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 소설 – 나라가 사라진 날부터] 3장: 잃어버린 공동체와 남겨진 자의 시선

정안의 소설 ‘나라가 사라진 날부터’ 3장은 국가라는 이름 아래 유지됐던 공동체의 구조가 붕괴된 자리에서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내는가를 직조한다. 작품은 1장과 2장에 이어 점차적으로 사회질서의 균열이 개인의 내면과 관계망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면서, 이번 3장에 이르러선 ‘국가의 소멸’ 이후 벌어지는 심층적 혼란과 상실의 감각을 더욱 세밀하게 그려낸다.

3장의 출발점은 누군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시간은 기이할 만큼 멈춰있는 듯, 공간의 색채도 잿빛에 가깝다. 이미 나라는 사라졌고 남아 있는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다가 서서히 받아들이는 단계에 접어든다. 저자는 이 심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생존본능,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미묘한 군집의 움직임, 잊혀진 언어와 기억의 파편이 어떻게 얽혀드는지 보여준다. 특히 한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다른 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식사는 모호한 연대감과 동시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공동체의 부재를 상징한다. 음식은 평범하지만, 더는 평범하지 않은 생활풍경에서 나눔이란 외양이 텅 빈 의식으로 변모한다. ‘나라’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안전망, 정체성, 규범이 사라진 이후 남겨진 건 원초적인 불안과 오랜 습관처럼 남아 있는 의례다.

정안의 세밀한 문체는 마치 회화적이다. 도시의 침묵, 사람이 줄어든 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닫혀버린 사람들의 얼굴까지,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나라가 사라진 공간’에 들어선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3장에는 물리적으로 국가의 경계가 없어졌지만, 더 큰 공백은 바로 인간관계와 의미의 해체다. 소설은 이를 통해 지극히 한국적인, 또는 보편적인 동아시아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과 상실을 투영한다. 가족, 친구, 이웃 관계 등 모든 질서가 무용해진 자리에 남는 것은 기쁨도, 분노도 아닌 ‘무감각’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최근 유사한 소재를 다룬 국내외 문학작품 및 OTT 스토리텔링 작품을 비교하면, ‘나라의 부재’는 주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종말적 상상력, 거대질서의 해체로 그려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국지: 멸망의 날’이나, 일본의 ‘신 고질라’ 등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개인이 갖는 책임감 또는 사회적 역할을 전면에 내세운다. 반면 정안의 소설은 급박한 사태나 통렬한 비난, 영웅적 구원 같은 장치 대신 침잠하고 무너지는 ‘일상성’과 ‘개인화된 슬픔’을 전면에 둔다. 이는 한국사회가 지난 20~30년간 경험해온 공동체성 약화, 실존적 외로움, 사회안전망 붕괴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소설의 톤이다. 표현은 분명 고요하고, 사건 자체의 파괴보다는 그 파급력이 얼마나 적막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이는 어떤 면에선 현대 한국문학에 드리운 ‘청년세대 무기력 서사’의 연장에도 가깝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행보도 흥미롭다. 3장에서는 어느 정도 자조와 체념을 내포한 대화, 어느 순간 멈춘 듯한 일상, 누군가를 잃고도 그 의미조차 곧잘 잊어버릴 정도의 무감각이 반복된다. 한 인물은 과거 집단의 가치를 다시 소환하려 애쓰지만, 오히려 그 시도조차 허망하게 허물어진다. 독자는 오랜 관성에 기대어 텅 빈 질서를 흉내내는 인간의 슬픈 반복을 목격하게 된다. 정안은 소설을 통해 ‘국가’라는 거대한 펜스가 사라진 Landscape에서 오히려 개인이 더욱 고립되고, 집단이 아닌 고독 그 자체로만 환원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전개는 사회학 관점에서의 ‘공동체 상실’ 논의와도 교차한다. 울리히 벡이 사회적 위험사회의 도래를 이야기하며, 각자가 ‘자기 책임의 시대’로 전락하는 순간을 경고했던 작업과 유사하다. 실제 한국사회에서도 팬데믹, 세월호 참사, 이태원 사고 등 국가기관이 무력했던 순간 이후 시민들이 느꼈던 집단적 트라우마와 냉소는 소설 속 파편적 장면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2020년대 이후 ‘안전’과 ‘연대’는 점점 더 허울만 남은 단어가 되어가고, 남겨진 자리에는 이 소설이 담아낸 ‘적막’의 정서가 침잠한다.

어쩌면 정안의 의도는 문제의식이나 개선방안 제시에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보여주는 세계에서, 누군가가 살아남거나 체제의 새로운 질서를 재건하지 않는다. 독자 스스로가 이 파손된 세계 속에서 무엇에 의미를 둘 것인지, 앞으로 어떤 감정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국가의 무너짐, 공동체의 해체에 앞서, 인간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 고독을 마주하는 태도, 사라진 것의 빈자리를 인식하는 방식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깊은 메시지다.

정안의 행간은, 『나라가 사라진 날부터』 3장을 통해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삶의 기반, 기존 시스템이 흔적 없이 무너진 뒤 남겨진 진짜 생존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이 적막의 소설, 때로는 독하게 차갑고 때로는 기묘하게 감성적인 문체는 결국 독자의 내면에서 오래도록 울릴 것임이 분명하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정안 소설 – 나라가 사라진 날부터] 3장: 잃어버린 공동체와 남겨진 자의 시선”에 대한 3개의 생각

  • fox_repudiandae

    나라 무너지니 인간관계도 줄줄이 파편화… 근데 이 소설에서도 딱히 히어로는 없는듯? 흥미롭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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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요즘 세상 비하면 저런 소설도 과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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