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뎐·모래시계의 원로 남정희, 무대와 카메라를 등지고 떠나다

카메라 파인더가 잡아내는 검은 상복의 행렬. 한겨울 저녁, 서울 신촌의 한 장례식장에는 짧은 숨결이 어우러지는 사이 조용한 비통이 깔려 있다. 인기배우의 휘황찬란한 영화제가 아니다. 은은한 국화향 사이로 수많은 후배 배우와 팬들이 조문을 이어간다. 25일, 원로 배우 남정희가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춘향뎐’, ‘모래시계’를 비롯해 한국 현대 예술사의 중심에 이번에도 그가 있었다. 남정희는 최근 척추수술을 받은 뒤 투병하던 중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병원을 잇따라 오간 기록, 휠체어에 의지해 무대 뒤를 서성인 모습이 한동안 영상 매체에 비쳐졌었다.

남정희라는 배우를 가장 먼저 각인시키는 건 무대와 스크린의 경계가 없던 시절, 1960~70년대 그가 남긴 흔적들이다. 특히 2000년대 ‘춘향뎐’에서의 아련한 존재감이나, ‘모래시계’에서 보여준 시대의 어머니상은 한정된 스크린 공간을 뚫고 관객의 감정에 직접 닿았다. 취재 현장에선 조용한 목소리로 “나는 늘 새로운 역할이 고팠다”고 한 그의 한 마디가 긴 여운을 남겼다. 영상 취재를 하며 만난 남정희는 시종일관 주변 스태프를 살피고, 세트장을 돌아보며 후배들과 무심하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현장감, 그 자신이었다. 파업 시위 현장에서 미니캠을 든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담담히 악수를 나누거나, 이른 새벽 첫 촬영 장비 운반차를 기다리던 베테랑의 모습. 어느샌가 남정희라는 사람은 업계 대선배를 넘어 모두의 ‘배우 선배’였다.

동시대 관객들은 TV드라마 ‘모래시계’에서부터 영화 ‘봉오동 전투’, 최근까지 출연했던 작은 단막극까지 다양한 장르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아왔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엔 트렌드와 무관한, 꾸준함이 있었다. 현장 기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남정희는 익숙한 조명 아래서가 아니라, 수많은 외경 촬영에서, 로케이션의 새벽 공기 속에서 빛났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후배 배우들의 짧은 소감에는 수십년간 쌓인 동료애가 자연스레 담겨 있었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이 말하는 그는 ‘단역이든 조연이든, 항상 빛나는 존재’였고, 동료 스태프들에는 따뜻한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 연예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OTT 플랫폼의 등장, 1인 미디어 시스템이 정착된 현장에서는 이전 세대의 경험이 종종 잊힌다. 그런 와중에도 남정희의 연기 외길 인생은 ‘기록되지 않은 장면들도 모두 소중하다’는 현장 언론의 가치를 다시 일깨운다. 휠체어를 밀며 출근하는 2020년대의 남정희, 조연으로서 한 신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 취재 파일 영상카메라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이별은 슬프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영상 기록이 수백개 기사와 뉴스 클립 사이에서 여전히 생생하다.

동료 배우들과 연극계, 영화계 후배들의 조문 행렬은 끝날 줄을 모른다. 각종 영화제와 드라마, 연극 무대를 거쳐 온 세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장례식장 복도 너머로 한 연예계 관계자는 “선생님의 연기는 언제나 참된 삶 그 자체였다”는 말을 남겼다. 이 문장은 단순한 애도의 언어나 상투적인 찬사가 아니다. 여러 송별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며, 그 빈자리를 체감할 때마다 이 한 문장이 그 어떤 뉴스 헤드라인보다 강렬하게 파고든다. “남정희 선생님의 마지막 무대가 현장이 됐다”는 말이 장례식장을 울린다. 그는 화려한 드라마 한 복판이 아니라 일상의 끝자락,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빛났다. 빠른 뉴스의 흐름 속에 사라지지 않는 존재감. 카메라 전원을 내린 순간까지도 남는 여운이다.

이번 별세는 단순한 한 배우의 퇴장이 아니라 한국 영상문화 역사에 남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대중문화는 스타의 ‘탄생과 퇴장’이 반복되지만, 남정희라는 이름은 그 끝과 시작의 경계마저 흐려진다. 그가 보여준 연기의 무게, 선한 눈빛, 그리고 언제나 현장 스태프들 곁에 있던 모습은, 앞으로의 후배 예술인들에게 값진 유산으로 남는다. 이제 남정희의 이별 장면도 또 하나의 기록으로 저장됐다. 현장의 카메라는 잠깐 멈추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긴 세월을 넘어 울림을 전한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춘향뎐·모래시계의 원로 남정희, 무대와 카메라를 등지고 떠나다”에 대한 8개의 생각

  • 별세 소식 안타깝네요. 연기생활 돌아보게 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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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 명의 원로가… 이런 소식 너무 자주 듣는다!!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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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배우 한 분 더 가시네… 요즘은 이런 기사 자주 보인다!! 점점 다 옛날사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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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기 진짜 찐이었는데… 삼가 고인 명복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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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_generation

    이제 예전 드라마 볼 때마다 선생님 생각날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작품을 통해 위로 받고 힘 얻은 사람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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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또 한 시대가 떠나네… 이젠 뉴스 볼 때마다 이런 소식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ㅋㅋ 그만큼 우리가 늙어간다는 거겠지. 남정희 선생님 작품들 명장면 정말 많았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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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정희 배우님의 별세 소식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우리 드라마와 영화에 남아있던 그분의 진중한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척추수술 후 건강이 악화되어 투병하셨다는 이야기가 더 마음을 아리게 만드네요. 남 선생님의 따스한 연기관, 베테랑으로서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남긴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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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정말 우리 곁을 떠나시는 분들이 많구나… 그분의 조용한 연기와 따뜻한 말투, 무거운 배역까지 생각나네ㅠ 영상으로 남은 장면들은 계속 다시 보게 될 듯…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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