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과 쿠데타 주역, 단죄의 저울은 왜 기울었나

“군사 쿠데타는 나치 전범 처리하듯 해야 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이 서슬 퍼런 문장은 40여 년 묵은 대한민국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외과용 메스와 같다.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이는 헌정 질서를 유린한 반역자들을 향한 가장 명확한 법적, 역사적 좌표 설정 요구이자, 과거 청산의 실패가 현재의 우리를 어떻게 좀먹고 있는가에 대한 통렬한 진단서다. 왜 우리는 인류의 이름으로 나치를 단죄했던 뉘른베르크의 원칙을, 총칼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시민을 학살한 자들에게는 온전히 적용하지 못했는가? 이 고통스러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의 장막을 걷어내고, 진실 추적의 타임라인을 한 걸음씩 다시 밟아야만 한다.

**[추적 타임라인: 뒤틀린 정의와 거래된 원칙의 연대기]**

* **1979년 12월 12일:** 어둠을 틈타 총성이 울렸다. 전두환과 신군부 핵심세력은 군 통수계통을 무시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연행, 권력의 심장부를 강탈했다. 명백한 군사반란(Military Rebellion), 즉 쿠데타였다.
*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을 체포하고, 국회를 폐쇄하며 신군부는 권력을 완전히 찬탈했다. 그들의 권력욕이 빚어낸 피의 정점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이 있었다. 시민을 향한 군의 총구는 단순한 과잉 진압이 아닌, 쿠데타를 완성하기 위한 계획된 학살 행위(Homicide for Purpose of Insurrection)였다.
* **1980년대 ~ 1993년:**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 아래, 12.12와 5.18은 ‘혼란을 수습한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됐다. 진실은 권력의 서슬 아래 깊이 묻혔고, 가해자들은 승리자이자 통치자로 군림했다.
* **1993년 ~ 1994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 후, 역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고소·고발이 빗발쳤다. 그러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치국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한 희대의 논리를 내세우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힘의 논리’가 ‘법의 논리’를 압도한, 대한민국 사법 역사의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 **1995년:** 국민적 저항과 역사의 부름 앞에 마침내 정치권이 움직였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며 반란죄의 공소시효가 정지됐고, 검찰은 마지못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두환에게 무기징역, 노태우에게 징역 17년을 확정했다. 내란 및 반란 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의 혐의가 모두 인정되며 역사의 심판이 내려지는 듯했다.
* **1997년 12월 22일:** 그러나 완성 직전의 정의는 다시 한번 뒤틀렸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의 합의 하에 ‘국민 대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두 사람을 특별사면했다. 단죄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치적 거래를 통해 역사의 면죄부가 남발된 것이다.

이 타임라인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이는 정의가 어떻게 세워지고, 또 어떻게 정치적 야합 앞에 무너져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비리의 생생한 증거다. 대통령의 ‘나치 전범’ 발언이 겨냥하는 지점은 바로 1997년 12월 22일, 단죄의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스스로 쉼표를 찍어버린 역사의 변곡점이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단죄한 것은 ‘평화에 대한 죄’와 ‘인도에 반한 죄’였다. 이는 국내법을 넘어선 인류 보편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았기에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대법원 역시 12.12와 5.18을 헌정 질서 파괴 행위로 규정하며 그에 준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지만, 정치권은 그 판결의 무게를 ‘화합’이라는 가벼운 포장지로 덮어버렸다.

이 잘못된 사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구조적 폐해는 암세포처럼 번져나갔다. 첫째, ‘법치주의의 암묵적 붕괴’를 초래했다. 헌정 파괴라는 최악의 범죄조차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면될 수 있다면, 그보다 가벼운 권력형 비리나 부패는 얼마나 쉽게 용인될 수 있겠는가.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재벌 총수들이 실형을 받고도 손쉽게 사면되는 관행, 전직 대통령들이 부패 혐의로 법정에 설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 보복’ 프레임과 ‘통합’을 명분으로 한 사면론은 모두 1997년의 잘못된 선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원칙’보다 ‘편의’가, ‘정의’보다 ‘거래’가 우선할 수 있다는 끔찍한 선례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 ‘역사 왜곡의 빌미’를 제공했다. 독일이 나치 부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90대 아우슈비츠 경비병까지 법정에 세우는 이유는 단순한 보복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기록하고 단죄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의 방부제를 만드는 신성한 과정이다. 우리는 그 방부제를 스스로 내던졌다. 그 결과, 5.18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 왜곡하고 쿠데타를 ‘결단’이라 미화하는 목소리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힘을 얻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마저 정치적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 진실 자체를 상대적인 것으로 취급하게 만드는 토양을 제공했다. 진실이 힘의 논리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신은 교육 현장과 미디어 생태계까지 오염시켰다.

셋째,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 실패’라는 유산을 남겼다. 쿠데타의 핵심은 군이 국민과 헌법 위에 서려는 오만이다. 이를 철저히 단죄하고 군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외과적으로 도려냈어야 했지만, 어설픈 봉합은 군 내부에 ‘결국 권력을 잡으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후에도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사태처럼 군의 정치 개입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과거사에 대한 불철저한 단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를 향한 외침이지만, 그 칼날은 현재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진정으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구현하고 있는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거대한 비리 앞에서 검찰과 법원은 얼마나 당당하게 정의의 저울추를 들고 있는가? ‘국민 통합’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또다시 진실과 정의를 덮는 편리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가?

12.12 쿠데타 주역들을 나치 전범처럼 다루지 못한 역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정의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원칙 없는 통합은 모래성과 같은 거짓된 평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망령처럼 떠돌며 현재를 붙잡고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라도 우리는 뒤틀린 역사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 군사반란과 내란, 집단학살과 같은 반헌법적,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사면이나 복권이 불가능하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나치 전범을 단죄한 인류의 지성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유일한 길이며, 피로 세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의무다. 다시는 총칼이 헌법을 유린하는 비극이 없으리라 장담하기 위해, 우리는 1997년의 정치적 사면이 아니라 1997년의 역사적 대법원 판결을 대한민국의 최종 기록으로 기억하고 새겨야 한다.

— 강서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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