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부품 국산화 전략 강화…글로벌 자동차·부품 산업 판도 변화 예고
유럽연합(EU)이 자동차를 비롯한 전략적 산업의 부품 자립화를 대폭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완성차를 포함한 주요 제조업 제품에 대해 2030년까지 70%에 이르는 부품을 유럽산으로 채우는 방안을 검토 중임이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지역 생산 확대를 넘어 공급망 재편과 산업 전략의 본질적 변화를 시사한다. 전 세계 자동차·부품 산업의 가치사슬에 직격탄이 될 사안이다.
보도에 따르면, EU는 현재 45~50% 수준에 머무는 EU산 자동차 부품 점유율을 최소 60%, 최대 70%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침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중국의 전략물자 내재화 움직임에 자극받은 결과로, 대외 공급망 충격을 막기 위한 구조적인 대처로 풀이된다. 유럽 내 배터리·모터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자동차 전장·반도체·화학 등 첨단 부품 전반에 걸친 국산화율 상향이 논의 대상에 포함된다.
구체적으로, 유럽 각국 생산거점 및 소재·부품 업체에 대한 투자 인센티브 확대, 역내 신규설비 구축 및 첨단 기술력 이전, 해외기업에 대한 통상·규제 장벽 조정 등이 병행 검토 중이다. EU 내 주요 독일, 프랑스 등 완성차 업체는 수급 안정과 비용 상승 사이에서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연결돼온 한국, 일본, 중국계 자동차 부품사에도 구조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공개된 유럽 자동차산업협회(ACEA) 보고서에 따르면, EU 역내 완성차·부품사들은 2030년경까지 총 500억 유로 규모의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유럽의 전략 변화는 실제 현장과 기업 단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대표적으로 독일 폭스바겐, 프랑스 스텔란티스, 이탈리아 피아트, 스웨덴 볼보 등 주요 유럽계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현지 부품사 협력 확대, 신생 소재 업체 육성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아시아계 글로벌 부품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위험과 기회의 양면이 공존한다. 한온시스템, 현대모비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은 유럽 진출 및 현지화 기조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현행 및 향후 도입될 유럽 내 부품산 기준이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적용될 경우, 단기적으로 공급망 혼란과 생산단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전략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럽의 공급망 내재화 움직임이 완성차·배터리·반도체 등 첨단 산업 전반에 걸쳐 ‘뿌리 공급망’의 자국화라는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만든다는 점이다. 글로벌 무역질서가 기술·국가 안보 논리에 좌우되는 현상, 미국 IRA나 중국의 수출제한 조치와 유사한 규제의 ‘EU판 적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기술력 격차가 없는 중소규모의 부품기업에게는 역진적 타격, 규모와 자본·기술 인프라를 보유한 다국적 대기업에게는 현지화 투자 확대 등 차별화된 전략적 과제를 안길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 닛케이 등 주요 외신도 유럽의 산업 내재화 움직임에 대해 “2020년대 글로벌 자동차 산업 공급망의 대전환이 본격화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한-EU, 중-EU 등 양자 FTA 체계 개정, 역내 투자 보호 및 채널 다변화 등의 정책적 적응이 요구되고 있다. 이미 일부 유럽 국가들은 친환경차 보조금이나 탄소규제 연동 등 ‘유럽산 부품 사용’ 조건을 부가하는 실무적 법제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은 전기차,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등 미개척 시장에서도 유럽 부품 내재화·친환경 소재화가 의무화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자동차·배터리 산업의 입장에서도 단순한 유럽 현지 투자 이상으로, ‘역내 부가가치 기여’ 및 장기적 기술 파트너십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단기적으론 납품처 다변화와 현지 법인 설립 확대, 장기적으로는 제품·공정 혁신, 기술독립 역량 고도화라는 투트랙 전략이 필수적이다.
결과적으로 유럽의 부품 내재화 강화 움직임은 산업 트렌드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 ‘글로벌 공급망의촌락화’, 자국 단위 가치사슬 재편, 첨단 제조업의 경계 재정의는 앞으로 10년간 자동차·산업 기술 경쟁 판도를 크게 바꿀 것이다. 우리 산업계도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닌, 전략적 제휴와 기술혁신, 장기적 협력을 통한 역내 파트너십 강화에 나서야 EU의 구조재편 속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 서하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