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굳건한 신념과 아들의 자유로운 멜로디: 주영훈이 고백한 상처, 그리고 우리 시대의 아픈 자화상
어떤 이야기는 우리의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고, 또 어떤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면의 상처를 건드린다. 최근 한 방송에서 음악인 주영훈 씨가 털어놓은 가슴 아픈 고백은 바로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다. ‘동치미’라는 따스한 이름의 프로그램에서 그는, 목사였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비수 같은 한마디, “마귀 새끼”라는 말이 그의 삶에 드리운 깊은 그림자를 담담히 풀어냈다. 그 순간,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눈빛에는 오랜 시간 봉인되었던 슬픔과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인간에게, 그것도 가장 가까워야 할 존재인 아버지에게서 듣는 저주에 가까운 말은 어떤 무게를 가질까. 주영훈 씨의 아버지는 교회의 강단에 서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목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숭고한 신념의 성벽은 자신의 아들이 걸어가는 ‘예술’이라는 자유로운 길 앞에서 견고한 장벽이 되었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입에서 흘러나온 그 잔인한 단어는, 어린 주영훈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단순한 비난을 넘어, 아버지의 세계에서 아들의 존재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이단’으로 규정되었음을 뜻했을 터다. 연예계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도, 어쩌면 그는 늘 그 어두운 그림자와 싸워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연예인들의 삶을 무대 위의 화려함으로만 단정 짓곤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그들 내면에는 각자의 아픔과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다. 주영훈 씨의 고백은 이러한 연예인들의 숨겨진 속내를 들여다보는 창문과 같았다. 특히 가족 간의 갈등, 그중에서도 부모의 신념과 자녀의 꿈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균열은 수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아픔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서툴렀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는 확신에 갇혀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는 이 한마디 때문에 음악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한 음악인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그 말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행히도 그는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지금의 작곡가이자 방송인 주영훈으로 우뚝 섰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그의 마음 한편에 깊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의 고백은 단지 한 개인의 슬픈 가족사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 즉 세대 간의 단절과 서로 다른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예술은 종종 세상의 고통을 치유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주영훈 씨의 음악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었듯이, 그의 진솔한 고백 또한 어쩌면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큰 공감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신념이 엄격한 교리 속에 갇혀 있었을지라도, 아들은 그 속에서 피어난 아픔을 음악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승화시켰다. 이러한 감정의 굴곡과 스토리텔링은 대중에게 연예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각인시키며, 단순한 가십을 넘어선 진정한 울림을 선사한다.
주영훈 씨의 용기 있는 고백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타인의 다름을 얼마나 이해하고 포용하려 노력하고 있는가?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진정으로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존재가 되어주고 있는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주영훈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침묵 속에 감춰진 아픔과 고통이 더 이상 외면받지 않기를,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사랑으로 보듬는 진정한 소통의 장이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모든 상처가 아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만으로도 세상은 한 뼘 더 따뜻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의 멜로디가 세상의 위로가 되었듯, 그의 고백 또한 우리 모두에게 깊은 성찰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 정다인 (dain.jung@koreanews9.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