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법안 ’32건 방치’…책임 외면한 국회의 현주소
지난 수년간 사회적 충격을 불러온 가정폭력 사망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실질적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가정폭력 참극 때마다 호통친 국회…보호법안 32건은 방치’라는 기사는 문제의 본질이 법 제도 미비나 무관심이 아닌, 이미 마련되어 제출된 관련 법안들이 수십 건이나 장기간 심의 없이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실상 국회는 매 참사의 여파로 호통과 약속을 쏟아내지만, 기사 조사 결과 32건의 보호 강화 법안은 계류 중이거나 임기 만료로 소멸위기에 놓여있다. 최근 5년 이내 주요 참극 이후 여야 지도부가 ‘책임 있는 입법’을 다짐했지만, 위원회 심사 일정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경우가 다수이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의 호소는 번번이 법안 통과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현장에 즉각적 대응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선제적 보호조치와 지원책이 규범적으로 요구된다. 현행 법 체계상 임시 보호명령이나 접근금지 조치 등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현장 경찰의 소극적 대처, 보호시설 연계 부족, 피해자 개인정보 노출, 2차 피해 위험 등 구조적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 신속 대응 시스템과 함께, 심리·법률·주거 등 통합 지원체계가 전혀 현장에 적용되지 않는 현실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례를 보면, 피해자가 스스로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해야만 보호명령이 나오는 허점, 가해자가 보호시설 위치를 파악해 재범에 이를 수 있다는 위험 등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32건의 가정폭력 관련 보호·지원 법안들은 ‘피해자 신변보호 강화’, ‘피해자 진술권 확대’, ‘피해자 통합지원센터 설립’, ‘전자감독 등 특수조치’ 등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정치권은 관련 참극이 발생할 때마다 특별위원회 구성, 현장 점검 등을 약속했으나, 상임위원회에서 아젠다(의제) 선정 또는 정쟁 우선순위 조정 때문에 본회의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법제사법위원회 뿐만 아니라 여성가족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등에서도 상임위 안건조정 절차가 반복적으로 미뤄졌음이 알려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실효적 대책’을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결론 내린 사례는 드물고, 여야 간 입장 차이도 실상 크지 않다.
관련 논의가 장기간 답보되는 배경에는 ‘사회적 합의 부재’ 와 ‘실효성 논란’ 및 ‘정치 이슈화에 대한 우려’가 중첩되어 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반가정폭력단체의 우려, 보호명령 남용 가능성에 관한 법조계 의견, 지방행정 현장에서의 적용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가정 내 폭력이 사회 전체로 파급되는 구조, 피해자가 무력하게 참극에 노출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입법부의 책임 방기라는 시민사회의 비판은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사례를 참조하면, 신속 보호명령과 피해자 안전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이 단기간 내통과되어 효율적으로 집행된 전례가 다수이며, 비교법적으로도 우리 국회가 보여준 지체와 무관심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평가된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가정폭력 관련 한목소리를 내왔지만, ‘정치적 이목’이나 ‘현안 부담’을 이유로 실질적 법안 심사를 미루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예산 및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지방정부 책임 전가’, ‘사업예산 축소’ 등 실제 현장 반영은 미진하다. 피해자 단체가 반복적으로 국회 앞 시위를 열고, 국민청원 등 각종 여론이 쏟아졌으나, 기본적인 법적 안전망부터 마련하지 못한 체계 부재가 지속되고 있다.
사회구성원 전체가 이 문제를 단순한 가족 내 사안으로 여기는 관성에서 벗어나, 법적·제도적으로 적극대응할 수 있는 일관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회의 역할은 피해자 보호와 시민 안전을 보장하는 입법권자로서 사회적 책임과 신뢰를 실천하는 데 있다. 현재 구조적 한계와 현장 대응의 미비, 입법 지연이 반복된다면, 참극 피해의 악순환은 불가피하다. 법안 계류라는 이름 아래 실체적 논의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입법 무책임’의 단면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실질적 점검과 신속한 법제화, 종합적 지원체계의 현실화가 현재 입법부에 남겨진 책무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 김도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