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심포지엄의 화려한 무대 뒤, 누가 의제를 쓰는가

조지메이슨대 안보정책연구소가 여섯 번째 국제안보 심포지엄을 열었다. 주제는 익숙하다. 인도·태평양 질서, 한미동맹, 북핵·미사일, 사이버·우주, 그리고 AI 전장. 그러나 이 반복의 목록이 말해주는 건 안전이 아니라 구조다. 화려한 배지와 명패 뒤에서 누가 의제를 쓰고, 누가 비용을 치르고, 누가 이익을 거두는지부터 묻자. 심포지엄의 명찰줄은 대개 같은 길로 이어진다. 전·현직 정책결정자, 방산업계 임원, 대형 로펌·컨설팅, 그리고 대학·싱크탱크 연구자. 이 연결은 우연이 아니다. 의제를 설계하는 손과 예산을 대는 주체, 정책 문장에 밑줄을 긋는 힘이 한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 생태계를 추적하면 세 개의 층이 보인다. 1단계는 ‘무대’다. 공개 세션과 사진.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는 억지(deterrence), 통합, 회복탄력성. 2단계는 ‘백스테이지’다. 비공개 라운드테이블과 워킹그룹. 여기서 문안이 다듬어진다. 3단계는 ‘관문’이다. 권력의 문턱 바로 앞에서 요약본이 정책 제언으로 변한다. 발화자는 학자의 옷을 입지만, 재정은 공공과 민간 방산의 이중 나사로 죄어 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제언은 예산 항목이 된다.

추적 타임라인
– 2016~2017: 사드 배치와 보복, ‘방공·미사일방어 통합’이 상수로 고정된다.
– 2018~2019: 북미 대화에도 ‘확장억제 시나리오 연합연습’이 표준화된다.
– 2020~2021: 팬데믹과 공급망. ‘국방-산업 복원력’ 의제가 금융과 산업정책으로 확장된다.
– 202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포탄·자주포·전차, 유럽발 대형 수출 계약이 잇따른다. 억지 담론은 ‘탄약·정밀유도체계 증산’으로 번역된다.
– 2023~2024: 중동 전장과 상업위성, 드론·전자전의 급부상. ‘AI-ISR(정보·감시·정찰) 퓨전’이 키워드로 전면 등장한다.
– 2025: 인공지능 규범과 군집 자율체계. 데이터 접근권과 알고리즘 통제의 싸움이 본게임이 된다.

이 타임라인을 통과한 심포지엄의 문장에는 공통된 등식이 숨어 있다. 위협의 상승 = 예산의 확장 = 산업의 호황. 문제는 이 등식이 공론장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단의 위협 서사가 셔틀처럼 회의장을 오갈수록, 첨단 무기의 언어는 ‘필연’으로 굳고, 다른 선택지는 ‘비현실’로 밀려난다. 즉시성과 스펙터클의 승리다.

이번 심포지엄이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첫째, 후원과 이해관계의 전면 공개. 어느 기업·기관이 얼마를 댔는가. 연사에게 지급된 사례와 자문 계약은 무엇인가. 둘째, 패널 구성의 다양성. 방산·안보 커뮤니티만의 회의가 아닌가. 노동·인권·데이터 윤리·지역주민·청년세대는 어디에 있는가. 셋째, 의제의 균형. ‘억지’가 목표라면 ‘위기관리·군비통제·신뢰구축’은 왜 늘 주변부인가. 넷째, 결과의 투명성. 비공개 세션에서 합의된 문구가 정책에 반영될 때 공적 검증을 거쳤는가.

숫자는 구조를 말한다. 지난 10년 한국의 국방비는 꾸준히 우상향했고, 중·대형 무기사업이 연이어 승인됐다. 같은 기간 한국 방산 수출은 유례없는 가속을 탔다. 국제연구기관 데이터는 한국이 세계 상위권 방산 수출국으로 부상했음을 가리킨다. 전쟁과 분쟁은 기술과 시장을 자극했고, 국내 정치의 ‘안보 드라이브’는 이를 제도화했다. 이 곡선이 가리키는 곳에 심포지엄이 서 있다. ‘학술’의 장을 표방하지만, 그 언어는 예산과 계약서의 잉크 냄새를 지운 적이 거의 없다.

AI 전장은 새로운 가림막이다. 자동표적식별, 실시간 융합지휘, 자율 드론 군집. 효율과 속도의 약속 뒤에는 오판과 책임 회피의 어둠이 있다. 학술·정책 포럼이 진정 공익을 말하려면 세 가지를 먼저 걸어야 한다. 첫째, 데이터 거버넌스. 학습데이터와 훈련셋의 출처·편향·검증 절차의 공개. 둘째, 인간통제의 비가역성 방지. 킬체인에서 인간의 실질적 개입권을 법제화. 셋째, 감사가능성. 알고리즘 결정 로그의 사후감사 의무화. 이 세 줄을 그어야 ‘AI 안보’가 시장의 언어를 넘어 공화국의 언어가 된다.

심포지엄마다 반복되는 ‘동맹의 결속’ 역시 다른 쪽 면을 봐야 한다. 결속은 때로 의존의 미학으로 포장된다. 실상은 표준의 선점과 규격의 고착, 그리고 조달의 종속이다. 연합미사일방어든, 합동통신이든, ‘상호운용성’은 비용과 잠금효과를 뜻한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 사슬을 끊자는 게 아니다. 최소한 그 사슬의 가격표를 정확히 붙이자는 것이다. 대의의 이름으로 비용과 위험을 감출 수는 없다.

이 구조는 국내정치의 관성도 먹여 살린다. 강경 담론은 단순하고 자극적이다. 책임 있는 억지는 복잡하고 지루하다. 심포지엄의 무대가 언론의 헤드라인과 맞물릴 때, 단순함이 승리한다. 그러나 복잡함을 외면하는 안보는 결국 비싸고 위험하다. 위기관리 라인을 촘촘히 설계하고, 군비통제 트랙을 상시 가동하며, 적대 속 상호 이해의 최소 장치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지루하지만 값싼 안보다.

구조적 비리를 의심해야 할 지점도 분명하다. 연구의 독립성과 후원의 이해가 얽힐 때 발생하는 ‘은밀한 로비’의 회색지대다. 국내외 대학·싱크탱크의 해외캠퍼스, 기업 재단, 방산협회의 프로젝트성 기금. 여기서 생산된 브리핑 페이퍼가 ‘학술’로 포장돼 정책 창구로 투입된다. 회의체의 출입증은 학문적 권위를 부여하고, 예산·사업은 ‘국익’의 외피로 포장된다. 감시의 등불이 꺼지는 순간이다.

정책 포럼이 감시를 피하려면 제도적 방화벽이 필요하다. 제안한다. 1) 모든 후원금·현물지원·사례비·자문계약의 실시간 공개 대시보드. 2) 이해충돌 사전신고와 패널 배제 규칙. 3) 비공개 세션의 심층 기록과 일정기간 경과 후 의무 공개. 4) 시민 패널 도입: 지역주민·청년·시민단체의 의결권 있는 참여. 5) 회의 후 30일 내 ‘다수·소수 의견보고서’ 병렬 공개. 합의가 아닌 이견의 기록이 민주주의의 보증수표다.

또 하나. 한반도 안보를 말하면서 정작 한반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비어 있다. 기지 인근 주민의 건강·환경 피해, 예산의 기회비용, 복무세대의 삶, 데이터·인권의 경계. 이 ‘생활의 안보’가 빠진 억지는 불완전하다. 기술과 무기의 언어로만 채워진 심포지엄은 결국 기술과 무기에게 봉사할 뿐이다. 공공을 위한 지식은 공공의 삶을 향해야 한다.

국제안보는 국경 밖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안보전략서의 추상은 예산서의 수치로, 조달공고의 문장으로, 병영과 마을의 일상으로 침투한다. 그래서 학술·정책의 회의장은 공론의 빚을 진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많이 밝히고, 더 넓게 듣고, 더 힘들게 설명하라. ‘국제’라는 말이 ‘면책’의 다른 표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심포지엄이 진짜 전환점을 만든다면, 다음을 약속해야 한다. 첫째, 스폰서 로고보다 데이터 공개가 먼저인 행사. 둘째, 균형 잡힌 패널: 방산·군·정부만큼 시민·노동·학계 비판자·윤리전문가를 세울 것. 셋째, 결과보고서에 ‘정책비용·대안·소수의견’을 병기할 것. 넷째, AI·사이버 의제에 독립감사와 인권영향평가를 의무화할 것. 다섯째, 한반도 위기관리의 상시 채널과 군비통제 로드맵을 구체적 마일스톤으로 제시할 것.

심포지엄은 끝나도 구조는 남는다.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같은 말과 같은 계약이 반복된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화려한 무대를 보았다. 내일 필요한 것은 무대를 비추는 등사기의 밝기다. 의제를 쓰는 손을 비추는 빛, 그리고 그 손이 닿지 못한 사람들을 무대 앞으로 끌어올리는 의지. 그때 비로소 안보는 공공의 말이 된다.

권력과 돈, 기술과 언어의 교차로에서 우리는 끝까지 묻겠다. 누구의 안보인가, 누구의 이익인가, 그리고 누구의 목소리가 빠졌는가. 국제안보 심포지엄이 다음엔 이 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길 바란다. — 강서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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