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육아휴직 ‘당연한 권리’로…HK이노엔, 변화의 물꼬를 트다
박성환 씨(39)는 지난해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해, 생애 처음으로 3개월의 육아휴직을 썼다. 아직도 ‘쉬러 가는 거냐’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얼어붙은 표정의 아내와 뒤집기를 시작한 아이를 보며 주저를 털어냈다. 그리고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팀장의 격려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 HK이노엔이 현장의 ‘아빠 육아휴직’ 문턱을 낮추는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성평등가족부 장관상이 이 회사로 향한 배경에는, 수년간 움켜쥐고 있던 사회의 고정관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고민과 도전이 깃들어 있다.
HK이노엔은 올해 성평등가족부로부터 남성 육아휴직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장관상을 받았다. 이 회사는 이미 2023년부터 남성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대폭 끌어올리기 위한 사내 분위기 조성을 시작했다. 첫걸음은 직장 내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하는 ‘육아휴직 권장 캠페인’이었다. 휴가가 아니라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임을 알리고, 실제 육아휴직을 쓴 직원들을 사내 교류회에 초청해 서로의 경험과 애로사항을 공개적으로 나눴다. ‘누구나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퍼지면서, 올해엔 남직원 육아휴직 신청률이 도입 전의 두 배에 가깝게 늘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이 같은 성장 뒤에는,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은 사회의 ‘아빠 육아’에 대한 시선도 있다. 한국 직장인 3040 남성 10명 중 7명은 육아휴직이 ‘눈치 싸움’의 연장선이라 답한다. ‘남자가 집에 있다고?’라는 농담이 차가운 현실임을, 사례마다 마주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조금씩 ‘변화의 징후’가 포착된다. HK이노엔에서는 육아휴직복귀자를 위한 교육과 멘토링을 신설했고, 인사 평가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이것이 실제로 얼마나 소중한 변화인지, 현장의 목소리들은 말한다. “복직이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팀원들과 더 가까워졌어요.” (김대현, 36세, R&D팀 연구원)
차분히 돌아보면, 이번 수상은 현실적인 변화를 위한 작은 ‘트리거’다. 최근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자료를 보면, 2025년 기준 대한민국 남성 육아휴직자는 4만 명을 넘어섰지만 전체 육아휴직자의 25% 남짓에 불과하다. 이 수치도 민간대기업과 공공부문에 한정된 것임을 감안할 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탈정형’의 사례, 즉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그리고 나이든 직원에겐 남성 육아휴직은 큰 허들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K이노엔의 성과가 갖는 상징성은 작지 않다. 인사담당자 윤주희 씨는 ‘아빠의 자리’가 바뀌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한다. “예전엔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은 후임 채용에 대체인력이 들어오면서 부서 내에서도 이 흐름이 자연스러워졌어요. 어느새 ‘안 써본 사람이 더 이상한’ 분위기가 됐다”는 후일담이다.
여기엔 이노엔에만 있는 특별한 ‘사람 이야기’가 있다. 지난해 초, 판매 영업팀 소속 김경환 씨(41)는 2살 된 아들을 사정상 혼자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사내 복지팀의 선배가 직접 월례회에서 ‘아빠들에게도 육아휴직이 권리’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곧바로 김 씨가 2개월의 휴직을 택했다. ‘누가 대신 업무를 맡아줄까’를 걱정하는 동안, 채용과 업무조정이 빠르게 이뤄지고 팀원들도 연대를 표했다.
작은 변주들은 곧 조직문화를 움직였다. HR 담당자들은 육아휴직 사용을 이끄는 부서와 팀장들의 리더십, 그리고 인사시스템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타 회사의 비슷한 시도에서 흔히 발견되는 ‘승진·평가 불이익’ 문제나 ‘눈치주기’를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리더의 용기와 제도의 헌신이 맞물릴 때 비로소 효과가 나온다. 혁신도 결국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사회 전반에서 남성 육아휴직은 이제 ‘젠더 평등’이나 ‘삶의 질’ 이슈를 넘어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연결된다. 특히 저출생, 돌봄 공백, 일하는 부모 양육 부담이 만성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육아의 책임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는 절실하다. 변화는 쉽지 않다. 여전히 직장 현장에서 남성 휴직자가 소수인 경우 그 이질감은 크다. 그러나 한 사람, 한 기업에서 시작한 작은 변화들이 큰 흐름을 만든다. 모두가 잠깐 쉬어갈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덜 아프고 더 따뜻해질지 모른다.
HK이노엔이 건넨 새로운 표준은 미완의 과제 역시 함께 던진다. 육아휴직의 보편화는 제도와 문화 두 가지 축이 동시에 밀고 나가야 하는 만큼, 아직 손에 닿지 않는 현장들은 여럿이다. 하지만 ‘아빠의 자리가 바뀐다’는 이 변화를 더 많은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다면, 그 첫걸음 역시 서툴지 않아질 것이다.
수상 하나를 계기로,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의 손을 조금 덜 떼게 만드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사회 전체로 번져나가길 바란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