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내려놓은 순간, 다시 만나는 책의 시간
2026년 한국의 대학가에서 휴대전화를 잠시 끄고, 교수님과 함께 책을 읽는 새로운 움직임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보편화된 스마트폰과 SNS, 즉각적 정보습득에 익숙한 MZ세대 대학생들이 일상을 멈추고 종이책을 펼쳐든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최근 서울과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확산중인 ‘함께 읽기 세미나’ 프로그램에는 학생과 교수가 한 공간에서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 감상을 나누는 풍경이 펼쳐진다. 강의실 풍경을 압도하던 전자기기가 치워지고, 책장 넘기는 소리와 삶을 묻는 대화가 돌아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독서클럽이 아니다. 소설과 에세이, 현대 인문서 등 소재는 다양하지만, 참가 학생들은 읽은 내용을 직접 언어로 되새기고, 교수는 어려운 부분에 맥락을 더한다. 소통의 주체로서 교수와 학생이 ‘읽기’라는 활동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비추며 새로운 의미를 길어올린다. 각 대학별로 참가자 수는 10~30명 내외로, 큰 규모라기엔 소박하지만, 그만큼 집중도 깊고 반응도 뜨겁다. 온라인 강의가 일상화되었지만, 아날로그적 만남과 정독의 몰입을 되찾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독서의 양극화 현상은 더 깊어졌다.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대학생 1인당 연평균 도서 구매량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오히려 12% 감소했다. 반면, 이같은 ‘다같이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독서 자체의 즐거움과 함께 타인과 생각을 나누는 데서 새로운 동기를 발견했다고 응답했다. 한 참가자는 인터뷰에서 “휴대폰 없이 책을 읽으려니 처음엔 불안했는데, 두 번째 시간부턴 오히려 기다려졌다”고 털어놨다. 교수들 역시 “학생들 눈빛이 달라진다. 질문이 깊고, 책의 결말을 두고 서로 논쟁하며 남다른 성장의 순간을 체감한다”며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이 트렌드는 대학혁신위원회, 도서관, 시민단체 등이 공동 주최한 다양한 ‘읽기 회복’ 사업과도 연결된다. 단순히 독서량을 늘리자는 운동이 아닌, 디지털 피로와 산만함에서 벗어나 집중, 사유, 대화 능력을 회복하려는 사회문화적 시도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세대에게 책을 ‘사회적 도구’로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 옥스퍼드, 미국 하버드 등의 북클럽 프로그램도 ‘대화 중심’ 세미나로 진화 중이다. 단상 위 교수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대신, 교수-학생, 학생-학생 사이에 ‘공유의 독서’가 자리잡는 모습이 글로벌 트렌드와도 통한다.
주목할 부분은 활자를 벗어나 있던 학생들이 아날로그 독서의 쾌감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는 것이다. “한 페이지를 읽고, 그 의미를 써내려가고, 친구와 생각을 비교하다 보면 스마트폰은 잊힌다”는 참가자의 말처럼, 책장 위 시간은 느리지만 더 깊다. OTT, 단기 영상콘텐츠, AI 요약 기능이 일상화된 2026년의 삶에서, 이들의 느린 읽기 운동은 ‘밀도’와 ‘질문하는 힘’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일부는 “교수와 친구들이 있어 부담된다”거나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게 귀찮다”고 잠깐 거리두기도 하지만, 대체로 첫 경험 이후 지속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꾸준하다.
한국 대학생 특유의 빠른 리듬, 스펙과 취업을 좇는 현실에서 이 읽기 실험은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 ‘함께 읽기’가 선을 긋던 교수-학생 벽을 허물고, 집단적 사유와 협업을 촉진할지 아직 평가는 이르다. 그러나 초연결 디지털 환경에서 실질적 인간관계와 몰입 경험의 위기를 절감하는 20대에게 아날로그 독서, 그중에서도 ‘누군가와 같이 읽는’ 독서의 힘은 경쟁보다 공감, 외침보다 경청, 스펙보다 내적 성장을 탐색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뉴트로적 감상이나 아날로그 낭만에 머물지 않는다. 빠른 시대일수록 느림의 미학, 깊이의 가치를 택할 필요가 있다는, 우리 사회의 조용한 문제제기가 담겼다. 배움의 본질, 읽기의 힘을 다시 묻는 이 실험이 대학을 넘어 각계로 번질지 지켜볼 대목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