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라는 인간과 예술, 소설로 읽는 시인의 야누스

한국 현대문학의 기이한 별, 이상(李箱). 1901년 서울서 태어나 스물일곱 해를 살다갔던 이 시인·소설가·설계사에 대해 우리 독자들은 그 거칠고 난해한 시 몇 편, 병약한 청년 천재라는 신화적 이미지로만 기억해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 박민규는 ‘평전 대신 소설’을 택하며, 미로 같은 이상이라는 존재에 다가가 보고자 한다. 그의 새 소설 『이상, 소설가의 방』을 매개로, 오늘 이 글은 ‘이상을 이해시키려면 소설로 풀어야 했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천착한다.

평전이란 장르는 인물의 이력과 면면을 ‘사실’로만 채운다. 자료와 인터뷰로 살과 뼈를 붙이지만, 이상처럼 삶과 문학 모두 뒤틀린 이 앞에서는 진실에 접근하는 데 늘 한계가 있었다. 현실과 허구, 고독과 광기, 천재와 망상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인간 이상. 그래서 박민규는 ‘소설’이라는 외피를 빌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익숙한 전기문이 아닌, 소설의 각색과 환유로 이상이라는 인물의 내면, 시대, 메시지를 새롭게 조명한다.

『이상, 소설가의 방』은 이상이 남긴 시와 산문,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과의 기억, 질병과 죽음을 둘러싼 불안 등 문학적 행적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청년 김해경(이상의 본명)의 한계·고뇌·사랑도 촘촘히 녹인다. 박민규식 감성으로 직조된 문장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불안, 1930년대 경성과 일본을 떠다니던 청춘의 애수, 그리고 ‘구인회’ 등 예술가 집단 속 뜨거운 동인 열정까지 생생하게 불러낸다. 이때 박민규는 그의 얄팍한 신화성에 기댄 추도와 해설이 아닌, 과거와 현재, 예술과 일상, 남과 북의 분단까지 어우르는 시선을 내놓는다.

상당수 문학 평자들은 그간 ‘이상 신화’에 익숙했다. 천재적 시성, 조기 요절, 미스터리한 죽음, 현대시 혁명가… 그러나 이 표상들은 때때로 이상에게 구체성을 덧씌울 뿐, 그가 “왜” 고독에 시달렸고 “어떻게” 영감을 조각냈는지는 외면해왔다. 박민규의 이번 작품은 삶과 예술의 실핏줄들이 뒤얽힌 ‘살아있는 인간 이상’에 천착하면서, 신화와 허구를 경계 짓지 않고 ‘읽어내는’ 작업에 집중한다. 인간 이상은 서울의 경성제국대 건축기사였고, 결핵으로 스트러지던 가난한 청년이었으며, 동시에 시로 세상을 거부했던 기인(奇人)이었다.

이러한 시선은 현대 독자에게도 유효하다. 이상이라는 존재 자체가 시대에 대한 저항, 질서에 대한 부정, 본인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욕망과 결핍을 담고 있었으니. 박민규의 문장은 그의 언어 세계–즉 수수께끼 같은 시어와 난해한 단편소설–를 다시 되읽게 한다. 평범한 해설집이 아니라, 문학과 인물을 동시에 체험하게 하는 서사적 장치다. 이 소설이 가진 힘은, 이상을 ‘신화적 존재’가 아닌 불완전한 삶의 주체로 되살리는 점, 그리고 그 허무와 본질을 관통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문학계, 특히 희곡이나 영화에서 인간 ‘이상’에 대한 재해석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김해경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연극·그래픽노블에 이르기까지. 박민규는 평전이나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인식했고, 그래서 소설이라는 ‘중개 언어’를 택했다. 그의 필치는 감독이 한 인물을 세세히 관찰하는 시점과도 닮았다. 등장인물들을 ‘설계’하듯 현실 깊숙이 배치시키고, 배우가 캐릭터의 심리와 결을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작가 역시 이상과 동시대 인물들의 내면을 면밀하게 길어 올린다.

작품 곳곳에서 반영된 ‘이상’의 메시지, 즉 단편화되는 시대성, 예술의 자기파괴성, 인간 본연의 고독 등은 OTT 드라마나 영화가 재현하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몽타주처럼도 읽힌다. 이상이라는 인물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의 자기실현 불안, 사회 부적응, 창작자의 고통, 나아가 ‘도시에 잠식된 존재’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박민규는 이런 시대성을 사려 깊게 반영하면서, 문학이 가진 내적 힘, 즉 언어의 부유력(浮遊力)에 대한 긴 호흡의 성찰을 선사한다.

소설은 근래 대중문화가 주목하는 ‘전기적 스토리텔링’ 바람과도 맞닿는다. BTS의 청춘담, 넷플릭스가 다루는 실존인물들의 복합적 내면처럼, 이상 또한 ‘스토리’를 통해 더 가깝게, 입체적으로 읽힌다. 여느 평전과 달리, 박민규는 사실과 허구, 기록과 재해석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이상을 통해 오늘 청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본질–‘무엇이 나를 나답게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래 물음으로 남긴다.

결국 이 작품의 묘미는 문학과 인간, 예술과 현실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시도에 있다. 평전이 할 수 없는 것,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진실의 기록. 이상이라는 한 사람, 그리고 그를 통해 본 우리의 시대와 내면의 풍경들이 남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스스로나 주변의 ‘이상’을 품고 살고 있지 않은가.

— 한도훈 ([email protected])

‘이상’이라는 인간과 예술, 소설로 읽는 시인의 야누스”에 대한 6개의 생각

  • 이상은 진짜 미스터리 많은 인물 맞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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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 덕분에 이상이 좀 더 친근해진 느낌이네요😊 예술가의 메시지라는게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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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허구랑 사실 어디까지 구분될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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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책 읽어보고싶어졌어요🤔 예전엔 이런 인물 잘 몰랐는데, 소설로 다시 만난다니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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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에 대한 평전, 소설, 그리고 연극까지 이토록 다양하게 해석되는 인물도 드문데, 결국 그가 남긴 것은 전무후무한 시의 파장과 오늘날까지도 논의되는 삶의 불가해함이겠죠. 다만 소설이 얼마나 이상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가는 의문이 듭니다. 허구라는 장르의 특성상 어떤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실제 삶에서의 이상이 느꼈을 법한 절망, 일상과 병의 고통까지 소설로 얼마만큼 녹여낼 수 있었는지, 단순한 미화로 흐르진 않았는지 여러 모로 궁금하네요. 예술가를 신화로만 소비하는 사회에 대해선 일차적으로 경계할 필요도 느낍니다. 결국 문학적 해석이든 사료적 해석이든, 본질은 그 사람의 고통과 창작에 대한 집착,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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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을 읽고나니… 소설과 평전의 차이가 뭔지 조금은 실감났어요. 예술가의 삶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게 해주는지가 중요하달까… 이런 관점의 글 앞으로도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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