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북한 주민들의 삶은 ‘찰지고 맵짠’ 말 속에 있다
북한 사회 일상 깊숙이 스며든 언어의 층위는 그곳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최근 출간된 관련 서적은 북한의 대중적 언어, 음식, 노동, 여성의 위치, 가족 관계, 시장 변화 등 다방면의 일상을 관찰자로서 세밀하게 기록한다. 책은 몇 년 간 국경을 넘나든 저자가 북녘 주민 40여 명을 인터뷰하며, 각기 다른 생애와 목소리, 개성 있는 말버릇을 통해 산업화 이후의 평양·지방 도시·농촌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인터뷰에는 장마당의 시장 상인, 주부, 공장 노동자, 젊은 대학생, 퇴역 군인, 소위 ‘자력갱생형’ 여성 등 다양한 분포가 등장한다.
언어는 북한의 물질적 빈곤과 국가 통제 아래 생존술이 되고 때론 버팀목이 된다. “찰지고 맵짠”이라는 제목 표현에는 그들의 말맛, 곧 현실을 숨김없이 드러내려는 세계관, 그리고 삶의 ‘양념’이 묻어난다. ‘맵짠’은 한편으론 험한 현실에 대한 자조적 유머, 한편으론 집단의 결속을 상징하는 어법이다. 타국의 외부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닫혀 있지만 이 책이 포착한 어투와 어휘는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도 개인의 생존 본능과 정서, 흙냄새, 가족적 따스함, 때론 질긴 앙금까지 생생히 전한다.
현장 증언 중엔 저자의 ‘안부’ 인사를 받은 주민이 “살만해요, 뭐… 갓 짠 된장국에 김치랑, 오늘은 배급도 좀 나왔어요”라 답하는 일화가 있다. 사소하게 보이는 식생활이 곧 신분, 지역, 계층, 세대의 경계를 분명히 새긴다는 지적이다. 시장경제의 침투와 함께 겉으로는 미약해 보이나 시장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여성의 경제력 증진 또한 구체적으로 다뤄진다. 특히 여성 청년 세대가 탈북을 통해 선택한 삶의 방식의 변화,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이 겪는 사회적 시선 등 구조 변동의 세부, 그리고 그에 따른 언어 변화가 연결된다.
북한 주민의 언어를 분석하는 최근 화법은 남북한 사회문화사를 통시적으로 짚는다. 남한이 해방 이후 자본주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빠름-경쟁-성취’ 담론을 화두 삼았다면, 북한의 언어는 그 반대쪽, ‘느림-긴장감-여백’ 속에 미묘한 현실진단을 품는다. 지역 방언·속어·신조어를 통한 내밀한 감정, 직설적 풍자, 타협 또는 저항의 뉘앙스가 번갈아 섞인다. 이는 남한 독자에게 바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낳기도 하지만, 결국 ‘동질-이질’의 이중성에 맞선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왜 북한의 언어가 빈곤과 억압의 맥락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책이 던지는 근원적 물음이다.
부엌, 장터, 뒷골목, 골방 등 일상의 장소별로 관찰되는 언어 사용은 고정된 문법에 갇히지 않는다. 저널리즘적 시선이 특수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말의 힘과 맥락을 추적한다. 감시와 검열, 경제적 불안정이 일상적인 사회에서 언어가 정치적 도구로 쓰이기도 하듯, 유쾌한 농담 한 마디, 혹은 시니컬한 반론도 생존과 저항의 연속 선상에 존재한다. 책은 “맵짠”이라는 언어의 매운맛과 짠맛이 ‘개인적 회복탄력성’의 장치인 동시에, 집단의 전통적 소속감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자료 조사 과정에서는 다른 한편으로, 최근 남-북 국제 학계에서 진행중인 ‘북한 일상 인류학’ 연구 흐름도 보인다. 1990년대 아사(餓死) 대량 발생 이후 시장 경제 흐름이 자리 잡으며, 북한식 ‘생활담론’과 새로운 가족주의가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노인·아동이 각자 다른 언어적 전략을 구사하게 된 배경도 연결된다. 다양한 담론 분석은 이 책의 의의와 호흡한다.
독자입장에서 이 책의 유의미함은 ‘단순 취재나 정보전달을 넘어, 타자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이다. 기자로서 경험상, 북한 외부에서 단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뉴스성 이야기들—핵, 인권, 정치 선전—이 북한 주민의 매일을 정의할 수 없음을 알기에, 본 서적이 제공하는 언어의 구체성과 정서의 결은 남북한의 문화적 간극을 이해하는 밑바탕임에 틀림없다. ‘찰지고 맵짠’ 한마디는 단지 사투리가 아니라, 집단 기억을 살아내는 인간 군상의 존재 방식을 함축한 키워드다.
이 책을 통해 개인들은 삶의 내면 구조, 그리고 자신만의 말과 의식의 지형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우리 모두 좀 더 다정하게, 그러나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