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헌정 파괴’ 경고가 던진 정치적 신호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위를 끌어올렸다. “내란세력 몰이, 야당 탄압. 민주당이 진짜 헌정 파괴”라는 직격. 지방행정가의 메시지를 넘었다. 전국정치에 던진 신호다.
민주당은 검찰·권력기관의 편향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해왔다. 여권은 다수 의석을 앞세운 강행 처리를 “입법 폭주”로 반박해왔다. 극단의 레토릭이 상수화됐다. 그 교차점에 오세훈이 서 있다.
핵심은 프레임 전쟁이다. 민주당은 ‘견제와 균형’의 수호자 프레임을 쓴다. 특검·국조·인사청문 강화를 통해 권력 감시를 제도화하겠다는 논리다. 여권은 ‘헌정 질서’ 프레임으로 맞선다. 다수의 횡포를 법치의 절차 위로 올리는 순간, 헌정의 골간이 흔들린다는 주장이다.
국면은 단순하지 않다. 대통령·행정부는 여권이 쥐고 있다. 국회 과반 이상의 입법 주도권은 야권이 갖고 있다. 이중 권력 구조다. 거부권과 재표결, 헌법소원과 본회의 직회부가 반복된다. 제도 설계의 그늘이 정치의 그늘이 됐다.
‘내란’은 형법상 최상위 범죄다. 누구를 ‘내란세력’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치적 소통은 닫힌다. 반대로 ‘헌정 파괴’라는 낙인 역시 무겁다. 양측의 언어가 사법·헌법 용어로 비대화할수록, 현실의 타협 공간은 줄어든다.
민주당의 전략은 명확하다. 의석을 기반으로 의제 주도. 특검과 국정조사로 정권의 취약 지점을 겨냥. 예산과 민생 법안을 지렛대로 협상 우위를 확보. 여론을 ‘감시 vs 방탄’ 구조로 이분화. 다수의 정당성이 여론에 의해 인정되도록 밀어붙인다.
여권의 전략도 분명하다. 대통령 거부권과 정무적 보류로 속도를 늦춘다. 헌법재판·위헌 소지 제기와 필리버스터로 방어선을 구축한다. 특정 법안의 위헌 가능성을 반복 주지해 ‘절차의 정당성’ 프레임을 공고히 한다. 조직 결집은 보수 핵심층이 담당한다.
오세훈의 발언은 이 틈새를 겨냥한다. 수도권 중도층은 강경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절차’와 ‘상식’ 키워드에는 반응한다. 오세훈은 절차·헌정을 호출한다. 강경함과 중도의 경계에서 메시지를 배치한다.
서울시정의 성과는 그의 방패이자 창이다. 도시 행정의 실적을 바탕으로 ‘일하는 보수’ 이미지를 강조한다. 동시에 국가적 의제에 개입해 차기 주자로서 존재감을 키운다. 이번 발언은 그 연장선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거친 언어는 주목을 끈다. 그러나 중도는 피로에 민감하다. 이후 메시지의 결은 더 섬세해야 한다. ‘헌정 파괴’의 실증을 절차와 데이터로 제시해야 한다. 구체가 없는 경고는 반감만 부른다.
민주당도 숙제가 있다. 다수의 정당성은 절차적 정교함에서 나온다. 상임위 숙성, 공청회, 영향 평가. 최소한의 형식적 완결을 넘어 실질적 토론이 담보돼야 한다. 본회의 직행이 상시화되면 역풍이 온다. “밀어붙였다”는 프레임은 중도에 약하다.
야권의 특검 드라이브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특검의 독립성·중립성 장치를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 추천권의 분산, 수사 기간의 엄격한 타임라인, 중간보고의 투명성. 제도 설계가 담보돼야 국민이 수긍한다. 정치적 보복의 도구로 보이는 순간, 역효과다.
여권 역시 대안을 내야 한다. 거부권만으로는 국면이 풀리지 않는다. 사법·수사제도에 대한 대체 설계, 방송·노동 이슈의 절충안이 필요하다. 제도 개선의 로드맵이 있어야 ‘반대 위한 반대’ 프레임에서 벗어난다.
이번 발언의 정치적 함의는 세 가지다. 첫째, 수도권 보수의 재결집 시도다. 둘째, 야권의 ‘감시 프레임’에 맞선 ‘절차 프레임’의 재정렬이다. 셋째, 대선 구도의 예열이다. 광역단체장이지만, 오세훈은 중앙정치의 중심에 들어왔다.
권력 지형은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권. 국회 다수는 야권. 기관 간 긴장이 구조화됐다. 따라서 해법도 구조적이어야 한다. 정쟁의 언어가 아니라 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출구를 제안한다. 예산 우선 처리. 전원합의제에 준하는 교차 보증으로 민생 예산을 마무리. 이후 쟁점 법안은 패키지 협상으로 묶는다. 특검은 트리거 기준을 법제화. 수사대상과 기간을 사전 합의. 방송·노동 등 이슈는 2단계 협상으로 분리. 상호 비토권을 최소화한다.
국회 운영의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본회의 직회부 요건을 강화. 상임위 숙성 기간의 하한선을 설정. 타임테이블과 공론화 프로세스를 법제화. 거대 정당의 편의가 아닌, 전체 시스템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정치의 언어도 바꿔야 한다. ‘내란’과 ‘헌정 파괴’는 최후의 어휘다. 남용하면 가치가 희석된다. 유권자는 과장에 둔감해진다. 정밀한 사실, 명확한 근거, 차분한 설명이 승부를 가른다. 중도는 그곳에 있다.
오세훈에게도 주문한다. 경고에서 설계로. 슬로건에서 플랜으로. 절차를 말한다면 절차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이 그 실험장이 될 수 있다. 도시 거버넌스의 합의형 모델을 중앙정치에 이식하라. 그게 차별점이다.
민주당에도 주문한다. 다수는 책임이다. 속도의 유혹을 이겨야 한다. 제도를 바꾸려면 더 많은 토론과 검증을 감수해야 한다. 비판적 지지층이 이탈하는 지점은 언제나 ‘오만’이었다. 그 한계를 넘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정치는 힘과 규칙의 균형이다. 힘은 선거가 준다. 규칙은 헌정이 지킨다. 어느 한쪽이 과도하면 균형이 무너진다. 이번 겨울 정국은 그 균형을 시험한다. 말이 아니라 절차와 합의가 답이다.
오세훈의 발언은 신호탄이다. 여권은 ‘절차’를, 야권은 ‘감시’를 내세운다. 어느 쪽이든 중도의 신뢰를 얻는 자가 승리한다. 정치는 결국 숫자가 아니라 신뢰다. 신뢰는 절차에서 나온다. 이제 결과로 보여줄 차례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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