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산책]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 — 작고 검은 새와 함께 읽는 인간-자연의 경계
한 권의 책이 낯선 존재를 다루지만, 그 시선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사토 미키요의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은 까마귀라는 친근하면서도 미묘하고, 종종 불편하게 여겨지는 새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현대 도시와 생명의 경계를 조용히 조명한다. 작가는 까마귀라는 존재가 어느 도시의 하늘과 ‘일상적 충돌’을 빚는 광경에서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까마귀 때문에 쓰레기봉투가 뒤집어지고, 불쾌한 소음이 퍼진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에는 단순히 ‘어느 새’ 하나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생태계 재구성, 생명 다양성의 불균형, 그리고 도시가 자연을 밀어내는 구조적 배경이 겹쳐 있다.
까마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세계 각지에서 흔히 보는 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까마귀는 단순한 환경문제의 주체가 아니다. 저자는 오랜 관찰과 구체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시 속 까마귀와 인간이 맺는 필연적 갈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낸다.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된 까마귀, 또 누군가에게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까마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욕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지능을 상징하는 동물로 바뀌기도 하는 복잡다단한 경계에 이 새가 서 있다.
20세기 후반 일본 도쿄에서는 쓰레기 처리 문제와 맞물려 까마귀 개체 수가 급증했다. 공공장소 곳곳에 설치된 쓰레기통과 음식물 쓰레기가 까마귀에게 새로운 먹이원이 되었고, 인간이 만든 삶의 흔적이 까마귀 무리의 생활을 지탱했다. 하지만 가로수길을 점령한 까마귀가 배출한 이물질과 ‘어수선한 풍경’은 도시민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었다. 저자는 현장 취재와 생태자료, 그리고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까마귀의 행동과 도시 공간의 상호작용을 촘촘히 직조한다. 도시 공간이 까마귀에게 어떤 방식으로 진화의 자원으로 제공되는지, 인간의 편의가 곧바로 다른 생명체의 기회로 전환되는 역설, 그러한 변화 앞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질문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도시생태계’ 개념, 그리고 인간중심적 세계관의 한계도 책 한가운데 놓여 있다. 실제로 2020년대 이후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도시화의 가속으로 인해 인간이 주변 자연과 맺는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까마귀를 비롯한 ‘도시연명종’(urban adapter species)에 주목하는 최근 생태학 연구에 따르면, 도시는 단순히 동물의 서식처를 빼앗는 공간이 아니라, 특정 동물에게 ‘늙은 숲’만큼이나 풍성한 먹이와 번식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인간과 동물이 함께 재구성하는 새로운 생태의 장면이다. 까마귀의 번식을 막기 위해 여러 지자체는 쓰레기봉투 개선, 이형물 소리 방송, 포획 등의 정책을 도입했지만, 그 효과와 결과 역시 일방적이지 않다. 이 책은 바로 그 모호한 경계와 반복되는 시행착오, 그리고 무심한 일상에 숨겨진 관계의 긴장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까마귀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거나 ‘목격자적 시선’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십 년에 걸친 관찰, 도쿄와 오사카 등지의 시민 인터뷰, 그리고 도시행정 담당자와의 만남을 통해 각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담담히 녹여낸다. 시민들은 까마귀에게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의외로 그들과 엮인 일상의 에피소드를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반면 까마귀 관찰자와 전문가들은 까마귀 지능과 사회성, 군집 행동의 미묘함을 강조하며, 악마화된 이미지의 허점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자연을 대상화하거나 악역, 혹은 구제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태도 자체가 ‘우리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상상하고 관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한국 사회 역시 쓰레기, 야생동물과 시민의 갈등, 공공의 환경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늘어난 까마귀 개체 수는 일본의 20년 전 풍경과 닮아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와 도시 미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이 매년 쏟아지지만, 인간이 의도한 것과 동물의 행동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디자인한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 거대한 공존의 지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까마귀는 매일 똑같은 하늘을 나는 새일 뿐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는 새벽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친다. 누군가는 유년의 골목에서 바게트 조각을 쪼는 까마귀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지저분한 거리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흔적을 먹는 동물을 탓하지만, 이내 우리 자신이 그 풍경을 빚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은 바로 이 어정쩡하고, 풀리지 않는 관계의 한가운데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일상의 불편’에 대해 다시 묻는다. 우리가 조금만 멈춰 서서 까마귀의 시간에 귀를 기울인다면, 도시라는 무대 위에 함께 서 있는 생명들의 목소리가 더욱 풍부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저마다의 기억과 상상, 그리고 관계 맺기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까마귀도 도시인임?🤔 이거 신박하다
책 재밌겠다 ㅋㅋ 읽어봐야지
생태계가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다는 거, 책 한 권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까마귀가 단순히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도시와 진짜 얽혀있네요!! 환경 정책이 단순하지 않다는 메시지, 너무 공감 갑니다!
이런 시각이 없었다는게 부끄럽네요. 잘 읽었습니다🙂
까마귀가 도시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도시생태계란 게 결국 인간이 통제 못하는 영역도 생긴다는 뜻 같네요. 쓰레기 문제와 야생동물 공존이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인식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까마귀덕에 쓰레기 정책도 발전하는 거 아닌가요 ㅋㅋ 나름 사회 진화의 한 축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