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공허한 진단’의 반복이 남긴 한국 사회의 경고등

이 대통령이 다시금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로서 양극화를 지목했다.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며 경제 활성화 방안 마련을 주문하는 그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기대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 거대담론이 구체적 실천으로 연결된 흔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언급한 ‘양극화’는 여러 통계와 체감 지표로 증명되는 현실적 위기다. 자산 격차는 커졌고, 교육·의료·주거의 접근성 역시 출발선부터 달라졌다. 다만, 권력자들이 여기서 그치는 관례적 레토릭에 머무르지 않았는지 지난 몇 년의 정치·행정 역사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연대’라는 단어는 낡았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구호처럼 반복됐고, 실제 제도 설계와 시행 과정에서는 각종 이해관계에 막혀 유야무야되었다. 정치권은 양극화의 원인을 ‘노동시장 양분화’, ‘부동산 격차’, ‘일자리 미스매칭’ 등 몇 개 키워드로 정리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정책 기획실이나 대통령실 탁상 위에서 맴도는 말과 전혀 다르다. 사교육비 부담, 전월세 불안, 청년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 중산층 몰락, 복지 사각지대의 현실 등 문제의 층위는 이미 사회 전반에 응집돼 있다. 연대의식이 아니라 분노와 체념이 요동친다.

근본적 문제라 규정하면서도, 그 ‘근본’에 접근하는 공식은 늘 평면적이다. 정책 패러다임 변경도 없이, 변화의 불씨는 금세 심야 토론이나 기념사로 소거된다. 동시에 자산가 및 기득권층에 이익이 되는 각종 정책은 단박에 입법화되거나, 버티기 식으로 관철된다. 양극화란 단어가 언급되면 늘 당신 편, 나의 편만 남는다. 대통령의 ‘주문’은 주문에서 멈춰선 안 된다. 과거 정부들 역시 “포용적 성장”을 강조했으나, 실체는 시장 논리와 성장 중심의 구호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조세와 복지는 북유럽처럼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전환한 의지조차 제대로 표명된 적 없다.

현 정권 들어서도 양극화 해법을 둘러싼 논의는 갑론을박 속 표류했다. 임시 정책이 남발되는 사이, 부의 대물림은 더욱 견고해졌고 공공부문의 희생만 강조됐다. 최근 3년간 가계부채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체감 경기 역시 하락곡선을 그린다. 청년 고용이나 복지 사각지대 확장, 중산층 보호 방안 등 핵심 지표는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을 쳤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통령 발언은 실효적 대책 없이 팽창하는 불평등만을 거듭 확인시킨 장면에 가깝다.

사회적 연대란 무엇인가. 상위 10%가 전체 부의 절반을 점유하는 구조에서, 연대란 필연적으로 부의 재조정, 조세 개혁, 재분배 강화로 연결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내로남불’ 정치, 단기 이익 매몰, 이해관계 집단 간 타협 부재에 갇혀 실질적 위기관리 역량을 증명하지 못했다. 최근의 지방 예산 삭감, 복지 노조 갈등, 청년복지 공약 탈락은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별 기득권, 대기업-중소기업간 이익 대립, 고소득층의 조세 저항…현재 대한민국은 구조적 비리가 만연한 비정상성을 정상처럼 소비한다.

이 대통령의 ‘진단’이 반복될수록 시민의 불신은 커진다. 과거에도 “적폐 청산” “중산층 재건” “공정사회” 등 그럴듯한 수사가 동원됐지만, 어느 하나 해결된 적 없다. 그사이 스웨덴식 사회안전망, 핀란드식 교육평등, 독일의 산업-복지 균형 등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해외 사례는 밀려났다. 현실은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부동산, 세제, 교육정책에서 소득 하위층의 희생만 반복된다.

이젠 선언이 아니라, 구조를 건드리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대기업-공기업-금융계열사의 소수 독점구조 개혁, 족벌 경영과 인맥 카르텔 청산, 불평등 심화에 편승하는 관변세력 척결 등이 병행되어야 실질적 연대와 불평등 완화가 가능하다. 본질적 문제로 지적한 양극화—그 출구는 시혜적 복지 확대나 미디어용 언급이 아니다. 총체적 세제 개혁, 공정노동시장 개편, 사회안전망 강화 등 구조적 처방 없이 아무리 대통령이 ‘근본 문제’ 운운해도 또 하나의 구호로 끝날 위험이 크다.

삶이 곧 정책이라는 사실, 권력 의식과 책임 회피 사이에서 실종되어 왔다.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한국 사회가 더 이상 ‘진단’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는 경고의 신호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진짜 연대—즉, 부와 권력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는 사회로 전환하지 않는 한, 양극화란 이름의 균열은 더 거세질 것이다.

— 강서준 ([email protected])

양극화, ‘공허한 진단’의 반복이 남긴 한국 사회의 경고등”에 대한 4개의 생각

  • rabbit_American

    ㅋㅋ또 양극화 얘기만 하고 끝나겠지요? 대통령님 이쯤되면 말장난이세요, 진짜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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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극화가 진짜 심각하긴 한데 대통령 이런 얘기 할 때마다 오히려 더 멀어지는 느낌…ㅋㅋ 말만 연대 외치지, 실제 변하는 건 뭐냐고ㅋㅋ 신뢰가 바닥인데 무책임함이 너무 익숙하다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는데 윗분들은 타이밍 놓치고 칭찬만 바란다니까ㅋㅋ 뭐라도 직접 뒤집어놓길 좀…이젠 누가 뭘 해도 공감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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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대 따위 말장난🎭 다음엔 무슨 쇼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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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대? 그 단어 나오면 이젠 한숨부터 나온다…구호만 요란하면 뭐하나. 양극화 심화 책임 누가 질 래? 지금껏 분배방식 바꾼 적도 없으면서 또 연대 타령이라니. 직설적으로 현실 무시하는 발언 아니냐. 이런 말도 안되는 쇼 왜 반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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