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히트곡이 돌아온다…음원 시장, 리메이크 열풍 ‘새바람’

저녁 8시가 가까워진 서울 홍대 거리, 카메라 뷰파인더로 번쩍이는 간판 아래 모여든 20대 청춘들의 표정에 묘한 설렘이 흐른다. 현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멜로디, 하지만 목소리는 낯설다. 2000년대 초반에 히트한 R&B 발라드 ‘회상’이 최근 신인 아이돌 그룹의 목소리로 다시 울려 퍼진다. 마치 시간이 뒤섞인 풍경 속, 원곡과 리메이크 버전이 혼재한 음원 시장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9월 들어서만 국내 주요 음원차트 상위권에 최소 5곡 이상이 10년~20년 가까이 된 기존 히트곡의 리메이크임이 확인됐다. 연예계와 업계의 목소리는 명쾌하다. “요즘은 유튜브 숏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이거 옛날에 들었던 그 곡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는 현장 반응부터, 음반기획사 관계자의 “검증된 멜로디라 젊은 세대와 옛 노래 팬 모두를 잡을 수 있다”는 설명까지. 실제로 최근 멜론·지니·플로·애플뮤직 등 정규차트 상위에 리메이크 곡이 오르며, 음원 시장에서 새바람이 불고 있음이 실감난다.

밤 헤드폰을 귀에 낀 청소년부터 카페 창가의 30대 직장인까지, 잔잔히 울려 퍼지는 리메이크 곡을 따라 부르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감독 렌즈를 따라가면, 리메이크 열풍 뒤에는 세대교차와 IP(지적재산권) 재생산이란 음지의 흐름도 짙게 깔린다. 2026년 9월,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이 줄줄이 90년대·2000년대 명곡 리바이벌 프로젝트를 공개 중이다. 뉴스룸에서 만난 음악평론가 이태훈 씨는 “과거 명곡의 감성을 현대적인 프로덕션과 스타일로 재해석할 수 있느냐가 흥행의 핵심이다”라고 단언한다. 실제 신인 아티스트와 베테랑 프로듀서가 조를 이뤄, 리메이크 곡을 트렌디하게 재조립하는 과정이 주요 음악방송 콘텐츠의 묘미로도 각광받는다. 보컬의 색채나 편곡의 감도는 새 곡처럼 달라졌지만, ‘추억에 기대는 전략’이란 비판도 동시에 제기된다.

스튜디오 촬영 현장에서 만난 MZ세대 팬들은 리메이크에 대한 이중적 반응을 쏟아놓는다. 한 20대 여성 팬은 “새 목소리로 부르니 마치 다른 곡인 것처럼 신선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바로 옆 남성 팬은 “유명한 곡만 또 부르는 게 너무 식상하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현장 스태프에 따르면، 리메이크 프로젝트는 “신인의 인지도 확보와 동시에 추억 소비층까지 공략하는 계획적 마케팅”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리메이크 곡=음원차트 단골손님’이 공식처럼 굳어지면서, 신곡 창작 의욕이 위축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소속사의 A&R팀 관계자는 “원곡 저작권 소유 IP를 활용하면 비교적 낮은 리스크로 히트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상 현재의 리메이크 붐은 과거 스테디셀러를 재생산하는 동시에, 새 얼굴들을 빠르게 알리는 시장 전략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IT·소셜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리메이크 곡 역주행의 기폭제가 됐다. 유튜브·틱톡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짧은 립싱크 클립’, ‘커버 리액션’ 같은 콘텐츠가 확산되며, 과거 곡에 새로운 무드와 팬덤이 붙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근 한 주간 리메이크가 포함된 쇼츠 영상의 국내 조회수만 3000만 회를 넘어섰다. 음악업계 관계자는 “SNS 바이럴이 곡 인기를 결정하는 비중이 더 커지면서, 과거 유명곡 리메이크를 통한 빠른 인지도 확보가 효율적이다”라고 분석한다. 실제, 리메이크 곡의 도입부나 후렴구가 밈(meme)화되는 건 이제 일반적 광경이다. 공연 현장에서 목격된 ‘떼창’도, 그 곡이 리메이크임을 모르는 MZ세대 청중이 더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가 긍정 일색만은 아니다. 프로듀서 대담 현장에서 신예 작곡가 김지민 씨는 “새로운 음악에 도전할 기회가 줄고, 신인 뮤지션들까지 리메이크 열풍에만 편승하는 분위기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청소년 동아리 합주의 현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가 아는 멜로디에 새로운 사운드, 익숙함 속에서 안전함을 찾으려는 대중–그리고 차별성을 좇으려는 신진 음악인의 갈등이 교차한다. 최근 리메이크곡이 ‘마치 커버곡처럼 가볍게 소비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음악저작권협회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리메이크 음원 등록 건수가 3년 전보다 180% 넘게 증가했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음악 산업의 창작성 저하·아티스트 고유성 약화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현장감 속을 걷다보면, 리메이크 열풍은 과거와 현재의 충돌만큼이나, 음악 시장의 생존전략이란 점도 실감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음반·공연 시장 위축으로 위기감이 커진 기획사들이, 검증된 레퍼토리를 돌려쓰기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중립적 시선으로 현장을 들여다볼 때, 결국 이 바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혹은 더 창의적인 돌파구로 이어질지, 결정적 힌트는 팬덤과 대중 스스로의 미래에 달렸다. 카메라는 다시 번화가 공연장 입구로 돌아간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 그리고 스피커를 넘나드는 세대의 공명. 그 긴 여운이 음원 시장에 어떤 파급을 남길지, 아직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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