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의 믿음이 만든 공간, 무주의 시간: 덕유산전통순두부 이야기

아침 시간, 덕유산 자락에 안개가 자욱이 깔릴 때 무주읍 작은 골목길 끝을 걷다 보면, ‘덕유산전통순두부’라는 간판이 시처럼 걸려 있다. 오래된 나무 서까래 위로 겨울바람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도, 그 안의 온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식당이 ‘단골 손님들에게 멱살잡혀 장사한다’는 표현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가는 손님들의 애정과 추억이 한데 모여 이곳의 시계를 움직인다는 걸 의미한다. 실은 주인장이 장사를 몇 번이고 정리하려 했으나, 단골들의 전화와 방문, 진지한 권유가 식당 문을 다시 열게 했다고 한다.

무주의 산중에 위치한 한 그릇의 순두부. 멀리서도 발길을 이끄는 것은, 그 담백한 맛이 눈처럼 소복이 쌓인 계절과 닮았기 때문이다. 콩을 물에 불리고 맷돌로 직접 갈아 만드는 순두부의 하얀 결은,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진한 향을 머금는다. 취재 중 만났던 손님 중 한 명은 “매번 서울에서 내려와도 여기는 그 맛이 꼭 지켜지더라”며 오래된 단골임을 자랑했고, 식당 곳곳에는 수년간 축적된 손님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사랑이 이런 공간을 살리고, 식당 주인장의 예스러움이 은연중에 전해지는 곳이다.

무주 덕유산 인근 식당들은 각축장이 붙듯 새로 생기고 사라지곤 한다. 신문물, 프랜차이즈, 자극적인 메뉴가 몰려들 때도 ‘덕유산전통순두부’는 소박함을 지킨다. 인테리어는 세월의 더께가 느껴질 만큼 투박해서 오히려 안온하다. 겨울 명절마다 가족이 모이는 거실처럼. 오래된 국산 양은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찌개에 마늘 한 점, 파송송 썰어넣으면 그곳을 채우고 있던 손님들 모두 어린 시절의 따뜻한 밥상을 떠올린다. 단골의 멱살잡이로 겨우 버티는 집이라기보단, 단골의 애정이 지탱하는 ‘충분히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최근 무주 관광이 부쩍 늘어나며, 외지인들에게도 이 가게가 ‘맛집’으로 입소문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인장 김영순(가명) 씨는 여전히 ‘내 맛을 지키는 게 먼저’라는 태도를 고집한다. 계절별로 달라지는 콩의 수급, 동네 두부방앗간과의 협업, 아침마다 직접 고르고 삶는 콩의 양까지. 작은 식당이지만, 이런 꾸준함이 수십 년간 이어온 비결임을 취재 내내 실감한다. 시장 바닥의 뜨거운 두부 한 모 사서 먹었던 그 시절의 감미로움이, 여전히 이 집 밥상 위에 머문다.

지역 내 여러 식당들이 ‘인스타용 한컷’과 ‘자극의 맛’을 내세우는 요즘, 덕유산전통순두부는 손님이 자리마다 직접 구수한 국물을 나눠 마신다. 이곳 단골들보다 더 정확하게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 저마다의 단골 자리를 지키고 앉아 서로 인사를 곁들이고, 주인장은 손님 한 명 한 명의 기호를 익히 안다. 알음알음 전해 내려오는 ‘무주의 식구’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음식에 담긴 정성, 공간을 채우는 온기, 그 모두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새로운 메뉴가 늘어난 것도, 인테리어가 세련되어진 것도 아니지만, 이 식당의 ‘장사 유지 비법’은 오롯이 사람의 힘에서 나온다. 타지에서 온 여행객, 고향을 찾아온 이들과 시린 겨울 속 한 끼를 나누는 단골들. 그들 모두가 “멱살잡이”란 표현 뒤에 숨겨놓은 따뜻한 정을 알아챈다. 순두부찌개에서 퍼지는 두부 알갱이의 부드러움은, 무주 산중의 겨울을 달래는 손길과도 닮았다.

이런 고집은 오늘의 한국 식문화에 작은 일침을 던진다. 화려한 미식 트렌드와 SNS 마케팅이 판을 치는 시대임에도, 가장 진짜 같은 밥상과 맛은 사람에게서, 그리고 시간이 녹아있는 평범한 동네 맛집에서 태어난다. 고향집의 오래된 냄비처럼, 단골의 기억과 손끝에서 지켜진 맛이 있다. 무주 골목 가장 끝, 덕유산전통순두부에서 흘러나오는 김은 그저 식당 문 앞에만 머물지 않고, 각자의 삶 속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

식당의 한쪽 벽면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메모지들이 겹겹이 붙어 있다. 그중에는 “사는 게 고단할 때면, 여기 순두부 생각이 났다”는 글귀도 숨듯 적혀 있다. 이 집의 온기란, 그렇게 가끔 삶에 지친 누군가를 다시 일으킨다. 음식은 살아있는 기억이고, 덕유산의 자연, 공간과 사람, 정성 가득한 순두부 한 모가 그 모두를 부드럽게 이어준다.

그래서 오늘도 덕유산 자락에서 “멱살잡혀 장사 중”인 한 식당의 풍경은, 바람결과 삶과 사람 사이에 오래도록 남는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단골의 믿음이 만든 공간, 무주의 시간: 덕유산전통순두부 이야기”에 대한 7개의 생각

  • 여행갈 맛집 찾는다고 검색하면 너무 뻔하고 화려한 집만 나오는데, 이런 곳이 진짜 무주의 시간을 담아내는 집 아니냐. 단골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느껴진다. 경제 논리로만 돌아가는 세상에 이런 온기 지키는 집, 앞으로도 건재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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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히 이 정도로 단골들이 바라는 집은 일단 가봐야 한다고 봄🤔 먹는 순간 겨울 바람까지 녹일 듯한 순두부, 거기에 단골들 멱살잡이ㅋㅋㅋ 이런 감성 진짜 옛날생각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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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지역 맛집 느낌👍 순두부 먹으러 무주 가야 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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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자극적인 트렌드 대신 오래된 맛, 단골과 주인 사이의 피곤함마저 정겨운 이야기는 한국적인 정서 그대로인듯. 언젠가 꼭 직접 방문해서 그 정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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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집 덕분에 무주의 순두부 여행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네요😊 사소한 음식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꼭 느끼고 싶어요. 단골의 힘, 주인장의 고집, 이게 지역문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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