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한자 교육 강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서울 은평구의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오정은(38)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내준 ‘한자 숙제’를 앞에 두고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에는 일상처럼 배우던 한자가 요즘은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는 말에, 같은 반 엄마들 대화방에도 “이거 정말 꼭 해야 하냐”는 푸념이 오간다. 최근 사회적으로 다시 한자 교육 강화 논의가 본격화됐다. 20년 전과 같은 논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오늘 아이들과 학부모, 교실의 분위기는 과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한자 교육 강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단순하다. 우리 언어의 뿌리인 한자어에 기반한 어휘력이 약해진다는 것, 그리고 과학·법률 등 전문 영역의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는 우려다. 실제로 교육부와 교원단체 자료를 보면, 현대국어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예컨대 “사회” “경제” “교육” 같은 단어를 풀이하자면 모두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더불어 초등 국어 교과서에서 사용되는 기본어휘 중 절반 이상이 한자어라는 통계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교사들은 “한자를 모르면, 개념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사고력과 논리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무게를 둔다. 이를 근거로 몇 해 전부터 ‘한자 병기(倂記)’ 혹은 별도 과목 개설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각 가정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오정은 씨가 만난 다른 엄마, 송진주(41)씨는 “이미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한자까지 추가된다면 아이들이 받을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교육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지만, 지나치게 많은 과목과 사교육 압박까지 동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은 오롯이 부모와 아이에게 돌아간다.

실제로 한자 교육 확대가 가져오는 사교육 시장의 영향도 크다. 서울 종로구의 대형 한자 학원은 올해 입학 문의가 지난해 대비 30%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한자를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시험’이 있다면 결국 부모들은 학원을 찾는다”는 학원장의 말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결코 가볍지 않은 월 20만 원의 학원비는, 소득 격차로 인한 학습 불평등을 한층 더 심화시키고 있다. “한자 시험 없애면 학원 거의 절반이 없어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을 보여준다.

교실 안 풍경도 변했다. 한자 병기를 도입한 일부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처음엔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다가 금세 지루하고 어렵다고 고개를 돌린다. 모든 아이가 한자에 익숙한 건 아니니까”라고 넌지시 전했다. 더 근본적으로, ‘과연 한자의 쓰임이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필수적인가’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취업시장과 IT 업계 등에선 오히려 영어 이외의 언어 경쟁력이 더 요구된다는 점도 지적된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코딩’이란 말은 알아도 ‘도장(圖章)’이란 한자어의 정확한 뜻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국제적으로도 비슷하다. 일본이나 중화권처럼 전통 한자문화권을 제외하면, 정보화 시대에 ‘기초문해력’은 디지털 활용 능력과 맞물려 재정의되고 있다. 2025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언어 영역에서의 ‘독해와 해석력’은 더 이상 특정 문자를 아는지보다는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이해하는 능력이 중시되고 있다.

아이들이 한자를 익혀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그들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 함께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자 속에 담긴 문화와 역사, 여러 단어의 뿌리를 알 때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는 논리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다만, 교실에서 일률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목표치를 강요할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중도 포기, 흥미 저하, 불필요한 사교육 경쟁—을 무시할 수 없다. 교육 현장도 ‘입시용 지식’이 아닌, 스스로 탐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야 한다.

학부모 오정은 씨처럼 “우리 아이가 왜 한자를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더 많아지면 어떨까. 각자의 방식으로 어린 학생의 작은 성공과 실패에 귀 기울일 때, 한자 교육 강화 논의도 더욱 살아날 것이다. 한자 교육은 선택이 아닌 ‘기회’로, 강제가 아닌 ‘첫 물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배움의 주체가 누구인지, 이 논쟁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샷!] 한자 교육 강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에 대한 8개의 생각

  • 한자 또야?ㅋㅋ 우리 애는 그냥 영어나 잘했음 좋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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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왜 또 한자야?🤔 이미 학원비로 빠져나가는 돈만 해도 허리가 휩니다. 진짜 현실 반영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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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는 모르겠고 결국 또 사교육 장사만 배불리는 듯ㅋ 맨날 배움=경쟁만 이야기하는 거 실화냐, 정책 담당자들 정신 못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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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배우면 인생 2배 좋아짐? 웃긴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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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21세기 정답 찾기 미션인가요!! 한자든 뭐든 애들 어휘력은 결국 ‘읽고 쓰는 힘’ 아닙니까!! 학부모들끼리 밤마다 이거 갖고 카톡 회의하는 현실… 진짜 깊이 생각해보면 단순한 문제 아닌데 정책은 늘 쉬워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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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_generation

    존경하는 기자님!! 현장 목소리 잘 전달하신 듯합니다. 저 역시 아이의 어휘력이나 사고력은 한자보다는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니, 선택권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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