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엄 프레임’ 역공, 2024년의 망령을 소환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칼을 뽑았다. 그 칼끝은 정적(政敵)을 향한다. ‘일부 정치세력이 계엄을 위해 전쟁을 유도한다’는 발언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비상계엄 사태’의 기억을 정면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노골적인 ‘프레임 전쟁’의 서막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공세다. 핵심은 ‘역프레이밍(re-framing)’ 전략이다. 불과 1년 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계엄 선포를 ‘국정농단’이자 ‘내란 시도’로 규정했다. 이 프레임은 보수 진영에 치명적인 주홍글씨가 됐다. 이제 이 대통령은 공수가 바뀐 정치 지형에서 그 주홍글씨를 상대에게 되돌려주려 한다. ‘계엄 DNA는 당신들에게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왜 지금 이 시점인가. 정치적 셈법은 복잡하다. 집권 3년 차 후반기, 국정 동력은 떨어지고 여소야대 국회는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산적한 민생 현안과 경제 위기론 속에서 국면 전환용 카드가 절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강력하고 자극적인 ‘계엄’ 카드를 꺼내 들어 야권의 공세를 차단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다. 안보 이슈를 정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모든 비판을 ‘국가 안보를 흔드는 행위’로 몰아갈 수 있는 유리한 구도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권력 지형의 역학 관계가 이 발언의 배경을 설명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사법리스크와 각종 정책 실패 논란을 ‘구시대 세력의 저항’으로 규정해왔다. 여기에 ‘계엄’이라는 단어를 덧씌움으로써, 단순한 정치적 반대를 넘어 ‘체제 전복 시도’라는 극단적 프레임을 구축하려 한다. 이는 야당을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가 아닌,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상정하는 위험한 이분법이다. 정치의 실종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야권은 딜레마에 빠졌다. 대통령의 발언을 ‘망상’이라 일축하며 강력히 반발하지만, 대응이 쉽지 않다. 가만히 있으면 ‘뜨끔하는 것 아니냐’는 여권의 공세에 밀리고, 강하게 맞서면 프레임 전쟁에 말려들어 정쟁만 격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결국 ‘증거를 대라’며 역공에 나서겠지만, 이미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계엄’이라는 단어의 파급력은 정치권을 뒤덮고도 남는다. 야권으로서는 자신들에게 씌워진 ‘반국가세력’ 프레임을 벗겨내는 동시에, 현 정부의 실정을 부각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이러한 프레임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안보는 더 이상 정파적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24년의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던 트라우마라면, 2025년 대통령의 ‘계엄’ 발언은 그 트라우마를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일 수 있다. 여야 모두 극한 대결의 정치를 멈추고, 실제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안위를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2024년의 망령이 2025년의 대한민국을 잠식하게 둘 것인가. 이제 선택은 정치권의 몫이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