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어둠’ 발언, 통합인가 검열의 새 신호탄인가
권력의 언어는 언제나 시대정신을 암시한다. 최근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곳곳에 숨어있는 내란의 어둠을 밝혀내 국민통합의 문을 열겠다”고 천명했다. 이 발언이 전국적으로 논란을 촉발시키는 배경에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 이상의 내포가 있기 때문이다. 표면상 국민통합이라는 대의는 언제나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언저리에 깔린 ‘숨겨진 내란’과 ‘어둠’을 거론하는 화법은 비판적 시각에서 심각한 경계의 신호로 읽힌다.
정치권은 즉각 반응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국가안보와 질서, 극단적 선동 세력의 척결, 법치주의 확립을 내세우며 박수를 보냈다. 반면 진보·중도 계열는 시국 선포와 내란 운운하는 레토릭이 폐쇄적 사회로 가는 포문이 아닌지 의심을 표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불온감시’ 혹은 ‘표적 내부규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1년간 발표된 관련 기사 자료와 정부 브리핑을 모아 보면, 대통령실은 올해 들어 고강도 법치 기조, 이념 분쟁 청산, 사회 다양한 측면에서 ‘내부 적발’ 및 ‘불순세력’ 색출 의지를 반복적으로 내비쳐 왔다. 교육계, 노동계, 시민사회 등 사실상 모든 집단이 이 프레임의 대상이 됐다. 특히 노란봉투법 등 사회 양극화 해소 시도나 표현의 자유, 집회의 권리가 대치기에 들어가며 박스권 위반자 색출 논리와 연결되는 흐름이다.
‘내란’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거명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형법상 내란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에 한정된다. 그러나 최근 집회·시위, SNS상 반정부 의견, 내부 고발 등을 ‘국가 안전’ 프레임으로 재해석하는 입법·행정 시도들이 지속됐다. 법률가들 상당수는 극단적 사례 외 확대 해석이 사회적 자기검열, 사상 감시, 정치적 재갈 부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수사당국 내부에서도 “정치적 레토릭이 결국 현장의 선택을 강제하고 있다”는 내부 고발성 발언도 적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어둠을 밝혀 국민통합’ 논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직시해야 한다. 오랜 시간 사회에 내재한 갈등과 불협화음은 사실상 집권세력·야권·시민집단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나 ‘어둠’이라는 명목 아래 불편한 목소리, 소수 집단의 저항, 불합리에 맞선 내부고발까지 도매금으로 몰아간다면 통합이 아니라 통제의 문이 열릴 수 있다. 구체적으로, 최근 공공기관 내부고발사건, 노사 충돌, 대학가 학내시위는 어느덧 ‘불온세력’ 프레임으로 교묘히 분류된다. 내부 비리를 폭로한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사례마저 정치적 색깔로 낙인찍히면서 실질적 진실규명이 어렵게 만들어진다.
정부는 통합을 인위적으로 강제하거나, 배제와 감시로 ‘안전’을 얻으려는 역사의 거울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1980년 광주, 1997년 IMF, 2016년 촛불 등 대한민국이 위기마다 보여준 시민심성은 안보가 아닌 자유와 진실, 소통의 힘에서 비롯됐다. 절대 권력은 늘 ‘어둠’을 외치며 예외상황 논리를 악용해왔다. 국민통합이란 이름 아래 소수의 소리를 억압하는 사회에서 결국 남는 건 침묵과 불신뿐이다.
외부의 적, 내부의 적, 늘 새로운 타겟을 찾아내는 권력의 패턴은 시대적 초상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지금 필요한 건 실체 없는 ‘내란’ 색출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존재하는 구조적 부패, 권력 남용, 번번한 책임회피에 대한 정확한 문제 인식과 개혁이다. 통합은 배제와 감시로 이룰 수 없다. 정의로운 시스템과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문제 제기, 그리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성숙한 정치가 해답이다. 권력자의 언어에 경계심을 갖고, 사회 각계의 내부고발과 참된 문제 제기를 지켜주는 풍토가 절실하다. 국민은 통합의 미명 아래 감시와 억압이 반복되는 과거의 그늘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 송예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