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지도자 신격화에 희생 강요까지…음악은 통치수단
무대의 커튼이 오를 때마다 피아노의 건반처럼, 북한의 음악은 늘 통치의 흐름을 따라오곤 했다. 날아오른 현악기 선율, 격정적 박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합창, 온몸을 내던지는 듯한 무용의 곡선에는 예술이란 본디의 자유로움 대신 철저히 구획된 목적성만이 남는다. 김정은 체제 들어 더욱 노골화된 이 정치-음악의 융합은 대중가요에서 국악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조여오는 텍스처가 됐다. 최근 군중집회장, 특설무대, 국영TV 생중계 화면을 채우는 선전가요들은 그 구성과 메시지가 신격화, 충성, 사회주의 건설의 희생적 정신을 담는다. 단숨에 터지는 합창단의 외침에선 망설임조차 허락되지 않는 집단의 긴장이 감지된다.
이른바 ‘선군음악’의 무례할 정도의 반복과 소음 속에서, 혁명가극과 처절한 장송 선율, 어린이들의 떼창까지 모든 음표는 곧 통치인의 명령, 시대의 명령이 된다. 음악은 명백한 프로파간다의 도구. 노래가 끝날 때 박수의 층위마저 계산된, 군사적 질서 속 슬픔과 희망을 ‘동원’한다. 조국찬가 ‘사회주의전진가’, ‘수령님찬가’ 등은 화려한 오케스트라 뒤편, 생의 주체로서 예술가가 아닌 통치의 규율로 재단된 음악인의 씁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들 곁엔 피로 쓴 약속이 깃든다. ‘지도자와의 결연한 맹세’ 앞에선 예술의 경계, 심지어 인간의 고통마저 무대소품으로 소거된다. 음악이 예술다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은 사라진 채, 남는 건 국가적 희생을 강요하는 외피, 선동의 미화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은 종종 이념의 도구로 변모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음악은 단순한 체제 미화의 수준을 지나, 실존적 생존의 언어로 재구성된다. 한 음, 한 구절마다 숙명과 희생, 그리고 ‘지도자 신격화’라는 영적 명령이 박혀 있다. 혁명 가사 없는 가요는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결핍의 낙인을 받는다. 소년단의 앳된 목소리조차 직설적으로 ‘장군님의 품’을 노래한다. 밤하늘을 은은히 비추는 관현악의 선율은, 사실상 노고와 헌신을 찬송하는 ‘통치의 격문’과도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정치적 음악 통치는 유사한 전체주의 체제에서 자주 발견됐던 것이나, 북한이 유례없이 밀도 높고 집요하게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권력의 정당성 약화와 내부 결속 도모, 나아가 경제난과 대외고립 속 집단적 정신 승화를 노린 자구책이라 본다.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총체적 전도다. 실제로 정치 집회의 중심은 언제나 웅장한 연주와 합창, 피끓는 언어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피아노 소리는 더 이상 개인의 울림이 아닌 집단 동조의 울림, 바이올린의 떨림은 개성 대신 강요된 군중의 꿈을 말한다. 대규모 공연 후 반복되는 충성 맹세와 집단적 눈물은 실제 감정이 아닌 시스템에 새겨진 연출일 뿐이다.
북한 음악계 종사자들, 배우, 음악인, 작곡가들은 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창작 의도와는 별개로 정해진 틀을 따라야 한다. 창작의 자유, 예술적 감정의 분출, 본능적 즉흥성은 검열과 사상 방침, 가열된 충성심의 경쟁 속에 뭉그러진다. 외부인의 시선을 거두고 내부적 자평을 들어보면, 그마저도 허용된 언어와 감정의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 남한이나 해외의 음악 예술 축제, 아티스트의 솔직한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다양성과 정체성의 교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무대 예술은 곧 국가, 체제, 지도자와 운명을 같이 한다. 그 운명은 명백히 개인의 서사, 고독, 사랑, 분노, 환희가 아닌 집단의 희생, 헌신, 찬양이다.
요즘 북한 공연 예술은 ‘단결’, ‘사회주의 완성’이라는 메시지가 폭발적으로 강조된다. 공연장은 열처럼 뜨거운 붉음으로 물들고, 무대의 배경에는 거대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초상이 빛난다. 불꽃, 꽃다발, 대형 카드섹션, 최첨단 조명 아래서도 희비는 ‘지도자 숭배’란 단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북한 언론의 ‘음악으로 새 시대의 총진군’이란 선언은, 섬세히 보면 감정의 채널을 차단한 국가적 기제임을 감출 수 없다. 감정의 촉각이 단절된 자리엔 마치 군가처럼 전진을 강요하는 음표만이 남았다.
세계 음악계는 때때로 정치적 목적과 결탁하지만, 북한 정도의 ‘통제’라는 단어를 이토록 실감 나게 그리는 곳은 드물다. 음악인을 음악가로 바라보지 않고, 인민을 한낱 연습생-청중이 아닌 ‘동원’의 일부로 간주하는 현실. 무대 위, 연주자의 손끝에서 튀어나오는 음 하나마저도 억압된 역학 속 무력한 몸짓임을. 남한의 자유로운 뮤직 씬, 장르의 혼융, 청년예술가의 목소리, 상업주의의 논란과 저항, 모두가 부재한 곳에선 ‘예술’이 아닌 ‘명령’만이 공연된다. 문화란 타인과 자신, 현실과 상상력이 교차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지대이건만, 북한에서 음악은 삶의 곡선을 곧바로 권력의 직선으로 꺾어버린다.
음악이란 본디 삶을 노래하는 것. 그러나 그곳에서는 자기 존재 자체보다도 지시에 순응하고, 스스로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토록 염결한 소리 속에 투영된, 개개인 예술가의 두려움, 분투, 절망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예술은 피압박자의 회복탄력성에서 비상하곤 했음에도, 이곳에서는 아직 그 소생의 조짐조차 미미하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인공의 노래가 아무리 도시를 두르고 있어도 필연적으로 인간의 마음, 예술혼은 언제나 균열의 틈에서 새어나온다는 진리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자유를 향해 날갯짓하는 날을 그려본다.
— 서아린 ([email protected])


예술로 권력 잡으려다 결국 민심만 멀어지겠죠…
북한 음악은 계속 부메랑처럼 체제만 돌아보고 있네;; 예술 본질은 실종. 장기적으로 국가 생산성에도 최악. IT든 경제든 음악만 봐도 전체주의가 얼마나 시대착오인지 보임. 자유로운 교류 아예 막혀 있는데 무슨 발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