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과 전쟁’ 발언, 헌정 위기 프레임의 구조와 파장

이재명 대통령이 ‘일부 정치세력의 계엄을 위한 전쟁 유도’ 가능성을 공식 석상에서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방을 넘어 국가의 존립 근거와 헌정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전례 없는 발언이다. 현직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반대편에 있는 세력을 ‘전쟁 유도’라는, 사실상의 반국가 행위 프레임에 가둔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발언이 던진 파장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단어의 충격에서 벗어나, 그 이면에 작동하는 권력의 역학과 구조적 문제를 냉정하게 해부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진공상태에서 나오지 않았다. 최근 서해상에서 발생한 수차례의 국지적 군사 충돌과 북한의 연이은 고강도 미사일 도발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상태다. 이러한 안보 위기 국면에서 야권은 연일 대북 선제타격론, 전술핵 재배치 등 초강경 대응을 주문하며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굴종 외교’라 비판해왔다.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야권의 강경론이 단순한 정책 대안 제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여 비상사태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계엄 선포를 통해 헌정 질서를 중단시키려는 위험천만한 시도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안보 이슈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이 정책 경쟁의 차원을 넘어, ‘체제 수호’와 ‘체제 전복’이라는 극단적 구도로 비화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이 발언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넘어, 이러한 주장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공론화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이는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위로 분석된다. 첫째, 안보 위기를 정국 주도권 확보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다. ‘전쟁 유도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야권의 모든 대북 강경 발언을 잠재적 이적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야권의 정책적 공세을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둘째,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고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는 국면 전환용 카드다. 각종 민생 현안과 국정 운영 난맥상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헌정 수호’라는 거대 담론을 통해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 결국 대통령의 발언은 안보라는 절대 가치를 정치적 자산으로 전유하고, 이를 통해 반대 세력을 헌정의 틀 밖으로 밀어내려는 위험한 시도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프레임 설정은 야권에게는 극도로 까다로운 딜레마를 안겨준다. 대통령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대북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경우, ‘전쟁 유도 세력’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안보 이슈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 ‘안보 무능’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지지층의 이탈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야권의 정책적 선택지를 봉쇄하는 ‘정치적 계엄’ 상태를 조성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정의 한 축인 야당을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가 아닌 ‘박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의회 민주주의의 작동은 사실상 멈춰서게 된다. 이는 국정의 완전한 마비와 사회 전체의 극단적 분열이라는 파국적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군과 정보기관 등 국가 안보의 핵심 기구들이 이 정쟁의 한복판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전쟁 유도’의 근거로 특정 첩보나 정보를 암시할 경우, 군과 정보기관은 그 진위와 해석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는 국가 안보 기구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군 통수권자의 발언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압박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군의 기강과 사기는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 안보가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되는 순간, 국가 안보 시스템 전체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립의 근원은 결국 한국 사회에 고질적으로 내재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의 정치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권력을 획득한 쪽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반대편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제로섬 게임이 반복되면서,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 아닌 적을 섬멸하는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계엄’과 ‘전쟁’이라는 단어가 여과 없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위험 신호다. 이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발언 실수를 넘어,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이 심각한 내상을 입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징후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정치가 스스로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어섰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안보를 둘러싼 건전한 정책 논쟁은 실종되고, ‘애국’과 ‘이적’이라는 이분법적 낙인찍기만이 난무하는 정치의 사막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안보 리스크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의 몫으로 돌아온다. 여야 모두 이 파국적인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할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대결의 언어를 거두고, 헌정 질서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정치적 신뢰를 복원하지 않는 한, ‘계엄’이라는 망령은 언제든 현실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성을 직시해야 할 때다.

— 유상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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