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의 ‘피벗’ 신호, 1470원대 환율의 변곡점…안도와 경계 사이 선 정책 당국
원·달러 환율이 1,470원 선을 하회하며 시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표면적 원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 2년간 지속된 고금리·고환율 국면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복합적인 시장 심리가 깔려 있다.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환율 등락을 넘어, 통화정책의 주도권이 연준에서 각국 중앙은행으로 점차 이양되는 과정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사건의 타임라인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2024년부터 이어진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킹달러’ 현상을 촉발하며 전 세계 통화가치를 끌어내렸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원화 가치 급락으로 수입물가 상승과 무역수지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당시 한국은행은 3.5%라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어려운 선택을 이어갔다. 연준을 따라 금리를 올리자니 2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동결하자니 1.5%포인트 이상 벌어진 한미 금리차가 부담이었다. 외환당국 역시 수차례 구두개입과 실개입을 통해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연준의 긴축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면 전환의 계기는 2025년 4분기 들어 가시화된 미국의 경제지표 둔화였다. 예상치를 하회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고용지표가 잇따라 발표되자, 시장은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금리 인하(피벗)에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발언도 기존의 매파적 기조에서 한층 완화된 톤으로 바뀌며 이러한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달러 인덱스는 급락했고,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살아나며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강세로 돌아섰다. 현재의 1,460원대 환율은 이러한 글로벌 자금 흐름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법조계의 시각으로 이 상황을 분석한다면, 연준의 통화정책은 글로벌 경제라는 사건의 가장 중요한 ‘판례’와 같다. 연준의 결정 하나하나가 각국 정책 방향의 준거법이 되어왔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이 판례의 절대적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열리면서 한국은행은 비로소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는 ‘숨 쉴 공간’을 확보하게 됐다. 당장 금리를 인하할 상황은 아니지만, 최소한 추가 인상 압박에서는 자유로워진 셈이다. 이는 가계부채 연착륙과 내수 경기 부양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한은에게 선택지를 넓혀주는 긍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외환당국과 정책결정자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사건 수사가 초기 단계를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듯, 환율 문제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거나 성급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존재한다. 연준은 여전히 ‘데이터 의존적’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향후 발표될 경제지표에 따라 언제든 긴축 고삐를 다시 죌 수 있다. 섣부른 낙관론에 기댄 환율 하락은 향후 더 큰 변동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또한, 환율 하락 속도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완만한 원화 강세는 수입물가를 안정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속도가 가파를 경우,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던 우리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가 ‘환율 안정’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이유는 급등과 급락 모두 경제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는 ‘범죄’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국은 시장의 쏠림 현상을 예방하고, 급격한 변동성을 완화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의 필요성을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최근의 환율 하락은 우리 경제를 옥죄던 외부 압력이 완화되는 긍정적 신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위기 국면의 종료가 아닌, 새로운 정책적 과제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연준의 영향력 아래 수동적으로 대응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책 당국의 정교한 ‘사법적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안도감에 취하기보다 다가올 변수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 시나리오를 짜야 할 때이며, 그 귀추가 2026년 한국 경제의 향방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 김하늘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