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pe of Water (2018), 한 겨울에 피어난 물의 사랑

영화의 스크린은 늘 현실의 거울이길 꿈꾸지만, 때로는 그 거울 이면에 숨어 있는 또다른 세계를 깨운다. ‘셰이프 오브 워터(Shape of Water)’는 2018년 아카데미의 밤을 수채화로 적신 피에스타와도 같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상 너머, 침묵과 물살 사이로 번지는 감정의 잎사귀를 스크린 위에 떨군다. 1962년 미국 볼티모어, 차디찬 연구소 한 켠에서 고요하게 튀어 오르는 소녀 엘라이자. 그녀의 세계는 말보다 빛과 물의 리듬, 그리하여 손끝의 조용한 침묵에 가까웠다. 엘라이자는 말을 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 침묵을 통해 더 깊은 대화를 꿈꾼다. 체르노빌과 쿠바 미사일 위기의 긴장감과 맞물려, 냉전과 과학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한 생명체가 발견된다. 물에서 온 괴생명체, 그러나 존재 그 자체로 두렵기보다는 낯선 아름다움에 가깝다. 사랑스럽지만 결코 쉽지 않은 감정이, 이 비정상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의 시작이었다.

엘라이자가 보여주는 사랑이란 위험의 선 위에서 춤추는 듯한 용기다. 복도의 창 너머로 스며드는 물빛, 그리고 서로가 바라보는 눈빛에서 우리는 익숙한 연애담을 넘어선 아련하고도 절실한 존재의 언어를 듣는다. 델 토로 감독은 괴물영화의 문법을 빌려 오히려 인간이라는 영겁의 나선에서 벗어난 순수함을 담아냈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 구분의 욕망으로부터 탈피한 감정의 파편들. 고요하게 번지는 이 사랑의 형상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환상의 실루엣이었다. SF와 멜로드라마, 스릴러와 누아르의 감각을 거침없이 뒤섞으면서, 사회적 약자로 묘사되는 여성·장애인·성소수자를 은유적으로 포근히 감쌌다. 심장처럼 벅차게 다가오는 이 영화의 결은, 고립된 자들의 해방감과 닮았다.

엘라이자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소리없이 울고 있다. 외로운 이웃 화가, 숨죽여 살아가는 흑인 청소부 젤다, 그리고 결국엔 모두가 각자의 상처를 품은 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대단한 대사나 정의는 없지만, 삶이 각자의 방에서 살금살금 흘러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우울하지만 따뜻하다. 파랑과 초록, 금빛 네온 등 시각적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정서도 특별하다. 미술감독과 촬영감독의 세심한 손길은 이 헤롱거리는 욕망과 슬픔의 물방울에 정확히 빛을 뿌려준다. 영화 음악은 에밀리 모리스의 심장 뛰는 듯한 관현악으로, 이 낯선 로맨스를 완벽하게 완성한다. 장면마다 스며드는 아련한 멜로디는 과거 할리우드 뮤지컬의 향수를 잔잔하게 일깨우면서, 사랑의 아름다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들려준다.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이 세상에 없는 의미를 서로에게 만들어주는 존재의 의미. 그것이 곧 엘라이자에게 물의 존재였다. 그녀는 그를 구하고,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물이 그저 흘러가는 실체가 아니라, 삶과 죽음, 슬픔과 기쁨을 온전히 끌어안는 거대한 품이 될 수 있음을. 인간이 되었든, 괴물이 되었든, 결국 서로를 이해하려는 바람만이 이런 밤을 투명하게 만든다. 영화는 차음악처럼 흐릿하게, 그러나 분명한 메시지로 우리에게 침묵의 목소리를 묻는다. 경계와 차별, 침묵과 용기. 누군가의 사랑과 안전, 그리고 연결됨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를 보면 마치 긴 겨울밤 창가를 적시는 서리처럼 차갑지만, 그 위에 스민 손등의 온기를 느끼게 된다. 종종, 우리 모두는 작은 침묵의 방에 갇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 방에 찾아드는, 눈송이 같은 용기의 이야기였다. 마침내 물속으로 잠행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단 하나의 파동처럼 여운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에 취해버릴 위험이 있더라도, 그 파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침내 사랑은 물과 같이 우리 사이의 경계를 녹여내리니.

— 정다인 ([email protected])

Shape of Water (2018), 한 겨울에 피어난 물의 사랑”에 대한 6개의 생각

  • 어차피 비현실적인 얘기니 감동 운운하는 것도 웃김. 상 받은 건 인정하지만, 현실에선 저런 사랑 꿈도 못 꾸지. 영화는 꿈팔이인가 싶다. 그런데 이따금 이런 판타지가 피로를 좀 씻어주긴 하네. 칭찬은 못 하겠고, 새로움엔 점수 좀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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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도 있는데 좀 뭔가 이상한 매력도 있음🤔 판타지라서 좋았고 음악도 꽤 괜찮았던듯! 연출력이 진짜 남다른 거 같아요. 다시 생각나면 또 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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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를 보고 느낀 건 여러분도 물처럼 흘러야 삶이 덜 힘들다… 누가 보면 유치하다 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만큼은 그냥 마음 놓고 몰입하는 게 답… 엘라이자와 생명체의 교감이 독특하게 다가와서 한참 여운 남더라… 이런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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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의 형상도 결국 잡히지 않는 거네. 현실과 판타지 경계 흐릿하게 만드는 건 좋았음. 굳이 사랑 얘기여야 했는지는 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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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wk_recusandae

    연출 참 예뻤지~ 스토리는 좀 호불호. 물컹한 감성 좋아하는 분 추천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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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이거 색깔 미쳤었음!! 결말이 진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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