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2] 해리건 씨의 전화기 — 다시 본 흔적들
‘해리건 씨의 전화기’는 세상을 떠난 노인과 십 대 소년의 미묘한 유대, 그리고 죽음 너머의 기이한 대화를 다룬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전화라는 일상적 매개가 이끌어내는 초현실적 경험은 장르적 기대와 작가적 메타포 사이에서 녹슬지 않은 존재감을 내보인다. 실제로 ‘해리건 씨의 전화기’는 바람직한 감상에서 벗어나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디테일을 곱씹는 작품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점은 스콧 티머 감독이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를 결코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엄정한 태도다.
윤리적 경계의 흐릿함, 소년의 호기심이 맞이하는 죽음의 세계. 이야기는 콜린스(자든 마텔 분)와 해리건 씨(도널드 서덜랜드 분)가 건네는 목소리의 파장 속에 천천히 스며든다. 스티븐 킹의 분위기를 충실히 재구성한 촬영, 몸짓 하나까지 공을 들인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담담함을 오히려 공포의 정점으로 만드는 연출방식이 두드러진다. 해리건 씨가 남긴 유산은 전화기와 시간, 두 가지다. 오래전 구식 규율에 사로잡힌 노인은 스마트폰이라는 미래와 소년을 잇는 가교로 남는다.
작품이 드러내는 인물의 스타일은 본질적으로 극도의 절제에서 비롯된다. 서덜랜드는 절대적으로 말을 아끼는 듯하지만, 시선과 손끝만으로도 오래된 죄의식과 유약함, 그리고 삶에 대한 회환을 전한다. 자든 마텔의 연기는 고전적인 청소년 성장담을 빙자한 존재론적 불안을 과장되지 않게 드러내며, 더없이 자연스럽게 영화의 감정선을 옮겨 앉힌다. 감독은 인물의 사연보다 소통의 ‘형태’, 즉 전화선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의 변주에 의미를 둔다. 독백에 가까운 대사가 칠흑 같은 침묵에 스며들면서, 관객은 묘한 안도감과 소름을 동시에 맛본다.
특히, 장르적 측면에서 ‘해리건 씨의 전화기’는 스릴러와 공포, 그리고 성장 영화 사이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해리건 씨의 죽음 이후 전화기 너머 펼쳐지는 사건들은 사실상 분명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불확정성은 영화에 ‘해석의 여백’을 허락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외, 부모의 빈자리, 권력에의 동경, 실질과 관념 사이의 이질적 균열… 감독은 이 모든 테마를 노련하게 교차시키며, 보이지 않는 상실의 누적을 물끄러미 쌓아올린다. 서늘한 북미 풍광, 절제된 색감, 곡진한 음악은 심리적 강박에 한 겹 더 무게를 붙이고, 매 신 자체가 모호함을 긍정하는 묵시록처럼 작동한다.
작품 곳곳에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환멸이 은근하게 배어 있다. 해리건 씨가 남긴 텍스트 메시지, 콜린스의 떨리는 손끝… 연결의 환상 뒤에는 늘 단절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스마트폰 시대의 유령이야기를 빌려 현실과 정보, 그리고 기억의 층위를 교차시킨다. 집착조차 없는 초연함, 그래서 더욱 무기력하게 다가오는 공포는, OTT 시대에 익숙한 ‘과잉설명’이나 ‘직설적 서사’의 미덕에서 과감히 비껴난다. 익숙함의 틈에서 솟구치는 불안, 쉽게 흘러가지만 결코 잊기 힘든 잔상이 남는다. 단 한 번 터지는 감정 폭발조차 절대 과하지 않다. 오히려 관객은 차가운 현실의 무게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묘한 체험을 한다.
스콧 티머 감독의 스타일은 이전작 『브레이킹』 등에서 드러난 차분한 심리극의 연장선에 있다. 낡은 저택의 무거운 공기, 교회와 학교를 오가는 미국 중부 풍경… 모든 공간이 서사와 인물의 정서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공간의 기억’을 전이하는 수단이자, 계절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흔적 그 자체가 된다. 결코 뱉지 않을 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하는 속삭임. 작품은 목소리 이상, 침묵과 결핍 사이의 접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또한,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인간 관계에 관한 불안과도 닮아 있다. 격리·단절의 감각, 스마트 기기의 친밀함과 무서움이 동시에 다가오는 이중적 현실. 결국 소년의 성장이라는 표층 아래에는 ‘이야기하지 않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 각각의 연결고리는 단단한 듯하지만 언제든 쉽게 끊어진다. 이 작품이 남기는 피로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계속 들여다보게 하는 스산함은 OTT 영화가 줄 수 있는 현대적 공포의 본질임을 재확인한다.
여느 킹 원작의 장르물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명확한 해답보다 삶의 무게, 그리고 기억의 파편들이다. 떠올릴수록 선명해지는 흔적과, 동시에 더욱 아득해지는 소리. 해리건 씨와 콜린스의 대화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는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결국 레퍼런스가 중요하다… 이거 내용 좀 의외네.
감독이 디지털 공포 잘 살렸네요👍 요즘 이런 스릴러 보기 힘든데 강추합니다!
간만에 서사 제대로… 연기까지 좋게 뽑아내면 이런 잔상이 남지… 다들 한번 보라고 꽉 추천함.
이거 보고 나면 폰 안 쓰고버틸 수 있겠냐고ㅋㅋ 그냥 해리건씨 얘기 계속 생각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