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에 꽂힌 칼날: 대통령의 ‘정교분리’ 선언, 그 위험한 이면
이 대통령의 “종교재단 정치개입은 헌법 위반”이라는 발언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이는 국가 권력이 거대한 사회적 ‘성역’으로 군림해 온 종교계의 심장부를 정조준한 선전포고에 가깝다. 헌법 제20조 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의 대원칙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선언의 타이밍과 정치적 함의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과연 이 발언은 훼손된 헌법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현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 종교 세력을 겨냥한 정교한 정치적 압박인가. 칼날은 뽑혔고, 이제 그 칼끝이 향하는 곳을 집요하게 추적해야 할 때다.
표면적으로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 수호자의 당연한 책무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 개입’이라는 개념 자체가 법리적으로 모호한 회색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특정 정책에 대한 비판적 설교, 신도들의 집회 참여 독려, 특정 정치인에 대한 낙선 운동. 이 중 어디까지가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 사회적 발언이고, 어디부터가 헌법이 금지하는 정치 개입인가? 현행법은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 법적 공백은 권력의 자의적 해석을 위한 통로가 된다. 정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목소리를 ‘정치 개입’으로 규정하고, 우호적인 목소리는 ‘건전한 사회 참여’로 포장할 수 있는 막강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비판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법의 잣대를 고무줄처럼 활용했던 어두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본질은 법리 다툼이 아닌 권력 투쟁에 있다. 수백만 명의 신도, 막대한 부동산과 금융자산, 언론 매체까지 거느린 대형 종교재단은 더 이상 순수한 신앙 공동체가 아니다. 이들은 선거의 향배를 좌우할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춘 거대 이익집단이자, 정치권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표의 성역’이다. 역대 정권들은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종 특혜를 제공하며 공생 관계를 유지해왔다. 종교인 과세 문제가 번번이 좌초된 것 역시 이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방증한다.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바로 이 뿌리 깊은 ‘정치-종교 복합체’의 균열을 예고한다. 정부의 핵심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특정 종교 세력에 대한 ‘길들이기’ 시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헌법 정신의 구현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 지형을 구축하기 위한 위험한 도박이다.
이러한 거대 종교 조직의 내부 비리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재단의 자금이 어떻게 조성되고, 어디에 사용되는지는 극소수의 내부자만이 알 수 있다. 만약 특정 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이 흘러 들어갔거나, 조직적인 선거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내부고발자가 있다면 어떨까. 그는 과연 진실을 외부에 알릴 수 있을까? 현실은 냉혹하다. 내부고발자는 ‘신앙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수십 년간 몸담았던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고립될 것이다. 법적 보호는커녕, 온갖 회유와 협박, 심지어 신변의 위협에 직면할 수도 있다.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는 내부 감시와 통제를 극대화하며, 양심의 목소리를 질식시킨다. 우리는 과거 여러 사건을 통해 신성함이라는 장막 뒤에 숨겨진 추악한 부조리를 목격했다. 대통령의 선언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이러한 내부고발자들이 두려움 없이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의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던진 ‘정교분리’라는 화두는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건드렸다. 그러나 이 논의가 특정 종교 세력을 압박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낳을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종교의 정치 ‘참여’가 아니라, 불투명한 자금과 조직력을 이용한 불법적 ‘개입’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수사가 아닌, 모든 종교재단에 대한 예외 없는 재정 투명성 확보다. 성역 없는 세무조사와 회계감사를 통해 ‘신의 돈’이 아닌 ‘세상의 법’ 아래 자금이 관리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칼날이 부패한 권력의 고리를 끊는 정의의 칼이 될지, 아니면 비판 세력의 입을 막는 억압의 칼이 될지는, 오직 투명성과 공정성이라는 칼날의 양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진정한 정교분리는 선언이 아닌, 시스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 송예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