. 해방과 분단, 국가폭력의 이중구조에서 겹겹이 사라진 개인과 집단의 목소리가 이 문학상 위에서 새벽 어스름처럼 되살아난다. 신유담은 화려한 데 없이 차분한 시선으로 ‘돌’에 기대는 사람들의 일상, 돌담 아래 남은 그림자까지 문장에 담아낸다. ‘폐활량’이란 제목만큼이나, 이 작품은 제주라는 곳의 긴장과 진실, 여백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호흡을 닮았다. 마치 바다 바람이 부는 섬에서 천천히 숨죽이며 걷는 산책자처럼, 독자는 시종일관 느릿하고 깊은 문장과 마주한다. 단순히 아픔을 호출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지키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일상의 언어로 되묻는다.

영화와 드라마가 담지 못하는 소리 없는 침묵, 문학만이 건드릴 수 있는 내부의 떨림이 공존한다. 최근 몇 년 간 4·3 관련 창작물들은 도식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희생·가해, 용서·화해의 대비는 뾰족했다. ‘현무암의 폐활량’은 이 구도를 거부한다. 오히려 각자의 내면에서 이어지는 파문, 불현듯 솟는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 한 편의 서정으로 녹아든다. 신유담의 문장은 상징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담담한 체취, 혹은 일상의 습관들이 하나의 풍경이 된다. 현무암 조각 위에 쌓이는 비, 섬 바람, 마을 어귀 이름 모를 노인의 걸음까지 모두가 서사의 질감으로 기능한다.

문학상의 심사 결과도 이례적이었다. 심사위원단은 ‘현무암의 폐활량’이 보여준 지속적인 응시, 깊이 있는 언어의 구조에 만장일치로 박수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신유담은 비교적 젊은 문단에 있지만, 작품 곳곳에서는 노작가적 내공이 비친다고들 평했다. 4·3이라는 소재를 한 번도 과장하지 않고, 대리인의 언어가 아닌, 지역민과 유가족이 오랫동안 반복해온 숨의 이미지에 몸을 밀착시켰다. 직접적 메시지나 정치적 태그가 아닌, 문학의 장력이 충분히 발현되는 지점에 선 것이다.

원로 문인들, 제주 출신 작가, 지난해 수상작들과 비교하면, ‘현무암의 폐활량’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해묵은 클리셰의 파괴다. 4·3은 반복적으로 호출되나 실제 현장에서 평화의 의미, 치유의 실천이 작품에 반영된 경우는 드물었다. 신유담은 물러서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다. 작가적 중립을 유지하며,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감응과 사유를 작품에 투사한다. 문단에서는 흔치 않은 ‘인내의 미학’이다. 그는 평화, 아픔, 용서 같은 거대한 단어들을 지워가며, 남은 빈자리에서 잔잔히 독자와 눈을 마주친다.

출간 직후부터 평단과 독자의 의견이 크게 갈렸다. 특히 젊은 독자층은 ‘늦은 평화’에 비관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지만, 상당수는 작가의 절제와 성찰, 제주 공동체가 오롯이 정서로 살아나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는 단숨에 읽히는 서사가 아니라 천천히 삭이고 곱씹어야 하는, ‘새로운 평화문학’의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드라마에서 소외된, 혹은 피로한 진실의 소재가 올곧은 문학 내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지점이다. 제주4·3이 단순히 역사적 슬로건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흔드는가에 대해, 신유담식 ‘돌의 서사’로 답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또한 올해 시상식은 예년과 달리 4·3 생존자, 유족, 지역 시민 등이 대거 참석해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 형성됐다. 작품과 현실의 경계가 열린 자리, 이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임을 다시 확인했다. ‘현무암의 폐활량’이 올해 평화문학상 수상이란 공식적 금자탑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평화와 기억, 그리고 다음 세대로의 전승이란 숙제를 안고 갈 때 곁에 남는 텍스트이기를 바라본다.

이제 70여 년을 넘어 새로운 시대, 문학의 응답은 다시 독자 쪽으로 넘겨진다. 거친 현무암처럼 단단해진 우리의 현실, 그 사이 새어나오는 조용한 숨결을, 각자의 방식으로 품을 때 비로소 또 다른 평화가 시작된다. 신유담의 작품이 남긴 오래가는 울림에 깊은 경의와 기대를 남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제14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신유담의 ‘현무암의 폐활량’이 남긴 겹겹의 울림” 에 달린 1개 의견

  • 4·3문학상, 솔직히 대중적 영향은 글쎄임… 이런 식의 문학상 관심 끌기 그만 좀 했으면. 문학계 자기들끼리만 박수치고 끝;; 그게 바뀔까 싶냐?? 🤷‍♂️ 시대 유행타는 감성 우려먹기 이제 지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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