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핵 동업’ 제안,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인가
대통령의 발언이 한미 동맹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한국에 우라늄 농축과 5대5 지분 동업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에피소드를 넘어, 한국의 안보 노선과 동맹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팩트는 명확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제안은 기존 한미 관계의 모든 프로토콜을 무시하는 파격 그 자체다. 1974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엄격히 금지한다.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비확산 정책의 핵심 기조였다. 트럼프의 제안은 이 50년 묵은 족쇄를 미국 대통령 스스로 풀 수 있다는 신호였다. ‘비즈니스맨’ 트럼프의 거래적 사고방식이 동맹 관계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이 제안은 한국에게 ‘독이 든 성배’와 같다. 표면적으로는 핵 주권 확보의 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독자적 핵 잠재력 확보는 매력적인 카드다. 국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자체 핵무장론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기술력과 자본을 갖춘 한국이 농축 시설을 보유하게 되면, 유사시 핵무기 개발까지의 시간은 극적으로 단축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면의 리스크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다. 첫째, 한미 동맹의 와해 가능성이다. 트럼프 개인의 제안일 뿐, 미 주류 외교가의 동의를 얻은 사안이 아니다.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한국은 비확산 체제를 위협하는 ‘불량 국가’로 낙인찍힐 수 있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보장은 즉시 폐기될 것이며,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현실화될 것이다. 70년간 한국 안보의 근간이었던 시스템이 뿌리부터 흔들린다.
둘째, 국제적 고립과 경제 제재다. 한국이 농축을 시작하는 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뒤따를 것이다.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의 모범생이었던 한국이 북한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국제 제재의 파도를 견딜 수 없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모든 주력 산업이 치명타를 입는다. 안보를 위해 선택한 길이 경제적 자멸로 이어지는 역설이다.
셋째,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이다. 한국의 핵 잠재력 보유는 즉시 일본의 핵무장 논의에 불을 붙일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역내 군사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핵 대리 전장으로 변모할 위험이 크다. 안보 강화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안보 불안의 시대를 여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왜 지금 이 시점에 트럼프의 제안을 공개했는가. 몇 가지 정치적 맥락을 짚을 수 있다. 우선, 현 미국 행정부를 향한 압박용 카드일 수 있다. 확장억제 강화 등 동맹 현안에 대해 미국의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끌어내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이런 제안도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한국의 전략적 가치와 잠재적 선택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적 포석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안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다. 동시에 과거 정부가 왜 이 ‘달콤한 유혹’을 거절했는지에 대한 명분을 쌓으며, 현 정부의 안보 노선이 현실적이고 안정적임을 강조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제안에 대한 평가를 넘어, 미래의 선택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이다. 트럼프의 제안은 비록 극단적이었지만, 한미 동맹이 더 이상 성역이 아니며, 언제든 거래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줬다. ‘미국 우선주의’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과제는 명확하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되, 맹목적인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자적인 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재래식 무기 체계의 첨단화를 통해 북한의 위협에 대한 확실한 억제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동시에 NPT 체제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원자력 기술의 평화적 이용 권한을 최대한 확보하며 잠재력을 키워나가는 실리 외교가 필요하다. ‘뜨거운 감자’인 핵무장론에 휩쓸리기보다,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사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트럼프의 제안은 위험했지만, 한국 외교안보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이제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 박희정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