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선언’, 정교분리 원칙은 시험대에 올랐다
이 대통령이 종교재단의 정치 개입을 ‘헌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를 ‘헌법 수호 의지의 표명’이라 설명했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국가 운영의 근간인 헌법 질서를 재확인하고, 특정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명확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발언으로 한국 사회의 오랜 논쟁인 ‘정교분리(政敎分離)’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헌법 제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한다. 이는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되, 종교가 정치 영역에 개입하여 국가의 중립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 헌법 조항에 대한 원론적이고 강력한 재확인이다. 발언의 배경에는 특정 종교단체의 조직적 움직임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 종교단체 중 하나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한종협)’가 정부의 ‘포용적 가족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반성경적, 반사회적 법안’이라 규정하고, 내년 총선에서 해당 법안 찬성 의원에 대한 낙선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종협의 선언은 단순한 정책 비판을 넘어, 신도들의 투표권 행사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정치 개입’의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발언을 엄호하며 ‘민주주의의 방어’라는 논리를 편다. 특정 종교가 조직력과 자금력을 동원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론을 왜곡하고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은 존중하지만, 그 역할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나 반대로 이어져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이는 헌법이 규정한 선을 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이익집단의 압력으로부터 정치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이다.
반면 종교계와 야권의 입장은 다르다. 한종협은 즉각 성명을 내고 “정부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우려 표명은 종교의 사회적 책무”라며 “이를 정치 개입으로 매도하는 것은 종교 탄압이자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특정 후보나 정당의 유불리를 떠나, 신앙적 가르침에 따른 도덕적·윤리적 판단의 결과물이라고 항변한다. 제1야당은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이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비판의 수위를 조절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거대 종교단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정교분리에 동의하지만, 종교계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국이다.
결국 핵심 쟁점은 ‘정치 개입’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는 법리적으로도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사안이다. 과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여러 차례 관련 판결을 내놓았다. 판례를 종합하면, 목회자가 설교 중에 특정 후보나 정당의 이름을 거론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하거나,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행위까지 모두 불법적인 정치 개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한종협의 ‘낙선 운동’ 선언이 이 경계선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가 향후 법적·정치적 공방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고민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존슨 수정안(Johnson Amendment)’을 통해 비영리단체(종교단체 포함)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으나, 이 조항의 폐지 또는 완화를 둘러싼 논쟁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라이시테(Laïcité)’라는 강력한 세속주의 원칙 아래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한다. 반면 독일은 국가가 특정 교단에 재정 지원을 하는 등 협력적 관계를 유지한다. 각국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정교분리의 모델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국 사회가 어떤 모델을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논쟁의 종결이 아닌 시작이다. 정부는 헌법 원칙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종교계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방패 삼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은 양측의 눈치를 보며 유불리를 따질 수밖에 없다. 이 갈등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국의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이 던진 ‘정교분리’라는 화두가 한국 사회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해묵은 논쟁은 이제 사법부의 판단과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두 가지 시험대 위에 올랐다.
— 박희정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