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사회’에서 책이 가진 힘을 다시 묻는다
‘도파민은 넷플릭스의 일… 깊이감 안겨주는 책 쓸 것’이라는 문장은 수많은 자극을 생산해내는 현대 미디어의 본질을 겨냥한다. 도파민, 즉 빠르고 즉각적인 만족감, 쉽게 소비되는 콘텐츠의 대명사처럼 된 넷플릭스와 대조되어 ‘책’은 의도적으로 깊이와 사유를 제안하는 매체로 소환된다. 이 발언은 최근 발간된 신간 ‘도파민 네이션’과 그에 대한 문화적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책의 저자이자 스탠퍼드 의대 교수인 애나 렘키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도파민에 중독되고, 그 결과 우리가 어떻게 쾌락에만 집착하는 삶을 살게 되는지, 나아가 이 문화가 우리에게서 얼마나 많은 ‘깊이’를 빼앗아 가는지를 천착했다.
이 담론은 2020년대 중후반 한국 출판계와 문화생태계의 위기감과도 닿아 있다. 독서 인구의 축소, 영상 위주로 재편되는 MZ세대의 미디어 소비행태, 출판인과 작가들의 ‘독자의 사라짐’에 대한 실감 등 현실적 고민이 응축되어 있다. 그 속에서 ‘책’은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아무도 끝까지 호흡을 이어가지 못하는 일상에서, 어떻게 독서라는 행위가 가능한가? 넷플릭스, 틱톡,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이 제공하는 끝없는 도파민 파티에서 ‘깊이’는 과연 유효한가?
애나 렘키는 인간 본성을 신경과학적·심리학적으로 풀어내며, 소셜미디어·동영상·게임·쇼핑 등 곳곳에 도사린 도파민 트랩의 정체를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화법이 비난을 넘어서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데 있다. 단순히 ‘책이, 사유가 중요하다’는 계몽적 구호가 아니라, 도파민에 함몰된 사회에서 인간의 고통, 나아가 인간성 회복을 위한 경로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한국사회 독자들은 이런 메시지에 여러모로 공감한다. 최근 급증한 자기계발서, 심리·마인드풀니스·디지털 디톡스 서적의 인기와 맞물려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재조명되고 있다.
비평적 관점에서 보자면, “도파민은 넷플릭스의 일”이란 프레이즈는 다소 극단적인 구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나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거나 사회 분석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도 적지 않다. 기술적으로 영상매체도 담론 생산의 효과적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파민=자극적 미디어, 책=깊이와 사유라는 도식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프레이즈가 독서와 사유의 가치에 대한 위기감, 그리고 ‘우리가 놓치는 인간성’에 대한 절실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배우와 감독의 스타일 분석처럼, 애나 렘키의 텍스트는 독자와의 시선 맞춤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단순한 규범적 언사가 아니라, 실제 임상 연구와 사례를 통해 우리가 ‘쾌락의 시대’를 견디는 법을 묻는다. 대중문화의 흐름, 즉 OTT와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빠르고 짜릿한 경험의 축적’에 도전장을 내던지는 자세다. 이 지점에서 한국 독서계 인사들의 발언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러 출판인과 작가들이 “지금은 깊이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청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며 현실을 직시한다. 동시에, ‘독서가 역설적으로 특별한 행위가 되어버린’ 시대상에 자조와 통찰이 섞인다.
이 흐름을 글로벌로 확장하면, 이미 북미와 유럽 곳곳에서 ‘디지털 디톡스 운동’이 삶의 패러다임이 되었음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멀어지고, 느린 독서와 필사, 집단 리딩 모임이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 되고 있다. ‘도파민 네이션’은 그 최전선의 문장을 포착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독자는 여전히 ‘깊이’를 갈망하지만, 마음은 유튜브와 쇼츠, 인플루언서의 라이브 방송을 찾아 움직인다. 이 모순이 바로 2026년의 문화 풍경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시 책의 힘이다. 미디어와 자극이 넘실거리는 풍경에서 여전히 저마다의 고유한 세계가 가능함을 믿는 이들을 위한 조용한 응원. 작가들이 ‘깊이감 안겨주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도파민의 격류를 잠시 딛고, 사유의 탑을 쌓아올리는 일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이다. 지속 불가능한 자극의 시대, 느림과 집중, 사색과 이야기가 다시 희소가치를 띠는 오늘.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와 작가 모두가 인간 삶의 복원력(resilience)을 되찾아야 한다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시대적 신호로 읽힌다.
책이라는 아날로그 플랫폼의 새로운 가능성은 오히려 첨단 디지털 피로에 물든 세대에게 더 절실하다. 도파민이 아닌 깊이의 언어, 살아 있는 이야기의 힘을 복원하는 운동. 넷플릭스, 유튜브, 틱톡 등 스크린 스크롤 속을 벗어나기 두려운 우리에게 이 책은, 아주 사소하지만 단호한 질문을 남긴다. ‘과연 나는 얼마만큼 느리고 오래, 한 세계에 머물러 볼 수 있는가.’
— 한도훈 ([email protected])


맞춤법 제대로 쓰신 건 좋네요. 근데 요즘 누가 책 읽어요? 솔직히 넷플릭스도 인생이고 책도 인생임.
아무리 도파민 얘기해도 우리집엔 책 먼지만 쌓임ㅋㅋ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책 추천도 같이 해주시면 더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