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계절, 사람의 계절―2025년 신간이 던지는 질문들
불확실한 시대에도 책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온다. 2025년 겨울의 첫머리, 이번 주 소개된 신간들은 우리 사회의 내면 깊이를 성찰하게 한다. 각기 다른 목소리와 시선으로 구성된 이번 라인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금, 왜 읽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새삼스럽게 묻게 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현실을 온몸으로 통과해 나온 산문들의 등장이다. 은유가 이끄는 사회비평에선 고단한 일상과 사회적 감수성이, 이기호의 에세이에선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가치관을 직조하는 인간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정공법적인 태도는 은근한 울림을 남긴다. 독자들은 더는 위에서 던져주는 관념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텍스트를 요구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읽힌다. 곽재식의 책처럼 과학적 태도와 사회현상을 탐침하는 작품들 역시 이 흐름에 힘을 보탠다.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 그 속의 작은 움직임까지 천착하며 우리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의 의미, 그리고 도전의 가치를 묻는다.
다른 한편, 이번 신간들에서는 ‘경계의 허물기’가 두드러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단편집은 언어의 벽, 문화적 경계, 세대의 격차를 지우듯, 모든 세계의 이야기를 낯섦 없이 펼쳐 보인다. 하루키 특유의 몽환적 문체와 반복의 미학은 독자에게 여러 층위의 감정을 각인시킨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 현실과 비현실, 현재와 과거, 인물들의 내면과 사회적 맥락이 혼재되어 떠다닌다. 이러한 경향은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일상적으로 접했던, 서사 구조의 다변화와 시점의 유연함을 연상시킨다. 문화와 문학, 영화 예술의 경계 역시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번 주 화제작 중 하나인 정유정의 신작 장편도 놓칠 수 없다. ‘7년의 밤’과 ‘종의 기원’ 등 굵직한 문제작을 남긴 그녀는 이번에도 인간 내면의 그늘에 깊숙이 천착한다. 인간성, 윤리, 집단 심리에 대한 탐구가 작품 구석구석을 관통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최근 방영작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역시 인간 심리의 어둠을 조명한 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신간 소설과 대중 미디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시대 독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자신만의 해석 공간을 건넨다.
사회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책들도 주목된다. 김혼비가 주인공인 산문집은 일상 속 숨겨진 부조리와 애틋한 시간의 흔적을 감성적으로 그려낸다. 다른 신작 에세이에서는 환경 위기, 노동, 젠더 문제 등 구체적 사회문제에 눈을 돌리고, 대화를 이끌어내려 한다. 다양한 층위의 목소리가 균등하게 조명되는 것이 지금 세대가 책에서 가장 기대하는 바임을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 권위에서 점차 이탈하며, 각자의 경험과 관점을 존중하는 문화로의 이행을 반영한다.
이처럼 신간 도서계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변동성과도 깊이 맞물린다. OTT 플랫폼에서 일상의 다변화를, 영화에서는 정체성과 경계를 허무는 세련된 시도를 봤듯, 출판 역시 트렌드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동명 원작의 영상화, 트랜스미디어적 확장, 그리고 미디어 소비에 대한 분석적 저작도 꾸준히 많아지는 중이다. 활자의 힘과 영상언어의 공존, 그리고 각기 다른 감성의 심장 박동이 동시대를 울린다. 제작자의 손끝에서, 그리고 독자의 시선에서,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장르적 실험과 메시지의 층위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2025년, 지금의 신간들은 ‘읽는다는 일의 의미’를 다시금 묻는다. 쉽게 소비되고 빠르게 잊히는 것이 대세인 시대에, 여전히 책에서만 가능한 깊이와 성찰, 잔상의 힘이 있다는 사실. 다양해진 장르와 스타일, 그리고 연령과 경계를 초월하는 교차적 서사는 아마,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무엇을, 왜 읽는가. 정답이 없는 그 물음 앞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이 겨울 신간의 가장 담대한 가치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