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인생책’이 던지는 질문…누구에게나 한 권은 있다
광화문을 지나던 어느 오후, 무심코 들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문득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질문 하나. ‘당신의 인생책은 뭔가요?’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곰곰이 떠올려볼 수밖에 없는 물음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최근 마련한 ‘인생책, 교보로부터’ 전시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이 전시에서는 유명 인사뿐 아니라 일반인의 ‘인생책’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큐레이션되어 있으며, 참여자의 개별적 사연과 책의 배경이 조용한 목소리로 전해진다.
이 전시는 단순한 서적 나열을 넘어 사유의 장을 조성한다. 성장기 ‘데미안’을 통해 내면을 마주한 어느 교사의 이야기, 긴 공백 끝에 ‘멋진 신세계’를 다시 잡은 50대 가장의 전환, ‘어린 왕자’와 함께한 청춘 시절을 그리워하는 여성 직장인의 오랜 기억까지. 다채로운 삶의 순간이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조용히 조명된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동시에, 우리의 삶을 두드리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서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책 한 권을 둘러싼 개별적 감정과 시대적 배경은 각각의 독립적 맥락 안에서도 한 사회의 문화적 자양분이 되어 흐른다.
최근 여러 출판·도서관계에서 인생책을 돌아보는 비슷한 기획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교훈적 메시지는 다소 진부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여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2024년 국립중앙도서관이 대대적으로 추진한 ‘내 인생의 문장’ 캠페인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됐다. 이 캠페인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제출한 사연에는 시대의 아픔, 가족의 환희, 그리고 자기 내면과의 조용한 대화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결국 나라는 개인의 ‘인생책’은 내 사회적 경험, 관계, 가치관이 녹아든 결과물임을 깨닫게 한다.
이런 흐름의 사회·문화적 배경에는 최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내면적 고민이 자리한다. 저출산, 경제난, 고립감, 그 어느 때보다 각박해진 사회에서 책은 단순한 정보의 전파를 넘어, 자기만의 의미와 위로를 제공하는 문화적 매개자이다. 10대에게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미래를 설계하는 나침반이라면, 50·60대에게는 여전히 ‘삼국지’, ‘토지’ 같은 문학작품이 삶의 의미를 새기는 거울로 읽힌다. 이렇듯 세대별, 삶의 국면마다 ‘인생책’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교보문고 전시에서 특히 강조되는 점은, 사람 중심의 접근이다. 구체적인 책 이름과 함께 그 책을 택한 사연을 세밀하게 소개함으로써, 독서가 한 개인의 성장에 미치는 정서적 효과를 부각시켰다. 타인의 ‘인생책’을 읽고 느끼는 낯선 공감, 그리고 나만의 인생책을 곱씹는 조용한 성찰. 이 두가지 과정은 결국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내가 선택한 책 너머, 나와 비슷한 시대, 유사한 고민을 가진 이들이 같은 텍스트를 통해 교감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명백히, ‘인생책’이라는 주제는 단일한 답을 거부한다. 책, 독자, 그리고 사회의 관계는 다층적이며 변화무쌍하다. 특정 베스트셀러가 동시대를 관통하는 화두를 던질 때가 있는가 하면, 한 권의 소설이 생의 한 구석을 지키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뉴질랜드 그린도어 출판사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이나 자서전 한 권이 개인 행동 변화와 정체성 형성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 비율이 36%에 달했다. 이는 책이 여전히 자의식 확장과 사회적 소속감의 창구임을 방증한다.
한국의 대형서점 중 선두를 지키는 교보문고의 기획은 단순히 판매와 홍보를 넘어, 독서라는 행위를 한 사회의 ‘자화상’으로서 재해석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 자화상은 저마다 색감이 다르고, 그 색감의 조화와 불협, 그리고 때론 예상치 못한 파장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구성한다. 오늘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전시장에서 마주친 질문, ‘당신의 인생책은 뭔가요?’는 그래서 단순한 취향의 나열이 아니며, 각자의 인생에 대한 조용한 물음이고, 답이다.
일상에서 책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해도, 이런 전시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인생책이 필요한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이 문학이든, 인문서든, 자기계발서든 각자 가슴에 품은 한 권의 책을 꺼내어 타인과 나누는 것. 그것이 어쩌면,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이 사회가 지닌 마지막 따뜻함이 아닐까.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조용한 성찰은 이렇듯, 우리 모두에게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