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음악, 극우의 그림자가 젊은 층에 드리운 현장: 사운드로 스며드는 선전의 실체
12월 초의 저녁, 디지털 플랫폼의 어두운 구석에서 예기치 않은 음파가 날아든다. ‘유로비트’의 박자에 맞춰 도입부가 흐르고, 목소리는 인공적이다. 가사엔 저항의 메시지, 외부인을 향한 배제의 언어, 그리고 선동이 섞여 있다. 미국과 유럽의 극우 집단들이 ‘AI 음악’이라는 새로운 무기 앞에서 확실하게 전열을 다진다. 이 신종 사운드는 전통적 프로파간다의 무거움을 벗어 던진다. 10대와 20대, 낮은 방어력을 가진 젊은 층은 ‘밈’처럼 번져가는 음악, ‘챌린지’ 형식으로 확산되는 음원 앞에 수비 없이 노출된다.
독일의 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는 최근, AI로 생산된 팝 음악이 집단적으로 공유됐다. 트랙은 3분 남짓, 반복되는 사운드와 훅의 중독성은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청년들에게도,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낀 학생에게도 ‘그냥 듣기 좋은’ 곡이었다. 그런데 이 곡들 사이엔 극우·혐오 메시지가 치밀하게 삽입돼 있었다. 가사는 인종주의적 클리셰를 가볍게 비튼다. 유럽의 극우 정당 로고가 프로필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마치 루프 영상처럼, AI가 만든 얼굴들이 음악 배경 위에서 미소 짓는다. ‘단어’에 집중하는 순간, 사운드가 말보다 빠르게 감정에 끼어든다. 장면을 촬영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우리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장난스럽게 이런 트랙을 추천하는 현장을 마주한다. 음악은 쉽게 반복된다, 빠르게 확산된다, 이질감을 줄인다. 공존이라는 가치가 모호해지는 순간, 이미 누군가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넘어서는 중이다.
CNN, 뉴욕타임스 등 해외 주요 매체도 최근 ‘AI 음악을 통한 정치적 선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미 동부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27%가 ‘음악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에 공감한 적 있다’고 답했다. BBC는 “AI 음악의 익명성·확산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사용자는 뮤지션의 의도나 정치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보통의 팝 트랙처럼 포장된 극우 성향 AI 음악은 사운드 클라우드, 틱톡, 스포티파이에서 아무런 ‘필터’ 없이 송출된다. 이미 ‘음악 알고리즘’이 정치적 메시지를 젊은 층의 머슬메모리처럼 새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면적 현장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AI가 합성한 가사를 단 음악이 유행하며, 교내 충돌이 심화됐다. 담당 교사는 “학생들은 노래 가사를 모두 이해하지 못한 채 입에 담는다. 반복적으로 자극적 메시지에 노출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영국 문화연구소는 “AI 음악은 기존 극우 선전보다 훨씬 교묘하다. 의식적 저항 없이 이미 몸에 스며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폴란드, 오스트리아에서도 정치색을 강화한 AI 음악의 확산 사례가 연이어 포착됐다. 현장의 공기는 불쾌하게 차갑다, 노래가 끝나도 메시지는 침투력을 잃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음악 유통 플랫폼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전문가들은 “아티스트 마스킹 효과(artist masking effect)”를 지적한다. 기존 음원 서비스는 크리에이터, 장르, 국가 정보를 기반으로 필터링이나 신고 절차를 유도하지만, AI 트랙은 알고리즘 생성 과정에서 크리에이터 정보가 모호하거나 아예 비공개다. 극우 메시지는 ‘비트’와 ‘멜로디’의 감미로움에 감춰진 채, 구독자의 하루 플레이리스트에 잠식해 들어온다. 심야 시간대 라이브 방송, 사용자들이 몰리는 해시태그, 대화방 게시물 속 추천 링크는 모두 이 새로운 선전의 유통망이다. 이 현장의 가장 섬뜩한 순간은,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음악에 스며든 선동’이 새로운 정보 전쟁의 장이 될 것을 우려한다. 기존에는 뉴스, 게시물, 영상 등 명백한 콘텐츠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AI 음악은 “나는 그냥 듣고 있었을 뿐”이라는, 책임성도 정체성도 불분명한 소비자의 방관 뒤에 숨어 있다. 극우 집단은 그 빈틈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2025년 미국 대선, 유럽의회 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일정에 맞춰 이같은 AI 음악 선동이 더욱 조직화될 가능성도 커진다. 한 유럽 극우활동가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은 가장 쉬운 유혹”이라며, “새로운 세대는 직접적 메시지보단 센스있는 연출, 분위기에 더 끌린다”고 밝혔다.
카메라의 초점이 젊은 음악 이용자에게 멈춘다. 스마트폰 속 플레이리스트, SNS의 피드, 짧은 쇼츠 영상이 모두 “AI가 만든 선전”의 확성기가 된다. 청자에게 ‘분명 다르다’고 느끼게 만드는 극단적 선전이 아니다. 강력한 설득이나 논리 대신, 감정과 일상의 리듬에 스며드는 뉴스타일이다. 현장 영상 기자로서 지난 6개월, 글로벌 플랫폼 내 AI 음악의 ‘파장’을 추적한 바 있다.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매끄럽고, 무해해 보이는’ 음원들이 실제로는 극단적 메시지의 파편임을 확인하는 순간, 경계심도 허탈한 한숨도 섞인다. 모두가 그냥 듣고, 그냥 넘긴다. 그러나 누군가는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 사운드와 비트, 감정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선동은 앞으로 더 정교해질 전망이다. 플랫폼의 책임, 사회적 논의의 강화, 교육적 개입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 그러나 아주 분명한 변곡점. 우리의 ‘귀’를 단련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