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박스오피스 17일째 정점…극장 현장에 남은 발자국
10월 17일, 정오 무렵 CGV 용산 아이파크몰 상영관 복도. 관객들이 쏟아져 나온다. 검은 외투에 모자를 눌러쓴 두 청년이 ‘암살자(들)’ 엔딩 크레딧을 마지막까지 바라보고 있다. 복도 벽면 포스터엔 ’17일 연속 1위’라는 스티커가 번들거린다. 현장에서 만난 관객 이지민(29, 회사원) 씨는 “요즘 믿고 보는 배우 조현석, 김윤아가 같은 화면에서 폭발한 느낌”이라며 숨을 가누지 못했다. 바로 맞은편 매표기에는 예매 대기줄이 이어진다. 저녁 프라임타임 대부분 회차가 이미 마감. 기자의 손에 들린 카메라엔, 대기줄을 확인하던 관객들의 부리부리한 눈빛이 그대로 박힌다.
‘암살자(들)’가 여전히 뜨겁다. 개봉 17일째 되는 날까지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켜내며, 오스카 시즌 한복판에서도 흔들림 없는 패기를 증명했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누적 관객 수는 482만 명을 돌파했다. 팬데믹 이후 슬럼프를 겪었던 한국영화 극장가에 ‘가을 대작’이 예고한 간만의 진경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 점유율이 45%를 넘어섰고, 평일임에도 좌석점유율이 60%에 육박한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매일 오전 7시 파란불이 켜지고 있다.
거리엔 ‘암살자(들)’ 광고 현수막이 휘날리고, 트위터·인스타그램엔 #암살자챌린지 해시태그가 연일 상위권이다. 관객 반응도 흥미롭다. 젊은 층은 “마블 영화를 넘어선 액션 쾌감”이라며, 중장년 관객도 “한국형 느와르의 귀환”이라고 평한다. 기술적으로는 실제 무술감독 출신의 배우 조현석의 날카로운 액션 시퀀스와, 저예산 촬영감독들이 야간 로케이션에서 살렸다는 로우(raw)한 현장감이 압권. 스테디캠으로 잡힌 숨가쁜 추격, 역광에 비친 주인공 실루엣의 실루엣, 곳곳에 삽입된 정적인 롱테이크가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현장에서 바라본 감상 그대로, 이 영화는 빠르고 직설적인 장면으로 관객을 질주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주목할 만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암살자(들)’가 어떻게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었느냐다. 외화 블록버스터의 부진, 시리즈 영화의 피로감, 그리고 K-액션에 목말랐던 관객 심리가 삼박자로 작용했다. 최근 박스오피스 2위 미국 애니메이션 ‘듄 포스: 어웨이크닝’의 관객 점유율은 20%대 초반에 그치며, 사실상 평일엔 논경쟁 구도다. 반면, 한국영화 흥행 지형의 변화는 현장에 분명한 진동을 남겼다. 올해 들어 성적을 내지 못했던 중저예산 범죄·스릴러 영화와 달리, 이 작품만큼은 젊은 관객뿐 아니라 가족 단위까지 흡수하며 마케팅 역량을 드러냈다.
배급사는 현장 경험 기반의 마케팅과 온라인 바이럴을 두 축으로 삼았다. 서울 시내 곳곳 스크린X 특별관 오픈, 배우 라이브 토크, SNS 챌린지 이벤트 등 다각적 접근이 입소문을 키웠다. 여기에, 본 기자가 체험한 시네마틱 무드: 상영 직전 직접 배우가 들고 나와 관객에게 깜짝 인사를 하는 ‘게릴라 무대인사’는 방청객들의 긴장과 흥분을 현장에서 고스란히 끌어올렸다. 언론 시사회에서 언급된 바 있듯, “기술진과 배우진 모두가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러야 했던 순간”의 장면들이 SNS와 매체, 유튜브 숏츠로 재생산된다.
일각에선 “액션 일변도의 단순한 서사”라는 비판과 “20대 남성 관객 쏠림” 의 문제도 제기된다. 그러나,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찾은 관객, 여성 관객의 유입까지 넓어지면서 입소문 확장성은 오히려 커지는 분위기다. 기자가 현장서 만난 관객들 역시 ‘액션’을 매개로 삼되, 인간관계의 내밀한 변곡점, 불확실한 사회에서의 ‘생존’ 테마를 언급했다. 영화가 현장을 관통하는 강렬한 리얼리즘과 동시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포지션, 신경을 당기는 사운드 디자인이 완벽히 합을 이룬다.
업계 관계자는 “극장가가 연휴 이후 급격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지만, 오랜만에 한국영화가 관객몰이 중심축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전한다. 해외 OTT 작품들과의 콘텐츠 전쟁, 극장-스트리밍 간 경계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극장 체험이 다시 ‘행사’가 되고 있다는 반가운 신호다. 본 기자가 포착한, 바닥에 흩어진 팝콘과 조마조마한 눈길들, 그리고 난감하게 웃는 커플들의 모습까지. 이 모든 것이 현장이 가진 에너지다.
흥행 질주의 연속선상에서, ‘암살자(들)’는 한국영화 스릴러 장르의 지형도를 새로 그렸다. 저예산 블록버스터 실험, 생생한 현장감, SNS 시대의 바이럴 마케팅. 그 자체로 2026 가을의 극장가를 관통하는 강렬한 풍경이다. 극장은 여전히 살아 있다. 스크린 속 질주와, 현장의 맥박이 일치하는 순간, 한국영화에 다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