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얼굴이 참 넓으시네요” – 얼굴의 의미,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
누군가에게 ‘얼굴이 참 넓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 이 말이 순수한 농담만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적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칼럼은 바로 그 말을 중심에 놓고, 얼굴이라는 은유를 따라 걷는다. 단어 그대로, 혹은 상징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나.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얼굴에 얼마나 쉽게 선을 그으며, 또 얼마나 쉽게 넓힌다.
‘얼굴’이란 단어는 물리적 형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존재감, 뻗어가는 영향력, 인간관계의 그물망까지 아우르는 넓은 결을 갖는다. 정수윤 작가가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수많은 ‘얼굴의 풍경’을 담담하게 풀어가는 이번 글은 무거운 진단보다는 섬세한 관찰에 가깝다. 작가는 ‘얼굴이 넓다’는 말을 뒤집어, 사람들의 관계망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성찰한다. 그의 필치는 평면적인 감상의 한계를 넘어서, 독자 각자의 내면 풍경에 말을 건넨다. 마치 도시의 뒷골목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낯선 이와의 짤막한 인사처럼, 이 글은 똑같은 얼굴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것을 권한다.
최근들어, 사회 곳곳에서 관계의 피로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SNS에서의 ‘얕은 인연’, 메시지 앱에서의 ‘끝없는 답장’, 직장·동호회·커뮤니티까지 일상의 ‘소셜 효율성’이 무너져가면서, 우리 모두의 얼굴은 점점 더 ‘넓어’지는 대신,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시간은 오히려 줄고 있다. ‘얼굴이 넓다’는 한국식 관용구엔, 사회 구조와 인간의 속성이 파고든다. 덕분에 우리는 때론 관계가 버거워 숨고 싶고, 때론 그런 관계의 ‘확장’ 덕분에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기도 한다.
얼굴이란 얼마나 민감한 조형물인가. 어떤 관계는 얼굴의 표면만을 스치고 지나가고, 어떤 인연은 굵은 주름 하나처럼 마음 깊숙이 남는다. 정수윤은 우리에게 자신만의 얼굴 지도를 그려보라 한다. 어릴 적 친구, 오래된 가족, 우연히 마주친 이웃, 오랫동안 잊고 지낸 사람들까지—도시에 깔린 수많은 ‘지문’을 우리는 얼굴로 읽는다. 그 풍경 속에서 작가는 사적인 경험을 조심스럽게 공유한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바라보는 이의 태도에 따라 얼마나 잔잔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시선을 돌려, 동시대의 최근 출간물과 사회적 분위기를 짚어본다. 2025년~2026년 들어 인간관계의 밀도, 개인의 소셜 피로도를 다루는 에세이서 및 심리학적 논의들이 꾸준히 주목 받았다. ‘관계의 비밀'(2026, 박정윤)은 ‘얼굴의 거리’에 집중한다. 사회적 네트워크 나비효과(마크 그래노베터의 ‘약한 연결의 힘’이 국내에도 다시 주목), 인간관계의 ‘넓이’와 ‘깊이’에 대한 묘사는 여러 서적과 인터뷰, 칼럼에서 화두가 되었다. 정수윤의 이번 칼럼 역시, 이런 흐름에 자연스레 닿아있다. 익숙한 듯 낯선 시선에서, 스스로의 얼굴과 타인의 얼굴을 세밀하게 관찰하자고 말한다. 최근 증폭된 ‘타인의 시선 피로’, ‘사회적 탈진’ 현상을 분석하는 여러 논문, 그리고 현장 인터뷰. 그 곳에서도 얼굴은 언제나 관문의 역할을 한다.
정수윤의 문장은 인위적 울림이 없다. 그는 얼굴이란 단어가 주는 어쩔 수 없는 애잔함, 그리고 그만큼의 희망을 동시에 잡아낸다. 남의 시선에 자신을 내맡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일엔 망설임이 앞서는 우리들. ‘얼굴이 넓으시네요’라는 농담 섞인 인사는, 누군가의 사려깊지 못한 평가이기도,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인연 속 어색함 돌파구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미묘한 틈에 감정의 여백을 남긴다.
한국 사회 특유의 인간관계에 스며든 눈치, 체면, 그리고 소위 ‘인맥’의 누적된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고도성장기의 ‘연줄’, 2000년대 온라인 커뮤니티의 폭발적 성장,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으로 옮겨간 소셜 풍경까지. ‘얼굴이 넓다’는 평가는 시대마다 그 온도가 달랐다. 예전엔 관계의 무형자산이었으나, 이젠 피로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 드라마 ‘인연의 방법’(2025)와 같은 작품들도 관계의 두께와 피로, 새로움을 반복적으로 다룬다. 정수윤의 글은 이런 시대적 흐름, 그리고 개별 독자의 일상 감각을 균형있게 노크한다.
마지막 문장의 울림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결국, 자기 얼굴과 마주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넓고 좁음을 넘어서, 얼굴마다 깃들인 고유의 결과 이야기가 진짜 소중해진다. 어쩐지, 이 농담 한마디가 오랜 우정이나 따뜻한 위로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더 상대의 얼굴, 그리고 내 얼굴을 뜨겁게 바라볼 수 있을까.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