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문화재단, AI 국악 크로스오버 공모전 수상작 앨범 발매

경쾌한 새벽 공기가 머물던 2026년 가을, 전주문화재단은 국악과 인공지능의 흥미로운 만남을 세상에 선보였다. 시대와 세상의 소리를 포착해낸 재단의 ‘AI 국악 크로스오버 공모전’은 익숙하지만 미래적인 국악의 결을 새로운 이미징과 음향으로 그려냈다. 한옥 기와 위로 휘돌아오르는 대금의 낮은 저음과, 무대 뒤 살아 숨 쉬는 디지털 신스 웨이브가 어우러진 장면. 이번 공모전에서는 젊은 음악가들과 AI 작곡가가 협업하여, 과거를 증류한 멜로디 위에 미래의 감성을 조심스럽게 얹는 실험에 도전했다.

앨범의 출시는 기존 국악 신(Scene)이 가졌던 경계를 유연하게 흘려보낸다. 공모전 결과물에는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찰나의 스파크 같은 혁신성이 묻어 있다. 예를 들어, 출품작 중 ‘겹겹의 시간’은 피리의 숨소리와 디지털 루프가 경계 없이 맞물려 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이 곡의 초연 현장에서는, 고요 속 진동하는 흙냄새와 전자음의 냉랭함이 관객의 귓속을 동시에 파고들었다. 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울릴 때, 어느 순간에는 인간 연주자의 진동이 우세하다가 이내 알고리즘의 질서정연한 리듬이 파고드는 긴장감도 감지되었다. 무형문화재의 육중함과 신기술이라는 가벼움이 한자리에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 국악의 전통은 생동감을 회복하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IT 프로그래머, 사운드 엔지니어, 그리고 예술평론가까지 각자의 시선으로 AI 크로스오버의 가능성에 질문을 던졌다. 관객석을 순식간에 융합된 미래의 사운드로 채운 AI의 존재는 무대를 낯설지만 매력적으로 바꾸었다. 무대 조명은 미묘하게 온도를 달리해 연주의 흐름에 온전히 맞춰졌다. 은은하게 깔린 잔상들—스크린에 투사된 턴테이블 패턴, AI 데이터의 시각적 파동—은 국악의 시간성에 기하학적 층위를 얹었다.

한편, 앨범 수록곡의 면면은 단순한 신기성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 고유의 장단과 가락, 그리고 현대 음악 언어가 서로를 견제하거나 도약시키는 순간마다 ‘기계적 창의성의 한계’와 ‘인간적 해석의 깊이’가 오롯이 드러난다. 수상작 ‘한양의 꿈을 걷다’에서는 AI가 기초 설계를 했지만, 국악기의 섬세한 음색과 장단의 변주는 인간 연주자의 숨결로 최종 완성됐다. 반대로 ‘신(新)오방색’은 AI의 무작위성이 주도하되, 뮤지션의 순간적 선택이 전통에 새로운 전율을 불어넣는다. 기술과 예술, 과거와 미래 사이 경계를 타고 흐르는 모호한 균형 감각—그것이 앨범 전체를 지배한다.

이와 유사한 시도들은 최근 영국, 미국 등에서도 진행됐으나 전주문화재단의 프로젝트는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지킨 점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세계 각지에서 AI-기반 크로스오버가 빠르게 일상화하며 상업적 실험을 거듭하는 가운데, 전주는 전통의 심장부에서 새로운 울림을 시도한다. 이는, 국악의 현재와 미래, 실험과 정통성이 한 뼘의 거리에 놓여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전통이 박제화되지 않고 현대 관객의 감각에 맞게 호흡한다는 행위 자체가 예술의 본질임을 일깨운다.

일각에서는 AI 도입이 예술의 정체성, 나아가 국악 고유의 뿌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AI가 창출하는 조합이 때로는 표피적이거나, 전통의 서정성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의 발표는 AI라는 도구가 결국 인간 중심의 해석과 손끝의 섬세함을 요구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국악의 정체성은 지키면서 오히려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겹겹의 소리 결 속에서, 전통적 규범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살아 움직인다.

재단 관계자는 “AI와 인간 예술가의 조우는 미래를 향한 창조적 실험장의 첫걸음”이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앞으로 지역과 세대를 잇는 상상력의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음악의 진화는 시대의 공기와 청중의 호흡, 그리고 크리에이터의 꿈에서 시작된다. 전주 한복판을 가로질렀던 그 가을밤, 새로운 가능성의 소리가 전국의 스피커를 타고 퍼져간다. 물리적 거리, 시간의 벽을 넘어 국악은 다시 한번 살아있는 언어임을 증명한다.

— 서아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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