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간에 머무르다, 일본 주고쿠·시코쿠 소도시의 봄

새벽의 공기가 유난히 맑은 시즈오카의 골목을 걷던 기억은, 일본 소도시 여행의 시작이 얼마나 설렘으로 가득차는지 새삼 떠올리게 한다. 이달 라이프스타일 계간지와 여행 전문지들이 앞다투어 소개하는 ‘주고쿠·시코쿠 소도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도쿄나 오사카의 대도심을 벗어나 조금은 낯선 이름들이 빚어내는 느슨한 시간들, 그 안에서 한국 여행자들이 찾고 있는 것은 어쩌면 1박 2일짜리 ‘쉼표’일지 모른다.

최근 기사 및 일본 현지의 관광청·여행업계 인터뷰에 따르면, 2026년 초 기준 주고쿠(중국)·시코쿠 지역의 교통·숙박 인프라가 꾸준히 개선되며, 그만큼 한국인 관광객 문의 및 방문 비율도 크게 상승 중이다. 특히 오카야마·타카마츠·도쿠시마를 잇는 ‘세토내해 루트’와 오노미치, 마츠야마, 이마바리 같은 도시들이 다양한 테마의 여행 소구를 품고 있다. 섬과 바다가 만나는 선을 따라 걷는 시마나미카이도 사이클링, 초밥과 우동, 사케에 내리는 낮은 햇살. 기존 여행 동선이 아닌, ‘머무는 여행’으로 변화하는 흐름이 곳곳에 드러난다.

가는 길부터 새로운 설렘을 품게 한다. 2월, 항공편의 적당한 공백과 일본 내 고속열차(신칸센)의 짜임새 있는 연결은 온전한 여유를 선물한다. 지난 1년간 여러 매체에서 화제가 된 ‘타마노’의 유리빛 해변과, 이와쿠니의 목재 다리 ‘긴타이쿄’, 마쓰야마의 오래된 온천 ‘도고온센’ 등은 대형 트렌드에서 비껴난 소도시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는다. 여행객들은 1일 자유권을 구입해 띄엄띄엄 내리는 ‘로컬 선’의 플랫폼에서 잠시 멈추거나, 소도시 전통 커피집에서 현지 주민과 오고가는 미소 속에 자신만의 추억을 쌓는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4~2025년 일본 관광청과 각 지자체, 숙박연합회 자료를 토대로 보면, 최근 소도시들은 ‘과잉관광’을 경계하면서, 타지역과 차별화된 체험형 문화 여행과 로컬리티에 주력하고 있다. 적은 인파, 느린 걸음, 현지화된 체험 메뉴. 오노미치의 자전거 여행길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각광받고 있고, 시코쿠의 ‘오헨로(88개 사찰 순례길)’도 혼잡한 번화가 대신 묵직한 종교적·문화적 울림을 선사한다. 아울러 에히메현의 작은 어촌 식당, 구라마쓰의 주점에서는 재료 본연의 감칠맛과 정갈한 플레이팅에 대한 감상이 이어진다.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식문화 체험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입안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번져간다.

한국인 여행자들의 시선이 특히 머무는 곳은 ‘온천’과 ‘섬 여행’이다. 각종 음식 리뷰, 여행 블로그, 현지 한인 가이드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마쓰야마 도고 온천은 단순한 물놀이가 아니라 온천마을 골목이 간직한 나지막한 불빛, 반딧불이처럼 번지는 밤공기, 작은 노포에서 흐르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완성된다. 세토내해의 크고 작은 섬들은 사계절 변화와 맞물려, 2월 겨울 바람이 다소 차갑게 불어도 걷기에 충분히 근사하고 맑은 풍취를 자아낸다. 하이쿠로 짧게 남기는 벅찬 감동을, 여행자들은 ‘돌아오는 길’에 이미 추억하고 있다.

올해 초 증가한 KR-JP간 소도시 여행 패키지 상품은 코로나와 엔저를 겪으며 한동안 침체했던 일본 지방관광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중이다. 여행사의 예약 결과나 SNS 후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깊은 체험을 했다’는 감정이다. 이따금 존재감을 드러내는 불편함, 익숙해지지 않은 언어, 교통의 불규칙함조차도 여행의 질료가 된다. 그리움처럼 다시 불리는 장소들. 단골 손님처럼 말없이 머물다 가는 외지인의 자취가 오후의 찻잔에 오래 남는다.

여행지를 고르는 마음은 점점 많은 이들에게 ‘시선이 머무는 시간의 질(質)’로 기울고 있다. 머무름 자체가 목적이 되는 여정, 구글과 틱톡, 다양한 플랫폼의 평가가 이국의 현실보다 더 빠른 소비를 재촉하지만, 느린 여행이야말로 각자의 속도로 기억에 녹아든다. 주고쿠·시코쿠의 숨은 소도시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마치 내일 떠오를 햇살을 꿈꾸듯, 당신의 여행도 이곳에서 조용히 시작되길 바란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조용한 시간에 머무르다, 일본 주고쿠·시코쿠 소도시의 봄”에 대한 5개의 생각

  • 진짜 가보고 싶다ㅋㅋ 이런 데서 하루 보내면 힐링될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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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 요즘 핫하더라 소도시😍 교통만 좀 더 좋음 바로가고싶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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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온천 골목 걷고 싶네요. 근데 물가 많이 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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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ger_voluptatem

    와, 주고쿠 시코쿠 이런 이름도 잘 몰랐는데, 기사 읽고 바로 구글링 중🤔 이렇게 조용한 소도시에서 진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게 요즘 꿈이에요. 여행은 결국 스팟보다 그 도시의 분위기가 진짜 추억 남는 것 같아요. 기사 덕분에 차분하게 여행 계획 다시 세워봅니다. 글이 참 온도감있게 다가와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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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데 꼭 가보고싶다!! 온천… 힐링!! 근데 교통 어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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