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혁신의 길목에서—나경원 전 의원 발언이 던진 세 가지 과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 당은 사교클럽이 됐고, 여당과 잘 싸우는 게 쇄신이다”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 보수정당이 직면한 위기 진단이자, 스스로에 대한 ‘쇄신’의 필요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김기현 지도부 주도의 개혁 드라이브가 미진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크라이나 사태, 미국 대선 등 외생 변수가 국내 정세에 영향을 주는 현 시점에서, 한국 보수정당이 보여준 정치 리더십 부재와 현안 대응의 미흡함은 보수 진영 전체에 만성적인 위기의식으로 확산된다.
정치권의 ‘사교클럽화’ 현상은 집권 여당뿐 아니라 야권 진영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문제다. 미국의 공화당이 트럼프 이후 ‘친목 집단’으로, 즉 파벌의 자기확장 혹은 타협에만 함몰돼 정책 대응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나 전 의원의 주장은 보수 정당 내부의 견제와 균형, 정책 수정 과정의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국내외 정치 환경을 종합적으로 보더라도, 정당 본연의 임무인 ‘공적인 이해관계의 중재’가 약화될 때, 당은 민심으로부터 멀어진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서 보수 정당이 갖는 국정 운영의 중추적 위상까지 고려하면, 이 같은 자기비판은 단순한 내부기싸움의 산물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의지 표명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드러난 두 번째 쟁점은 국민의힘이 ‘비전의 공공성’을 회복할 필요성이다. 나 전 의원은 “쇄신이란 다른 당과 잘 싸우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민 사회와의 소통을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직설한다. 최근 미국 공화당이 이민, 기후변화, 테크 혁신과 같은 초당적 의제를 선점하려 애쓰는 것과 달리, 한국 보수는 대중적 의제 설정과 미래담론의 창출에 애를 먹고 있다.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 재편, 미국 대선 등 외부 이벤트에 흔들리는 안보·산업정책 상황에서, 보수 진영의 정책 역량 부족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미국 민주당이 의제 다양성, 사회적 리더십, 국제 협력 등 확장 전략을 추진하면서 지지층을 넓혀가는 사례에 주목한다. 한국에서도 정당 쇄신 논쟁은 단순히 인물·세대 교체 여부를 넘어 의제 구성 능력, 정책 실현 역량, 글로벌 협력성 등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세 번째 쟁점은 ‘조직문화의 혁신 부재’다. 나 전 의원은 당 조직이 “개인의 친목, 인맥 중심의 내부 문화”로 흘러가면서 공론이 실종되고 소수의 목소리만 반복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최근 수년간 글로벌 기업, 정당, 시민사회 모두에서 ‘개방성’, ‘투명성’, ‘평등한 목소리 확장’이 키워드로 부상했다. 미국·유럽의 주요 정치 연구기관들은 정당 내부 민주주의가 대중성과 지속성을 담보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적쇄신만으로는 변화에 충분치 않다고 진단한다. 국민의힘 당내에서 신진 세력이나 정책전문가 그룹이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 밀실정치와 불투명한 의사결정이 한국 정치의 뿌리 깊은 문제임을 감안할 때, 이번 발언은 변화의 시급성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차기 대권주자들을 둘러싼 내부 경쟁, 위성정당 논란, 경제위기 대응 실패에 대한 불신 등은 보수 진영의 “사교클럽화”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지점이다. 집단의 정체성 혼란, 정책 무기력의 고착화는 지지층 이탈 뿐 아니라 전체적 정치시스템의 기능 저하로 연결된다. 미국 공화당의 전략과 최근 유럽 보수정당의 변화를 비교할 때, 혁신적 정책 어젠다 도입, 외부와의 적극적 네트워킹, 디지털 전략 확장 등이 긴요하다. 나경원 전 의원의 진단은 단순한 ‘퇴진론’이나 ‘지도부 비판’을 넘어서 보수 정치 전체에 ‘공공성 강화’, ‘민주적 혁신’, ‘의제주도 역량’의 과제를 던진 셈이다.
결론적으로, 정치적 문법이 표류하거나 정책적 리더십이 약화된 상황에서 “쇄신”이란 슬로건이 공허해질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와 지정학의 격변, 거버넌스 모델의 다변화 국면에서, 한국 보수정당이 직면한 현실은 단기적 인물 교체뿐 아니라 구조적 혁신, 정책 경쟁력 회복이 절실하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미국·유럽의 경험은 성공적인 정치 쇄신이 집단의 문화, 정책 어젠다, 대외 협력 전략의 동시적 진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교클럽’이라는 자조적 한탄이 아닌, 진정한 공공성과 혁신 경쟁의 시작이 될 때만 시민의 신뢰와 사회적 책임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이한나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