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길 위에서 발견하는 낯섦과 그리움의 공존

책방 가득 쌓여 있는 베스트셀러 리스트, 그곳에서 『여행의 이유』란 제목을 다시 마주친다. 김영하 작가의 이 산문집은 2019년 첫 출간 이래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기자로서 책장을 넘겨본다. 떠남과 머묾, 익숙함과 낯섦의 거울을 비추는 문장. 첫머리, ‘나는 왜 여행하는가’를 묻는 작가의 시선은 흡사 감독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기 세계를 되비추듯 조심스럽다. 대중의 시선 아래 끊임없이 달려온 그의 여정은, 팍팍한 일상 한복판의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여행을 ‘완벽한 자유’, ‘새로운 만남’으로 찬양하는 흔한 여행 에세이와 달리, 김영하의 문장은 감정의 층위를 세심하게 뉘집는다. ‘익숙함에서 도망친다’, ‘익명의 자신’이 된다는 두려운 해방감, 그리고 떠나 있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집’에 대한 그리움. 수많은 독자가 그의 글에서 위로받았다 말한다. 작가는, 스스로도 불각지의 여정 속 어디쯤에서 마주한 다양한 자신에 대해 말한다. ‘여행은 항상 나를 배반한다’라는 문장이 유난히 진실되게 다가오는 건, 여행을 단순히 도피처로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최근 ‘여행 에세이’ 붐의 한가운데서도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20, 30대 청년 독자들은 물론, 중장년 세대도 이 책의 서정에 고개를 끄덕인다. 2020년대 중후반, ‘디지털 노마드’ ‘랜선 여행’이 현실이 되어버린 때에, 작가의 발걸음은 오히려 아날로그적이다. 여행을 통해 낯선 타자와 마주하는 순간에서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고독과 소통 욕망을 길어 올리는 셈이다. 손에 묵직이 잡히는 종이책과 아날로그 감성의 사진들이, 촘촘하게 배치된 문장과 어우러져 무채색 같은 일상에 아슬하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김영하의 문장은 스크린 위의 롱테이크 장면과 닮아 있다. 템포는 느리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같이 놓인다. 작가는 프랑스 작은 마을, 제주 바닷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에서 포착한 순간들을 ‘에피소드’로 엮지만, 궁극적으로 관조하는 시선이 스며들어 있다. 곳곳에 등장하는 ‘타인’—현지인, 동행자, 혹은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들이 그의 여행담을 단순한 개인적 추억에서 벗어나 보편적 울림으로 승화시킨다. 그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나를 세공한다’라고 쓰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음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러움, 후회, 실수 등 인간적 나약함이 곳곳에 녹아 있다.
독서 트렌드를 살펴보면, 2026년 현재까지도 『여행의 이유』는 꾸준히 판매순위 상위권을 지킨다. 여러 서점 독자 평점에는 ‘위로받았다’, ‘나도 떠나고 싶다’는 말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하지만 문화비평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책의 인기는 한편으론 시대적 불안과 닫힌 사회에 대한 잠재적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 ‘여행 불가능’ 시대를 견디며, 무의식중에 낯선 곳을 향한 열망이 커진 지금, 이 에세이의 잔잔함은 해방구가 아닐까. 또한, 극복되지 않은 외로움과 불안을 문자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김영하 산문의 가장 큰 힘으로 보인다. 단지 셀카와 SNS로 소비되는 피상적 여행이 아니라, ‘왜 떠나고, 금세 돌아오고 싶어지는가’라는 자문 자체가 이 책의 진가다.
필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나만의 여행 이유’를 되새겨 보기를 권한다. 작가의 진솔한 시선이 우리의 고단한 삶에 숨어있는 ‘낯섦의 용기’를 일깨워 준다면, 이 한 권의 책이 올해도 누군가의 좁은 일상을 넓혀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떠남이 곧 존재의 증명’이라고 말하는 이 산문은, 돌이켜보면 당신이 여행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타자’였던 스스로를. 그리고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마음에 새기게 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며, 이 책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여행의 이유』, 길 위에서 발견하는 낯섦과 그리움의 공존”에 대한 5개의 생각

  • 여행이란 단어 하나로 이리 여러 감정을 설명하는 게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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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ger_tempora

    여행 이야기지만 결국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게 신기하네요🤔 작가님 생각 많이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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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이란 게 항상 멋지고 즐겁기만 한 줄 알았는데, 김영하의 산문을 읽고 나니 그 안에 담긴 외로움과 불안함도 차분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순수한 자유뿐만 아니라 예측못할 불확실함, 그리고 결국 돌아오고야 마는 집에 대한 그리움까지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 확실히 깊이 있게 분석되어서 인상적이네요. 덕분에 저도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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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결국 일상의 재해석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김영하의 문체가 집요할 정도로 사색적이라서, 남들은 못 보는 결을 잘 잡아낸 듯합니다. 아무리 봐도 그 ‘낯섦의 용기’를 내는 게 제일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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