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한상 요리 레시피북’ 발간
맑은 이른 겨울의 오후, 한 권의 레시피북이 출간됐다. ‘보은한상 요리 레시피북’이라는 정갈한 이름, 그 제목 속에 담긴 감각적 아우라는 한식에 대한 애정과 보은(報恩)의 뜻, 그리고 삶의 차분한 미학까지 함께 떠올리게 한다. 이번 책은 단순한 요리법의 전수가 아니라, 지방의 뿌리 깊은 음식 문화와 정서를 담으려는 따스한 시선에서 비롯됐다. 책장을 넘기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와 더불어, 한 상 가득 올린 속 깊은 손맛, 토속의 묘사, 식탁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에 관한 경험적 이야기들이 같이 펼쳐진다. 식재료 구입부터 손끝에 닿는 순간의 촉감, 조물거림, 말갛게 끓는 육수 내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레시피북의 주 무대가 되는 ‘보은’은 충북 내륙의 조용한 마을이다. 사계절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들판의 풍경, 그 비옥한 토양이 숙성시킨 안전한 재료들이 테이블 위로 차려진다. 특히 이번 발간은 지역 여성단체와 현지 셰프, 그리고 오랜 세월 시골밥상을 지켜온 할머니들의 손이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누군가에겐 잊힌 듯 하지만 사실 우리의 내면에 촘촘히 그려진 요리를, 사진과 에피소드, 단정한 설명으로 천천히 씹게 한다.
한겨울 단지 고구마 한조각을 불 위에 얹었던 기억, 삼삼한 된장찌개가 가족을 불러 모으던 저녁, 고소한 메밀전병을 둘러싸고 나누던 오랜 이야기들. 책은 그런 풍경들을 소박하고 다정하게 돌려놓는다. 하나의 레시피 안에는 시대의 길이와 시대를 건넌 사람들의 체온이 깃들어 있다. 소박한 밥상에 담긴 장맛과 담백한 곡물의 결, 친숙한 손길과 시간의 무늬까지. 각 장마다 전해지는 감각의 레이어가 겹겹이 파동처럼 번져, 읽는 이의 마음에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다른 요리서와 차별화되는 점은 레시피에만 머물지 않고, 각각의 음식 안에 깃든 공동체의 서사를 담았다는 것이다. 냉이국을 끓이던 어느 노모의 풍경, 떡메질 소리로 가득 찼던 마을마당, 아이들이 뛰놀던 잔디밭에서의 소박한 피크닉. 모든 한 끼가 주는 영양과 위로, 그리고 그 너머의 정과 계절감까지 한 장 한 장 엮인다. 음식이란 결국 사람을 돌보고, 기억을 불러오며,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아늑한 도구임을 책장은 조용히 반복해 말한다.
최근 몇 년 새 우리 사회엔 빠르고 편리한 음식 문화가 컸다. 도시적인 속도와 단순한 조리법, 손쉬운 배달식으로 한식 본연의 투박함과 손맛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 ‘보은한상 요리 레시피북’은 되려 느림의 미학을 권한다. 유행하는 글래머러스한 비주얼이나 트렌디한 플레이팅이 아닌,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유서 깊은 레시피,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이는 촛불 같은 정서가 책 한 권에 오롯이 담겼다. 마음 먹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따뜻하게 펼칠 수 있게 구성됐다.
현장에서 직접 만난 저자들은 입을 모아 강조했다. 이 책의 첫 목적은 지역사회와 가정, 그리고 1인 식탁까지 이어지는 모든 독자에게 요리의 즐거움, 식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연결의 기쁨을 ‘평범한 한상’에 담아 전하는 일이라고. 실제로 최근 타 지역에서도 점점 잊혀가던 토속요리 레시피가 SNS와 동네단톡방을 통해 되살아나며, 한식의 전통 조리과정이 새로운 젊은 세대에게도 슬며시 전해지고 있다. 인스턴트화되는 조리법 속에서도 ‘한상차림의 깊이’를 찾으려는 이들의 움직임이 넓어지는 추세다.
동시에, 이 책은 음식에 깃든 삶 자체에 대한 소박한 존중을 꼼꼼하게 강조한다.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인 손길의 무게, 재료에 대한 예의, 계절 앞에서 수집한 감정까지 실려 있다. 특히 몇몇 레시피는 지역 공동체의 역사를 드러내는 동시에, 가족의 스토리까지 이어지는 미시적 역사가 곳곳에 퍼져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간 잊고 지냈던 내 어린 시절 주방의 풍경과, 우리 가족의 식탁 위 단단했던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읽힌다.
흔히들 음식책을 실용의 영역으로만 보지만, ‘보은한상 요리 레시피북’은 일상을 다시 돌아보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작은 풍경을 포착하게 하는 감성적인 힘이 돋보인다. 타인의 식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누군가의 추억까지 살며시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리나 먹는 즐거움을 넘어 정서적 위로로도 충분하다. ‘레시피북’이라는 단순한 목적 너머로, 따스하고 천천히 다가오는 위안, 그날의 온도를 오롯이 안겨주는 한 권이다.
따스한 저녁 불빛 아래서 가족이 다시 모이고, 각자의 추억을 나누게 되는 식탁. 이 책 한 권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식문화도 좀 더 부드럽고 다정한 풍경으로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정말 보은 지역의 음식문화가 잘 담긴 것 같네요.👍 이런 책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지역 공동체의 이야기가 음식으로 전해지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