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잃는 아이들: 불공정한 독서 환경의 그림자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는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새로운 위기, 바로 다문화 아이들의 ‘읽기 권리’ 박탈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도서관의 절대적 부재, 책 구매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서가의 경계 밖에 놓인 언어적 소외까지. 현재 우리 교육복지의 사각지대에는 제대로 된 책 한 권, 빌릴 기회조차 없이 성장하는 수만 명의 아이들이 있다.
기사에서는 직접 만난 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 이야기를 통해, 그 집의 책장엔 동화책 대신 교과서와 광고 전단지만이 잠자고 있었다. 부모 중 한 명은 이주노동자로, 낮은 임금에 맞춰 생활비 역시 꾸려나가기도 버겁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에 익숙해질 여력이 없는 환경, 그 빈 공간은 고스란히 미래의 불평등으로 증폭된다. 서울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김은영 교수는 “지난 10년간 독서 환경이 계층화됐다. 특히 다문화 가정일수록 책을 접하는 기회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현실을 지적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6년 전국 다문화 가정 청소년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도 심각성을 보여준다. 일반 가정 청소년의 79.8%가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경험이 있다’고 답한 데 반해, 다문화 가정의 경우 그 비율이 43.6%로 절반에 못 미쳤다. 특히 도서관까지 이동시간이 평균 45분에 달하는 저소득 밀집지역의 경우, 사실상 접근성이 제로에 가까웠다. 복지센터나 공공도서관 등의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는 논리는 현장에서 반복되지만, 행정의 우선순위에는 인근 개발 사업이나 기타 정치적 현안들이 밀려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책을 매개로 한 언어 능력 및 사고력 개발이 장기적으로 학업성취뿐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됨을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특히 다문화·저소득 가정의 아동이 독서 환경에 진입하지 못하면, 10대에 이르러 학습격차와 소통력 저하, 심지어 사회적 고립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 교사나 사회복지사는 “학교에서조차 과제를 수행하고 발표하는 데 어려움이 일상적”이라며, “읽고 쓸 기회가 줄어들면 결국 자신감과 사회적 관계도 함께 무너진다”고 전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 문제를 고착화시키고 있을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역 간 인프라 불균형이다. 도시내 중심가에 비해 외곽의 다문화·저소득 밀집지대는 도서관, 작은 도서관, 문화센터 등 문화 접근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가정 내 책장에는 필수적인 교재조차 마련하기 힘든 경우가 많으며, 정부 차원의 자치사업도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전국 250여 공공도서관 중 다문화 지원 전담 인력을 둔 곳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근간에는 ‘도서관에 가려면 최소한 교통비와 시간, 부모의 인식이 맞물린다’는 성장 환경의 구조적 제약이 자리잡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6년 기준 국내 10대 아동의 월별 개인 도서 구매액은 12,600원으로 8년 전보다 35%가량 줄었다. 다문화 가정은 이마저도 평균 3,900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참고서나 학습지, 어쩌다 부모가 번역해준 한두 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 책 읽기가 ‘취미’가 아니라 ‘사치’가 되어버린 슬픈 현실이다. 인근 책방 수 또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0년대 초반 이후 지방 소도시의 ‘서점 없는 마을’이 속출하고 있다. 문화적 기반 없이 성장한 세대는 어쩔 수 없이 정보 습득, 자기표현, 미래 역량에서 일찌감치 도태될 위험에 노출된다.
다문화 아동이 처한 또다른 장벽은 ‘언어 장벽’이다. 가정에서 통용되는 모국어와 학교에서 쓰는 한국어, 그리고 방과 후 노출되는 인터넷 언어가 서로 엇갈리는 경우, 아동 스스로 정체성과 관계 맺기에서 혼란을 겪는다. 이와 관련, 일부 공공도서관은 모국어 동화책 코너, 다언어 동아리, 다문화 문화교실을 운영하려 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에 더해 ‘이주민 환영’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현장까지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학교와 지역사회, 부모와 지자체의 긴밀한 협력 없이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최근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찾아가는 작은 도서관’, ‘이동형 독서버스’ 시범사업으로 접근성을 높이고자 했으나 규모가 한정적이다. 그 외에도 다국어 낭독 서비스, 디지털 북큐레이션 등 IT를 활용한 해결책이 제안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프라인 접근 자체의 한계, 부모 세대의 IT 활용 역량 부족이라는 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빈번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문제는 ‘책 읽기의 기회’가 개인의 선택 이전에, 사회가 제공해야 할 공공재임을 환기시킨다.
사회는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모두가 책을 읽을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시기다. 정책적 논의에 앞서 지역 기반 도서 전달 체계 확립, 다문화 아동 전용 프로그램 확대, 커뮤니티 단위의 자원 봉사 등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회의 시선이 ‘불쌍한 아이들’이라는 시혜적 태도에서, ‘우리 안의 미래 시민’으로의 인식 전환으로 나아가야 한다. 읽기의 문턱을 낮춰 모두가 책 가까이 설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속적 관심과 공적 노력이 절실하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