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예외 없는 ‘반도체특별법’ 국회 통과, 산업계와 노동 현실 사이 균형의 숙제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결국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의 부재였다. 지난 수년간 우리 산업계, 특히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경쟁 심화 속 인력 확보와 생산 효율성 유지를 위해 유연한 노동시간제를 요구해왔다. 이번 입법 과정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예외 허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강한 목소리를 냈으나, 정치권의 합의는 예상과 달리 노동시간 규제의 유지 쪽으로 기울었다. 이는 한편으론 국내 노동시장 보호 기조를 유지하려는 정부와 정치권, 특히 노동계와 중도 진보 성향 지지층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산자위에서 소관법이 통과되는 과정과 캐치프레이즈는 분명했다. ‘지원’은 늘리고 ‘규제’는 줄인다는 기조 속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조항은 확대됐다. 세제 감면, 인허가 절차 신속화, 인재 양성 등에서 상당한 전향적 조치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여야 모두가 신경 썼다. 그러나 주 52시간제 예외에 관한 법조항 결여는 업계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글로벌입지 측면에서도 중대한 시그널을 던진다.

미국, 대만 등 주요 반도체 생산국과의 정책 비교가 불가피하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CHIPS Act’를 추진하면서도 노동 규제가 기업 경쟁력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각종 유연 근로제와 특별 인력운용제도를 채택해왔다. 대만 역시 산업 특성상 탄력근로제, 연속 생산체계 내 예외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이들 국가는 첨단 제조 산업 내 일시적 노동집약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공정 특성을 정책적으로 인정하고, 일정 기간 근로자들과의 협의, 보상 등의 절차를 통해 유연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고민할 점은 산업계 요구와 노동권 보호라는 사회적 합의점 찾기다. 산자위를 비롯한 이번 법안 심사 과정에서도 이른바 ‘장시간 노동의 정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면, 이 법은 오히려 산업경쟁력 강화를 앞세워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유연책이 포함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노동시장의 기본 체질, 주52시간제가 안착되기까지의 긴 사회적 투쟁과 노사갈등의 맥락을 단순히 기술 산업 경쟁력 논리로 치환하기는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시기에 맞물려 오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압박이다. 미국은 반도체 동맹 결성, 유럽은 자체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강화하며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국내 생산 유인책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실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도 생산성과 투자 환경 때문에 다양한 지역 분산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 ‘52시간 예외’ 부재는 해외 대기업 유치전과 비교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산업계 우려도 당연하다. 노동시간 유연성은 단순 피로 누적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첨단산업 투자 결정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간주되는 이유다.

한편 노동계와 진보 시민단체들은 52시간제 사수와 추가 규제완화 반대를 재차 분명히 했다.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문제, 장기적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예외조항의 남발은 결국 ‘과로사회’의 재도래라는 진단이다. 특히 시급히 반도체 생산이 필요한 글로벌 환경이라 해도, 노동권의 보호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 이는 미국–유럽 내 첨단산업 종사자들 역시 근무환경 복지 향상을 주요 이슈로 삼는 현상과 맞물린다.

경제적 파급력 역시 만만치 않다. 반도체는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국가 생존산업임을 감안할 때 법률의 미세한 변화도 전방위적 시장·정책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친다. 비슷한 시기 중국이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 지원을 재개한 사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 금리 정책의 여파로 IT기업 투자심리가 위축된 점 등은 우리 반도체 법이 갖는 국제시장 신호를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 삼성, SK 등은 이번 법안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국제 표준 혹은 경쟁국 정책에 상응하는 제도 개선 필요성을 천명했다.

정책 판단의 중요한 관점은 ‘산업 육성’ 그리고 ‘사회적 지속 가능성’의 장기적 균형에 있다. 단기적 유연성 완화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효과도 크지만, 사회적 신뢰와 노동시장 안정 없이는 혁신의 지속 동력이 흔들릴 수 있음을 정치권은 항상 직면해왔다. 특히 첨단 글로벌 공급망의 ‘K-반도체’ 위상이 구조적으로 높아진 이 시점에서 새로운 조정안, 사회적 대타협 구조를 만들어낼 정책 역량이 절실하다. 근로자 대표성과 기업 이익, 그리고 국가경쟁력을 맞물릴 사회적 합의 테이블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법안의 통과는 지원의 대폭 확대와 규제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첫 걸음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노동시간 유연성 논의는 단발성 공방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와 제도실험을 병행해야 한다. 첨단산업 정책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접목되고, 미래 공급망과 시장에 어떤 장기 신호를 주는지에 대한 세심한 정책 평가와 감시가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 이한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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