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 갤것, 박경리문학상 수상…남아공의 상흔을 문학으로 품어내다
2026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 데이먼 갤것이 선정됐다. 평론가와 문학계의 관심이 집중된 이번 수상은, 단순한 작가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을 넘어 세계문학이 발견하는 상흔과 회복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갤것은 수상 소감에서 “남아공은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며, 이 땅의 트라우마와 화해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문학적 평가 면에서, 갤것의 주요 작품은 인물들의 내면을 정교하게 파고드는 서사와 실존적 허탈감, 그리고 남아공이라는 극한의 사회적 배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남아공 문학은 치유와 자성, 냉혹한 진단을 두루 내놓았다. 데이먼 갤것의 문학세계는 인간 군상 속 깊은 상처, 민족과 계급, 국가 정체성의 혼돈을 조용하면서도 날카롭게 관통한다.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그는, 2021년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더 프로미스(The Promise)’로 세계 비평계의 주목을 받았다. 갤것은 과거 남아공 사회를 누비며, ‘본질적인 인간성’이란 것이 무엇이며, 폭력의 잔재 밑에 자리한 상처가 개인과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침묵하고 쌓이는지 묻는다.
갤것의 스타일은 건조한 문장과 짧은 대화, 압축된 상징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등장인물들은 방황하고, 침묵이 길며, 쉽게 단죄받지 않는다. 이는 톨스토이식 도덕적 찬사나 희망적 메시지보다 훨씬 어둡고, 하지만 현실적인 ‘화해 불가능성’을 내보인다. 갤것 문학이 지닌 특유의 정조는, 박경리문학상이 명예롭게 기려온 인간 세계에 대한 깊은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토지’의 박경리가 그렇듯, 데이먼 갤것 또한 토박이의 언어와 풍경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러나 박경리가 현실적 생애 서사를 직선적으로 펼쳤다면, 갤것은 부서진 인물들의 내면 분열에 착목하며, 결코 치유되지 않는 고통도 문학이 담아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흥미로운 점은 수상작 발표를 계기로 최근 국내외 평단이 남아공 문학과 세계문학 공통의 상처를 다시 조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영국 ‘가디언’과 ‘뉴욕타임스’가 ‘남아공의 시대정신이 인류의 상흔을 비춘다’ 평을 내놓는가 하면, 동시대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 문학의 재발견 흐름과도 겹치는 대목이 적잖다. 대니얼 루이스, 능구렁이 같은 등장인물들이 남아공 땅에서 희로애락을 겪는 방식은, 어느 한 국가의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카즈오 이시구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루이스 글릭 등 최근 세계문학의 트렌드를 이끌어온 위대한 작가들과 견줘도 갤것 문학의 강렬함은 독자적으로 평가 가능하다.
남아공은 여전히 피와 고통으로 엉겨 있다. 인종간의 편견과 증오, 과거의 사회적 불의가 여전히 공동체 삶의 구조로 이어진다. 갤것의 인물들은 이를 회피하거나 대화로 단순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틈에서 패배와 자기혐오, 그리고 어느 언젠가 올 것 같은 모호한 ‘구원’의 실루엣에 집적한다. 실제로 그의 대표작에서는 화자조차 자주 뒤바뀌며, 서구 문학의 전통적 ‘주인공 중심주의’를 넘어선다. 이로써 그는 세계문학의 새로운 실험주의적 경향, 즉 다수의 맥락이 동시에 교차·흐릿하게 이어지는 내러티브 구조를 구축한다.
박경리문학상은 2011년 제정 이후, 국내외 작가 중 그 해 ‘인간의 깊은 상흔을 정직하게 기록’한 이에게 돌아간다. 역대 수상자들, 예컨대 하퍼 리나 톰슨 하이타워처럼, 시대정신과 인간 본연의 애도·애정이 문학의 거대한 주제로 부상했다. 올해 데이먼 갤것이 받은 것은 그가 남아공이라는 특별한 땅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고통을 기록해왔다는 점, 그리고 그 기록 방식이 인류의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된다는 점에 있다. 이는 박경리문학상 정신을 계승·갱신하며, 우리 문학계에도 ‘과거-현재-미래’를 다시 되틔우는 자극이 된다.
문학이란, 결국 인간의 자의식과 집단의 상흔을 기록하기 위한 거울이며, 남아공의 아픈 과거와 현재가 갤것의 글 안에서 가혹할 만큼 솔직하게 드러난다. 사회정치적 맥락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도 숨어 있다. 갤것은 화해를 명령하지 않으면서도, 그 불가능성 자체를 사회적 성찰로 탈바꿈시킨다.
‘토지의 고통’과 ‘아프리카의 흠집’은, 실은 지구 모든 대지에서 되풀이되는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갤것 작품이 묻는 질문은—‘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상흔을 정직하게 바라볼 준비가 되었는가’—로 거듭난다. 이는 단순히 박경리문학상 한 차례 수상에 머무를 이슈가 아니라, 2026년 오늘을 사는 독자 모두가 곱씹어야 할 화두라 하겠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