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조용히 달아오르는 미국 극장가의 한국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미국 45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하며 박스오피스 12위라는, 조용하지만 인상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국내 개봉 때도 마니아층 위주의 입소문을 탔던 이 작품이, 미주 지역이라는 전혀 다른 시장에서 상업적인 성공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숫자와 함께 문화적 파장까지 예고하고 있다. 한국 영화가 북미 상영에서 성적을 논할 때 흔히 블록버스터 혹은 화제성 만점 작품이 유리하다지만, ‘어쩔수가없다’가 만들어내는 이 낙차는 어쩌면 2020년대 ‘K-시네마’의 또다른 면을 보여준다.

올해 한국·아시아 영화들의 미국 진출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콘크리트유토피아’, ‘밀수’, ‘잠’ 등 메이저 작품이 잇따라 LA, 뉴욕의 대형관 상영 혹은 소규모 극장 배급을 거쳤으나, 상당수는 교포 커뮤니티나 영화제 중심의 ‘한정판’에 머물고 있다. 이에 비해 비교적 소박한 출발을 보인 ‘어쩔수가없다’의 45개관은 미묘하다. 전국 체인관은 아직 아니나, 중소도시와 대도시의 각기 다른 극장에서 개봉, 일주일간 상영 연장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는 단순 수치로만 봐도 각별하다. 아시아 독립·예술영화가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진입하는 일이 결코 쉽게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원 감독 특유의 날카롭고 위악스러운 리얼리즘, 그리고 류준열·오정세의 밀도 높은 연기는 비즈니스와 예술의 간극, 인간의 수치심과 집착을 이중적으로 그린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미국 언론의 평가는 ‘덜 알려졌지만 한 층 깊은 한국식 페이소스와 아이러니’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기생충’이나 ‘브로커’의 직접적 사회비판이나, ‘범죄도시’식 통쾌함과 다르다. 대신 누구나 겪을법한 아슬아슬한 선택, 인물의 ‘불가항력’을 통찰하며, 정서적 서늘함을 관객에게 맡긴다. OTT 세대에 익숙한 미주 관객들에게, 어쩌면 이런 미니멀리즘적 리얼리즘이 신선하고 섬뜩하게 다가온 듯하다.

전체적 분량이나 흥행 규모면에서 ‘박스오피스 12위’는 국내 중심 시각에선 작은 성공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미국 아트하우스 시장은 뉴욕 IFC 센터, LA 러멜 극장 등 주목받는 극장가에서 아시아·유럽 영화에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현지 커뮤니티 내 다양성 니즈가 커지며, 소규모 극장들의 한국영화 ‘픽업’ 빈도도 높아졌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상영’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객이 존중받는 작품들을 선정하는 흐름, 이 가운데 ‘어쩔수가없다’가 중간 규모로 안착했다는 사실 자체가 업계에서 ‘실험적 성공’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미 각 매체 평론가들은 작품이 보여주는 현실적 인물 구축과, 오랜 시간 밤거리를 따라가던 롱테이크 구도가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심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배우 류준열과 오정세 각각의 연기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이승원 감독이 그려내는 인물들의 사실성과 일상적이고도 허무한 신념, 그 속에서 등장하는 배우들의 감정선은 미국 관객의 정서와도 접점이 있다. 할리우드에서 익숙한 ‘시니컬 히어로’나 ‘비운의 소시민’과 유사해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한국어로만 가능한 미묘한 간극’이 오히려 더 강하게 부각된다. 문화적 코드가 명확한 장면들, 이를 거뜬히 소화하는 두 배우의 눈빛과 리듬, 이는 자막을 넘어설 수 있는 보편적 체험을 만들어낸다.

OTT 플랫폼이 아닌 극장가에서 ‘K-무비’가 본격적으로 설 자리를 찾으며, 이 작품의 선전은 장르의 한계, 관객 수의 벽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미학적 실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매권 흥행이나 대중적 화제성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이제는 ‘한국영화=액션·스릴러·사극’의 공식에서 벗어나, 세밀하고 개인적인 현실의 감정을 서늘하게 건드리는 영화를 해외 관객이 찾고 있다는 결과다. 산업 측면에선 영화사 및 배급사가 어떻게 다음 단계를 모색할지, 2026년 한국영화의 글로벌 전략에 경종이 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관객 수의 절대 규모에 집착하기보다는, 해당 작품이 남긴 울림과 파장에 주목할 때다. ‘조용한 흥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진짜 의미 있는 변화는 극장 안쪽, 관객의 얼굴 속에 자리 잡는다. 이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균형 위에서 ‘어쩔수가없다’는, 이제 또 한번 한국 영화사의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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