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패션, 트렌드 최전선에 서다: 지드래곤·제니가 입증한 레트로 파워
최근 패션계에서 급부상 중인 키워드는 바로 ‘할매 패션’. 이 단어 자체만 들어도 어느새 코끝을 스치는 쌉싸래한 약재 향과 화려한 꽃자수가 아른거린다. 연합뉴스의 ‘[샷!] 지디·제니 따라 ‘할매 패션’ 해볼까’ 기사는, 명실상부한 트렌드 세터 지드래곤과 제니가 발화점이 되어 2020년대 중후반 패션 시장을 들썩이게 한 ‘할매 패션’ 열풍을 집중 조명한다.
서울 한남동, 압구정 거리만 걷다 보면 올 블랙에 강한 스트릿 무드만 정의했던 패션 피플들 사이 ‘할머니 옷장’에서 갓 나온 듯한 레이스, 자수, 퍼프 소매, 심지어 투박한 니트까지 당당하게 룩의 중심으로 섰다. 기사에서는 지드래곤이 오버사이즈 카디건에 자수 프린트, 진주 목걸이로 레이어드룩을 선보였으며, 제니는 빈티지 벨트와 스카프, 고풍스러운 퍼 코트까지 스타일링해 MZ세대의 열렬한 관심을 이끌었다고 짚었다. 그야말로 과거 할머니들이 즐겨 입던 아이템들이, 유행의 중심축으로 환생한 셈이다.

이런 회귀적 무드는 2023년 말부터 소셜미디어와 리테일 숍에서 점점 현실화되더니, 2024년은 ‘할매스러운 것’ 자체가 트렌드임을 인증하는 해로 기록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틱톡 속 해시태그 #할매패션, #할매니얼 #그래니룩이 폭증하는 자료도 관측된다. 관련 업계 관계자의 멘트처럼 “2030 세대뿐 아니라 10대 Z세대까지 ‘특이함’ ‘역설적 매력’을 찾는 시대에 딱 맞는 무드”라는 분석처럼, 그동안 아날로그 취향은 잠재되어 있던 젊은 세대의 자기표현 욕구와 만나 더욱 확산되는 중이다.
스토리가 깃든 듯한 앤티크 귀걸이, 들꽃 패턴의 수제백, 낡은 듯한 컬러 믹스, 그리고 실루엣은 한껏 넉넉하게. 소품만 바꿔도 그 톤앤무드는 확 달라진다. K패션 브랜드 ‘르917’, ‘에코드락’, ‘이뮤즈’ 등은 콜렉션마다 레이스와 진주, 우드톤 액세서리, 빈티지 체크 등을 메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 해외에서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시절 라인업이 대표적 영감을 주었고, 탑 뮤지션 빌리 아일리시와 해리 스타일스 역시 패치워크, 플로럴 파자마처럼 ‘할매스런 멋’을 멋지게 재해석하고 있다.

정작 패션계 오리지널 세대인 우리의 할머니들은 새삼스럽게 “저 옷이 왜 멋있냐”며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지만, 바로 이 낯설고 뒤틀린 코드가 요즘 세대에겐 신선한 유희로 받아들여진다. 기성 명품숍에서도 직접 만든 듯한 뜨개 니트, 패치워크 드레스가 핫 아이템으로 소개되고, 편집숍 PB 브랜드에서는 일부러 색이 바랜 듯한 티셔츠와 80년대풍 키치 스카프, 여기에 앤티크 브로치까지 세트로 선보인다.
이 모든 열풍의 또다른 핵심은 ‘노력한 듯 안 한 듯한 무심함’이다. 의도적 레이어링, 컬러 미스매치, 소매를 일부러 걷거나 또는 길게 늘어뜨리는 등의 긴장감이 핵심 디테일로 활용된다. 그래서일까, 기사 속 제니와 지드래곤의 ‘훌렁’ 걸친 듯 자연스러운 무드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셈이다.
패션 전문가들은 이를 MZ세대의 ‘뉴트로 뷰티’로 규정한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취향도 한 번쯤은 섞고 비틀 수 있는 시간적·문화적 자유로움. 동시에 소비자 각자가 자기만의 맥락, 가족·어릴적 추억·스몰 럭셔리 등을 녹여 의외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자기표현의 확장으로 본다. 패션은 결국 시간 여행이자, 심리적 회귀이기도 하다. 최근 Z세대와 MZ세대가 증조모의 옷장까지 들추는 ‘리얼 빈티지’ 수요 확대로 이어지고, 동시에 각종 업사이클 브랜드, 리페어 서비스까지 성장 견인을 하는 배경에 이런 심리가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갑작스런 트렌드 전환에 불편을 토로하는 쪽도 있다. 할매 패션이 단순히 복고적 유행의 반복이 아니라, 개별적 취향과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장르로 자리잡으려면, 얼마나 자연스럽고 자신 있게 연출하느냐가 진짜 문턱이 된다. 명확한 건 명품부터 SPA, 빈티지 숍까지 할매 패션 무드가 대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사실. ‘개성’ 이상의 집단 심리로 번진 이 무드가 내년에는 또 어떤 자기만의 변주로 나타날지, 꾸준히 관찰할 이유가 된다.
거침없는 레이어드, 진주와 꽃자수, 안 해본 듯 신박한 믹스매치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되고 싶다면, 이제 작은 용기만 내면 된다. 올해의 패션 키워드는 별다른 노력 없이 손쉽게 스타일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포인트다. ‘할매 패션’이란 단어가 이제 더 이상 촌스러움이나 낯섦으로만 남지 않는 그 순간, 개성과 재미가 교차하는 새로운 트렌드의 장이 열리고 있다. — 오라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